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물

후스(John Hus)의 글 [성직매매] >35, 끝<

stevision 2012. 12. 1. 11:50

그러나 사제들 중 많은 자들이 자신들이 재판관직을 가진 장로들로서, 또 성경을 배운 자들로서 마땅히 신뢰를 받아야 한다며 항변하겠지요. 또 자신들에게 사람들에 대한 지배권이 부여되었는데, 가난하고 경멸당하는 사제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불신을 당해야 하냐고 항변하겠지요.

이에 대한 답변은 성경에 무식한 한 행악자(십자상의 한 강도, 역주.)가 해줍니다. 이 자는 무죄한 그리스도께 불명예를 안겨주고 그분께 불경스런 언행을 일삼은 모든 주교들, 선생들, 기사들과 여타 사람들에 대항하여 참된 증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잘못도 안 하셨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행악자는 예수께서 사형 당해 마땅하다고 외친 다른 모든 자들보다 더 믿음을 주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교회는 “거짓된 유대 군중들보다는 의로운 마리아를 믿는 게 낫다”라고 기쁘게 말합니다. 자비로우신 주께서는 겸허히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순박한 자들에게는 진리를 알게 하시지만 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그것을 숨기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오 아버지, 땅과 하늘의 주시여, 아버지께서 지혜롭고 현명한 자들에게 이것들을 숨기시고, 아이들(즉 겸손(비천)하고 세상에서 경멸당하는 자들)에게는 보이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일로 당신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리셨고, 겸손한(비천한) 자들의 말이 인정받는다는 진리를 확증하셨습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길을 따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든 대제사장들(주교들)이나 랍비들(선생들)이나 제사장들(사제들)이나 이방인과 유대인 율법사들을 믿지 않고, 가난하고 겸손하고 세상사람들에 의해 경멸당한 그 열 두 사도들을 믿지 않았나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과 삶을 본받아 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보다는 그것을 본받아 사는 자들을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볼링을 할 때(그 당시의 볼링을 말하는 것 같음, 역주.), 먼저 타깃을 세운 후 볼을 던집니다. 타깃에 가장 가까운 자가 이깁니다. 누가 가장 가까운지 분간할 수 없으면 자로 볼과 타깃의 거리를 재서 어느 게 가장 가까운지 정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범으로서 우리 앞에 계시고, 우리는 선한 행실로 그분께 다가가야 하며, 그리하여 하늘나라에 도달합니다. 서로 비판하는 자들 가운데 누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에 가장 근접했는지 판단하고자 하는 자는 우리의 타깃인 그리스도로부터의 거리를 재야 하고, 그 거리는 그분의 명령, 겸손, 온유, 정결, 가난, 그분의 말씀을 척도 삼아 재야 합니다. 거리가 가까운 자는 누구나 다른 자들을 제친 승자로 선언되어야 합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도 않고 겸손과 정결과 사랑의 삶을 살지도 않는 자를 따르더라도, 그들 모두는 다 그릇된 상태에 있습니다.

... 따라서, 우리 모두는 그분을 따르고,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께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모든 선한 말들을 향하게 하고, 그분을 우리의 거울삼아 바라보고, 우리의 온 힘을 다해 그분을 소유합시다. 그분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셨지요. 그분께서는 본이 되시어 길이 되십니다. 사람이 그 길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진리이십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이루십니다. 그분께서는 보상의 차원을 볼 때 생명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주시어 사람들이 영원히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구원으로 인도하시니 길이시고, 신자들의 이성(理性)을 조명하시니 진리이시고, 그분께서는 영생이시고 모든 선민들은 그 영생 안에서 영원히 기쁨 가운데 살 것입니다. 바로 그 생명, 바로 그 길과 진리를 내 자신이 좇길 원하며, 바로 그 곳으로 나는 다른 자들을 이끌기 원합니다!

이 책을 씀으로 탐욕스런 세제들이나 속된 세상 사람들로부터 찬사나 호의 그리고 물질적 이득을 취할 수 없을 알고도 난 이 책을 냈습니다. 왜냐하면 난 그러한 것들을 그들로부터 바라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상과 그들의 구원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비난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난 아첨을 해 물질적 대가를 받기보다는 진리를 말함으로 죽임을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성(聖) 바울도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면 난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첨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면 내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내 자신을 단속하여, 아첨을 해서 사람들과 내 자신을 실족케 하거나 그로 인해 내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난 어쨌든 성직매매를 철폐하고 뿌리 뽑기 위해 분명하고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자비로우신 주여, 이 일을 하는 저를 도우소서! 이 책은 1413년, 동정녀 마리아가 성전에서 주님을 바친 날, 그리고 시므온이 팔로 주님을 안은 날(눅2:25)에 (체코인들이 hromnice(2월 2일)로 정한 날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자는 내 저작의도가 선한 자들을 모함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를 죄로부터 지키고, 악한 자들이 회개하는 데에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멘.

>>역자(Z^_stevision) 후기(後記)

글의 양도 많고 산뜻한 내용도 많고 감동도 주는 신학자는 칼 바르트입니다. 요즘 신학 서적들 정말 책의 부피는 큰데 너무 지루한 내용으로 일관해서 정말 읽는 자로 하여금 왕짜증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피가 업적의 주요 부분으로 인정되어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고전은 다릅니다. 고전은 길으나 짧으나 많은 감동을 주고 깊은 신앙적 통찰을 줍니다. 제가 이 후스의 글을 포함하고 있는 과거 위대한 신학자들의 글을 모은 전집 24권을 아주 지루한 부분 일부를 빼고 다 읽어봤는데, 적어도 8,000페이지 이상은 되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을 줬습니다. 시간이 좀 허락되는 분들께서는 이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전권을 한 번 다 읽어보십시오. 신학자가 꿈인 분들은 필히 한 번 다 읽어보십시오. 목회 하실 분도 본격적으로 목회하시기 전에 시간 있으시면 읽어보세요. 분명 얻는 게 많을 겁니다. 제가 이곳에 올린 어거스틴의 글만 보더라도 설교 자료로 활용할 가치가 많지요. 한국 기독교는 쓸데없는 데 돈을 쓰지 말고 기독교 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신학 발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칼 바르트 글도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고, 저런 위대한 작품들도 아직 번역되어있지 않았는데 무슨 신학을 얘기합니까? 감리교 창시자 웨슬레의 글도 아직 번역이 다 안 돼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상태이지요.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번역은 고사하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동서양의 신앙의 선배들의 글이 다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사상누각이지요. 우리나라 기독교가 저자들의 모국어 판을 구할 수 없다면 영문판이라도 제발 다 확보해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번역한 이 후스 글이 얼마나 개인과 교회에 신앙적 유익을 줄 수 있는지 읽은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고전 번역을 중시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것도 제가 어거스틴과 후스의 글을 번역하여 올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신학대학원에 ‘번역학과’를 개설하여 석사나 박사를 배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그 전문 인력들이 저런 귀중한 책 24 권을 번역해 놓으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나 신학생들이 많은 시간 들이지 않고 귀중한 신앙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누가 저런 8,000페이지가 넘는 영문(英文)을 시간 내서 다 읽는답니까? 그러나 저것을 국역해 놓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영어, 독일어, 불어, 일본어 전문 번역가를 신학대학에서 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한국신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자들도 양성해야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 됩니다. 한국 기독교에 얼마나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습니까?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살찌우는 게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이 안 드십니까? 선교사 파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산 영의 양식을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 기독교에 제공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훈을 이미 종교 개혁 백 년 전에 후스가 다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성직자들이 목회하기 전에 이 후스의 글을 한 번 만이라도 읽었다면 한국 기독교가 부패하지 않고 지금보다 나은 성숙한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저 자신부터 후스의 글을 읽으며 각오를 새롭게 했습니다. “성직(성물) 매매자가 되지 말자! 아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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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many among the priests will strike out with an objection that they, as elders whose office it is to judge, and those who know the Scriptures, should rather be given credence; for since they are entrusted with the rule of the people, should they not be believed rather than the poor, despised priests?

The answer is given by the malefactor, unlearned in the Scriptures, who bore the true witness against all bishops, masters, knights, and others who had heaped dishonor upon and had blasphemed against, the innocent Christ. For he said that Christ “had done nothing wrong.” This malefactor is to be believed rather than all those who shouted that Jesus was worthy of death. Similarly, the holy Church joyfully sings, “It is better to believe the righteous Mary than the false Jewish hordes.” For the merciful Lord grants unto the simple, who humbly keep his commandments, and knowledge of the truth, while he hides it from the wise men of this world. Therefore has Christ praised his Father for it and has confirmed the truth that the humble should be believed, saying, “I praise thee,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t thou hast hid these things form the wise and prudent, and hast revealed them unto babes” (i.e., to the humble and the despised of the world). For should not men have believed the twelve apostles, poor, humble, and despised by the world, rather than all the bishops, masters, priests, and lawyers both pagan and Jewish, since the apostles followed the way of Christ? For men ought to adhere to those who live in conformity with the law and life of Christ, rather than to thousand others whose lives do not so conform. For example, when men bowl, they first set up the target and then they through the ball; and whoever comes closest to the target, wins. And when they cannot discern who is the closest, they take a ruler and measure the distance from the ball to the target, and thus determine which ball is closer. Similarly, Christ and his truth: Christ is placed before us as our example, and we should come near him by good practice and thus attain the heavenly Kingdom. If one wishes to judge among those who quarrel among themselves who is the closest to Christ and to his truth, let him take the measure from our target, Christ, and measure by his command, humility, meekness, purity, poverty, and his Word; and whoever ... is closer by the measure (as by straws) should be declared the winner over the others. And even if thousands of thousands were to adhere to one who does not keep God's commands, nor exhibits humility, purity, and love, they all are in the wrong.

... Accordingly, let us follow him, obey him, and place our faith, hope, love, and all good words on him, look upon him as our mirror, and strive after him with all our might. For he says,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He is the way in example, which if anyone follow, he will not go astray; he is the truth in promise, for what he promised he shall fulfill; and he is the life in reward, for he will give himself to be enjoyed eternally. He is also the way, because he leads to salvation; he is the truth, because he enlightens the reason of the faithful; and he is the eternal life, in which all the elect shall live in joy forever. That life, and that way and truth, I myself desire to follow, and to it I wish to draw others!

I have written these books, knowing well that I shall receive for it neither praise, favor, nor material profit from the avaricious priests and worldly people. For I do not desire these things from them, but a reward from God and their salvation. If I receive denunciation and persecution, I have decided that it is better to suffer death for the truth than to receive material reward for flattery. For Saint Paul likewise affirms that “if I pleased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God.” Understand thereby that if I pleased men by flattery,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God. Therefore, I guard myself against flattery that I may not fail them as well as myself, and may not befoul myself thereby. I have spoken plainly and simply that I may in some way destroy and uproot simony. May the merciful Savior aid me therein! These books have been completed in the year one thousand four hundred and thirteen, on the day of his being offered in the Temple by the Virgin Mary, and the day when Simeon took him in his arms (the day which the Czechs designate as hromnice [February 2]).

Whoever should read these books, let him observe that my intention is not that good men be defamed and harmed, but that they should guard themselves against evil, and that evil men should repent.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