설교

설교(시42편) : 주를 간절히 바람

stevision 2012. 11. 28. 11:43

 

(2007년 10월 13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주를 간절히 바람                                     English
말씀: 시42편

  

 

>>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고라 자손은 레위 자손으로 성전의 찬양대를 이루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시편을 설명하는 말 ‘고라 자손의 미스길’과 4절 말씀을 볼 때 본 시편은 고라 자손이 지은 시인 것 같습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4절).” 오늘 시편 말씀의 기자를 원수가 다른 데로 추방하여 그는 성전에 갈 수 없는 상태에서 원수의 압제에 시달리며 원수로부터 온갖 조롱을 당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6절 말씀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를 살펴보니 이 자는 원수에 의해 성직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배회하며 옛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것을 회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 자를 괴롭혔던 것은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겨 ‘너 독실한 신자지? 그러면 네 하나님 어디 계시냐? 너 사는 꼴을 보니 하는 말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10절).

여러분, 사람을 성전에서 함부로 쫓아내지 마십시오. 특별히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모함하여 교회에서 추방하면 이는 그 추방당한 자에게 극심한 불명예와 고통을 줍니다. 집사 정도야 일이 잘못되어 교회에서 나왔더라도 아무 교회나 나갈 수 있지만 장로나 전도사나 목사는 교회에서 나오게 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폐해는 전도사를 너무나 쉽게 해고하는 것입니다. 일회 용품은 한 번 쓰고 버리지요. 많은 교회에서 전도사를 1년 용품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물만 쏙 빼먹고 약간 식상하고 싫증나면 새 전도사로 교체해서 교회 분위기를 새롭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울이 다윗을 압제하여 찾아 죽이려 하자 다윗이 공공 제사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고,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탄식을 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다윗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던 사울을 벌하셨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애절한 외침을 보세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1절).”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픈 마음이 있을 때 타인이 이를 가로막으면 보통 때보다 몇 갑절의 사모하는 마음이 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당신을 찾기에 갈급한 자의 소원을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분께서 당신께 나아가려 하는 자를 막는 원수를 그냥 놔두시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시편 기자로부터 본받아야 할 점은 바로 고난 중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교회를 등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우상이나 다른 종교에 가지는 않고 그냥 홀로 지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등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는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비웃음만 겨울바람처럼 마음에 불어닥치기도 합니다. 때론 아예 입을 완전히 봉하고 기도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망스런 하나님을 생각하면 기도할 맘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는 거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어제와 오늘의 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낙심하여 있는 여러분에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위로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잘 살펴보십시오. 눈을 크게 떠보십시오. 귀를 쫑긋 세워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설교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때론 가까운 사람의 친절한 말 한 마디, 작은 선물 하나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통해 여러분들을 위로하시려고 안간힘을 쓰시고 계심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얘야, 너 오해 말거라. 나도 너 그렇게 된 것 정말 안타깝단다. 왜 너 날 오해하여 미워하려고 하니?’ 물론 그런 때에도 마귀의 종이 되어 ‘너 참 꼴 좋다. 너 그렇게 하나님 잘 믿더니, 네 하나님 어디 있냐?’라고 가슴에 비수를 꽂는 자들도 있지요. 여러분,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을 생각해보십시오. 야곱은 형 에서 때문에 가정 제단을 떠나 타향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노숙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들짐승의 위협을 느끼며 돌을 베개삼아 잠을 청했는데, 글쎄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꿨습니다. 그가 깨어 말합니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형의 등쌀에 못이겨 가정 제단을 떠난 야곱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광야 빈들에 외로이 누워 잠을 청하는 그에게 친히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이 광야 홀로 된 상태에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어마어마한 복을 약속하셨다는 겁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8:13-14).”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정 제단에서 쫓겨난 야곱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친히 야곱이 있는 곳에 오시어 야곱이 누운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지요. 여러분, 혹시 부당하게 자리에서 쫓겨나 광야에 계십니까? 그곳이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복된 삶의 터전은 아닌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광야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는 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누웠던 자리에 돌을 세워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하였더라(창28:18-19).” 여러분, 지금 광야와 같은 곳에 홀로 계십니까? 하나님이 서운하다고 생각지 마시고 그 곳에 오신 하나님을 영접하시어 그곳을 여러분이 세운 성전이 되게 하십시오. 이전보다 하나님을 백 배 더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여러분의 새로운 성전입니다. 여러분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이전보다 백 배 더 사랑하면 그곳이 여러분의 성전이 되고 여러분에게 하늘의 문이 열려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려집니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지금 여러분이 광야에 홀로 있음에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불처럼 일어나면 이는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셨고 여러분에게 하늘문이 열렸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야곱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가 광야와 같은 곳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2절).” 이런 갈망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어 이 자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과 찬송이 있게 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5절).” 야곱이 꿈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삶의 소망을 되찾고 확신에 차게 되었듯이, 이 시편 기자도 믿음으로 자기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모든 낙심과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새 힘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입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안 계신다면 어찌 그 자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겠습니까? 여러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찬송이 나옵니까?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셨음을 알고 지금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적 예배를 받으시고 여러분에게 약속과 복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그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겁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히11:1). 여러분이 지금 삶에 지쳐 광야와 같은 곳에 홀로 있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그분께 찬양을 드리면 여러분의 그러한 믿음의 내용은 여러분의 미래의 현실이 됩니다. 여러분, 매일 매일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매일매일 여러분에게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매일매일 여러분에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찬송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천리 길 밖으로 달아나고, 어리석은 마음과 불신앙이 내 마음에서 사라져 평안과 확신이 나를 감쌉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기도하십시오. 기도 중에 마음에 똑똑 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 아름다운 믿음이요 참사랑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 우리 안에 숨겨진 값진 보화를 캐시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내게 있는 보화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참믿음과 참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난 중에 우리가 캘 수 있는 보화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또 우리의 고난 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크신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낮에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발견하고 있군요(8절). 밤에 그는 ‘내 생명의 하나님께(the God of my life)’ 기도드립니다(8절). 낮에 원수들이 아무리 날뛰고 설쳐대도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결코 의인의 뼈를 꺾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에 나는 원수의 손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절대로 원수는 나를 해치지 못합니다. 여러분 항상 하나님께서 ‘내 생명의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11절).”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믿음으로 승리를 확신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반드시 오늘의 모든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이전보다 백 배 더 넓어진 삶의 터를 확보하여 백 배 더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물론 그 경우 여러분과 하나님의 사랑은 이전보다 백 배 더 강해져 있겠지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역경에 처한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욱더 바라고 사랑함으로 여러분이 백 배 더 복을 받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역경을 만날 때마다 믿음으로 승리하여 삶의 터전을 백 배씩 넓혀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