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수난의 종

stevision 2012. 12. 7. 18:59

(04. 12. 17. 동아 시사 발언대)

 

다른 동식물들을 볼 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참으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소나 돼지를 보라. 인간의 입으로 들어갈 생명들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일까. 하지만 원통해할 이유가 없다. 소나 돼지도 뭔가 생명체에서 나온 것을 먹고 잠시 즐겁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결국 해와 비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생명체가 잠시 태어나 기쁨을 누리다 다른 것들의 먹이가 되든가 그냥 죽든가 한다. 그냥 죽는 생명체도 결국 미생물들의 밥이되므로 결과는 다 같다. 미생물들의 밥이 되지 못한 미라들을 보라. 얼마나 흉칙한 모습인가! 자기가 다른 생명체를 먹고 잘 살았으면 자기도 죽어 다른 생명체의 밥이 되는 게 공평하고도 쌈빡(?)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냐면, 세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자들을 어떻게 용서해 주실까 고민에 고민을 하셨다. 어떻게 해야 공평하고도 멋진 결과를 얻을까? 일방적으로 아무런 형벌을 가하지 않고 죄인들을 용서하면 하나님의 공의에 심각한 훼손이 간다. 그렇다고 죄인들에게 그에 마땅한 벌을 내리면 이 무슨 은혜의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자비는 어디 있고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된다면 보복의 하나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복을 하시고 나면 인간과 화해되는 것이 아니라 피차 도리어 더 악한 감정만 쌓이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인간을 택하셔서 그에게 다른 사람들의 죄값을 치르게 하신다. 하나님께 선택된 한 의인은 아무 이유 없이 매맞고, 침뱉음 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한다. 이 때 그 의인은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많은 자들의 죄를 대신 그 의이에게 지게 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의인을 높여주신다. 다른 자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고 그들과 하나님을 화해시킨 영웅으로 높여주시는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원래의 죄인들에게 그 의인을 주님으로 부르게 조치를 취하신다. 이제 그 의인은 불만이 전혀 없게 되었다. 잠시 고통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주님'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으니 손해 본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죄인들은 자기네들에게 그러한 의인을 보내주신 것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완전한 화해가 이뤄진 것이다. 이 얼마나 쌈빡한 해결책인가!

이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종인가? 의인이면서 고난을 당하고 그 고난 가운데 타인의 죄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중보기도 드리는 자이다. 이는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직책과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그 누구든 이사야서 53장의 고난의 종처럼 사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