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스(John Hus)의 글 [성직매매] >29<
“한눈팔지 말고 선생들을 조심하라!”는 구세주의 경고를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나요? 첫째로, 우리는 선생들의 악행들을 본받으면 안되고 그들의 악한 명령에 복종하면 안됩니다. ... 나 자신이 선생들이 대학에서 겸손, 인내, 가난, 용기와 다른 덕(德)들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들이 너무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강의하여 누가 하더라도 그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삶으로 산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나는 그러한 덕(德)들이 그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있지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만, 탐욕, 조급, 겁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구세주께서 그들에 대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들은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규칙들을 제정하고, 교회의 고위 성직을 놓고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고, 사람들이 신(神)에게 절하듯 그들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또 대학의 제일 윗자리를 놓고 그들이 얼마나 서로 다툽니까! 실제로 나는 마우리케라는 어떤 수도사 선생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선생들 중 수위(首位)를 차지한다는 교황의 교서를 받았습니다. 이 교서에서 교황은 마우리케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자는 성직록, 사제직, 모든 성직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파문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선생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만 때문에 동의를 거절하여 잘못을 범했고, 그는 그것을 요구함으로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렇게 양측에 다 교만이 있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그들이 교회의 상석(上席)을 좋아하고 그들의 의복과 모자와 가운과 후드의 가두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슬프도다! 나 또한 가운과 깃 달린 옷과 흰 모피 후드를 갖고 있구나. 그러한 복장을 갖추지 않으면 석사(?)학위(선생 학위가 더 나은 표현 같음, 역주.)를 받을 수 없다는 규정으로 그것들은 석사학위 수여 때 사용됩니다. 그러한 교만을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군중에게 “너희는 선생이라 불리지 마라. 그리스도 그분만이 너희 선생이시기 때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 사실 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더 확고한 기회를 잡으려 노력하고 좀 더 열정적으로 그 진리를 고백하고 지키려 하지 않은 채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가난한 사제들과 가난한 평신도들이 더욱이 여자들이 성경 박사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함을 발견합니다. 성경 박사들은 겁먹고 진리를 버리고 달아나기도 하고 그것을 지킬 용기도 없습니다. 슬프다! 내 자신이 바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도다. 왜냐하면 난 드러내놓고 명백하게 하나님의 진리를 설교할 엄두를 못 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 모양이지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우리 중 혹자는 세상적 호의와 찬사를 잃기가 두렵고, 혹자는 성직록을 잃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경멸 당하고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요. 우리는 유대인 관원들 닮았습니다. 성(聖) 요한이 복음서에서 그들에 대해 “많은 관원들이 그(예수님)를 믿었으나 율법사들(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그들이 출교(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이 주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 아, 얼마나 많은 자들, 즉 왕들과 선생들과 사제들과 그 외의 사람들이 파문(출교)이 무서워 그리스도의 진리를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 그분을 고백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가! 또한 얼마나 많은 자들이 초라한 재물을 잃지 않으려 그 진리를 고백하기를 두려워하는가! 무엇보다 얼마나 많은 자들이 이생의 목숨을 걸 용기가 없어 진리를 포기하고 있는가!
>> 이 글을 남긴 후스(John Hus)는 바른 소리 하다가 화형 당한 자입니다. 큰 교회 담임하려 불법을 자행하며 성직에 들어선 후 “남 비판하다간 평생 잘 되는 꼴 못 본다”고 설교 중에 망발을 늘어놓는 자가 위대할까, 잘못한 것을 용기 있게 비판하다 비참하게(?) 죽은 후스가 위대한 사람일까? // 모함과 정당한 비판을 구분 못하는 자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자이다. ..... 김종택(Z^_stevision) // ㅉㅉㅉ..., 아직도 저런 유치원 설교에 감동을 받는 순진한 성도들이 있단 말인가! 자기가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저렇게 단정적으로 무식한 말을 하나. 참으로 목사 자질이 의심되는구나. “남 모함하다간 평생 잘 되는 꼴 못 본다”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자기가 비판받을 거라 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정당하게 지적하는 비판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받고 싶어해야 정상이다. 정당한 비판은 나에게 유익인 것이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유익한 비판을 받고 싶으면 나 자신도 타인에게 유익한 비판을 해도 복음적으로 불법이 아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는 타인에게 유익한 비판(권면)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게 없다면 어떻게 기독교 교육과 설교와 목회와 치리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판은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부당한 비판을 말하는 것이다. 나 자신은 타인의 부당한 비판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나도 그런 유의 비판을 타인에게 하면 안 된다. 이게 바로 예수께서 금하신 타인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악한 자는 정당한 책망을 듣기 싫어한다고 잠언에 많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잠언에 의하면 정당한 비판을 듣기 싫어하는 자는 필시 악인이고, 특히 탐욕으로 가득 찬 종교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종교인은 그 성격상 항상 밖으로 거룩함을 유지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 그 때문에 악한 종교인은 타인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비판이라도 있게 되면 병적으로 싫어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애쓴다. // 그러므로 정당한 책망(비판)을 싫어하는 자마다 잠언에 기록된 대로 반드시 패망하리라. .... 김종택(Z^_stevision) // 이 글은 한국 교회의 명예에 똥칠하면서까지 부자(父子)세습을 감행한 자들이 설교 중에 자주 ‘비판’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은근히 자신들에게 향한 비판을 거부하는 고약한 습성이 있어서, 성도들이 그 말에 속지 말라는 의미에서, 몇 자 적은 것입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아비와 아들 두 부자(父子)가 전하는 성경말씀은 믿고 따르되, 이 둘의 위선적 행위는 절대 본받으면 안됩니다. 저 종교인들은 설교 중에 남 가르치기는 좋아하되 자신들에게 향한, 하나님과 교회의 영광을 위한 타인의 권면은 극도로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썩어빠진 여편네 이세벨이 하나님의 법을 들먹이며 의인 나봇을 모함해 죽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썩어빠진 기독교 종교인들이 스스로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살면서도 왜곡해서 해석한 성경말씀을 근거로 정당한 비판을 막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너희 조상 아합과 이세벨을 빼닮았느냐, 이 가증스런 삯꾼들아! 참된 기독교인은 타인의 부당한 비판까지도 때에 따라선 자신의 부덕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목사가 비싼 차 굴리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그러한 비판을 받은 자는 남의 심사를 거스린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성도들이 큰 차를 타고 다니게 강권한다고 필요이상의 큰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좀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돈 많이 번 장로가 비싼 차 타고 다닐 때 담임 목사가 검소한 보통 차 타고 다니는 게 이상한 건가요? 오히려 그게 종교인으로서 존경받을 일이 아닌가요? 차 고르는 일은 담임 목사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성도들 핑계 댈 이유가 없습니다. 돌멩이 우상에게 절하는 중들이 검소하게 사니 국민들로부터 그나마 종교인 대접을 받지 않는가? 수천 명의 교인을 둔 대형교회 목사가 고급 차 몰고 다니는 것을 비기독교인 국민이 볼 때 존경스럽게 보이겠는가? 교인이 많아지면 교회를 적당한 크기로 나누고 그런 적당한 크기의 교회를 맡으며 중간 정도의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 개선이 얼마나 많이 되겠는가? 목사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정신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이 뭔지 모르게 하여 그 모양으로 사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시험에 들까 염려될 때에는 고기도 먹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자입니다. 한국의 비기독교인들이 탐욕스런 목사들 때문에 얼마나 큰 시험에 빠졌나? 탐욕스런 목사들은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
Observe carefully the Saviour's warning, “Beware diligently of the masters!” And what are they to beware of? In the first place, that people follow not the masters in evil works and obey them not in evil. ... I myself have intently listened to their lectures in schools when they discoursed concerning humility, patience, poverty, courage, and other virtues which they celebrated so persuasively and eloquently that no one could do it better, as if they themselves had practiced all of them. But later I found none of these virtues actually among them, for they were full of pride, avarice, impatience, and cowardice. As the dear Christ has described it, they lay heavy burdens on men, issuing their regulations, striving with each other over the chief ecclesiastical dignities; and when men do not bow before them as before gods, they grow angry; and how many disputes they carry on among themselves concerning the first paces in schools! In fact, I know a certain master, the monk Maurice, who secured a papal bull to the effect that he be granted a place above all other masters. In this bull the pope ordered, on pain of the loss of benefices, priesthood, and all dignities, and even on pain of excommunication, that he - Maurice - be given the specified position. But still the masters refused their consent. They did wrong in refusing to consent from pride, and he did wrong in demanding it. Thus pride was on both sides. For the Saviour says that they love the first seats in churches and broaden the hems of their robes, capes, gowns, and hoods.
Alas! I too had gowns, robes with wings, and hoods with white fur; for they so hemmed in the master's grade with their regulations that no one is able to obtain the degree unless he possess such an outfit. In order that men beware of such pride, the Savour said to his disciples and to the multitudes, “But be ye not called masters: for one is your master - the Christ.” ... In truth I cannot conceive how otherwise a man could be a master worthily than with the intention of obtaining a steadier opportunity for the teaching of God's truth and thus profess and defend that truth more zealously. But I have found that ordinary poor priests and poor laymen - even women - defend the truth more zealously than the doctors of the Holy Scriptures, who out of fear run away from the truth and have not courage to defend it. I myself - alas - had been one of them, for I did not dare to preach the truth plainly and openly. And why are we like that? Solely because some of us are timid, fearing to lose worldly favor and praise, and others of us fear to lose benefices; for we fear to be held in contempt by the people for the truth's sake, and to suffer bodily pain. We are like the Jewish rulers of whom Saint John says in his Gospel that “many rulers believed on him; but because of the lawyers did not confess it, lest they should be cast out of the congregation. For they loved the praise of men more than the praise of God.” ... O how many there are - princes, masters, priests, and others - who, being afraid of excommunication, have not courage to confess the truth of Christ, and thus also Christ himself; and how may there are who fear to confess the truth lest they lose their miserable goods, or, above all, who, lacking the courage to risk their earthly life, abandon the tr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