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바울의 말 1 : 세상의 초등학문에 현혹되지 마라

stevision 2012. 12. 7. 19:14

(04. 12. 27. 동아 시사 발언대)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아덴(그리스 아테네)에 갔을 때 그곳의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지식인들이 바로 '에비구레오' 철학자와 '스도이고' 철학자들(행17:18)이다. 스도이고 철학자는 스토아 철학자를 말하고 에비구레오 철학자는 에피쿠로스 철학자를 말한다. 또 신약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그노시스 철학)이다.

*스토아 철학
창시자는 제논이다. 여기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지혜'를 통해 행복을 추구했다. 이 철학의 기조는 범신론적 유물론이다. 이 철학은 불교처럼 철학에 머물지 않고 종교화 되었다. 이 철학의 세계관은 원초적인 불(fire)로부터 시작한다. 이 불은 신적인 불이다. 이 원초적 불이 스스로 분화하여 공기와 물과 땅을 이룬다. 이 원소들(elements, 요소들)로부터 무생물, 식물, 동물, 인간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규칙적 분화 내지 진화에 관여하는 것이 바로 원초적 불에 내재된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는 호흡(그리스어로 프뉴마(pneuma))으로서 무성질의 질료(hyle)에 두루 스며들어 이 질료의 계획적인 발전에 영향을 주는 세계이성이다. 모든 존재에는 '로고스의 씨'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씨 안에 각 존재들의 발전이 계획되어 있다. 이 철학에서의 신(神, 굳이 신이라 한다면)은 창조적, 근원적 힘이며 모든 존재의 최초 원인이다. 이 신은 만물을 이성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힘을 품고 있는 로고스이다.
스토아 철학은 세상의 영원한 순환(원초적 불 -> 원소들(땅, 물, 공기, 불) -> 질료와 로고스의 조합으로 이뤄진 조화로운 세상(Cosmos) -> 원초적 불)을 가르친다. 따라서 이 철학은 숙명론에 빠진다. 현재의 모든 인간은 다음에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그대로 나타나 똑같은 삶을 살다가 사라진다. 이런 절대적 운명에 순응하여 맘 편히 사는 것이 이 철학이 말하는 덕이요 행복이다.

*에피쿠로스 철학
이 철학의 창시자는 에피쿠로스이다. 이 철학은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둔다. 그리고 이 행복은 쾌락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 철학은 인간에게 좋은 것을 선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말하는 쾌락은 일시적, 육체적 쾌락이 아닌 정신적 쾌락이다. 이 철학은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어 기독교의 창조신과 같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이 철학은 존재하는 것이 물질과 허공 뿐이라 했고, 그리하여 물질의 항존성을 주장했다. 이 철학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목적도 없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이 철학은 인간이 신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며 사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이 철학은 자기 중심적 도덕철학이다.

이 두 철학에 소속된 자들은 인생의 목적을 쾌락과 기쁨에 두어서 자신의 현재 삶이 행복을 주지 않으면 당연히 자살을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활화산 분화구에 몸을 던져 자살한 자도 있었다. 인격적 창조신의 부정, 무로부터 세계창조의 부정, 유물론, 숙명론, 삶의 목표로서의 쾌락을 주장하는 이 두 철학은 기독교 교훈에 심히 배치됨을 알 수 있다.

*영지주의
이 영지주의는 한편으로 기독교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부정적 영향을 더 많이 줬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일서 4장 2절에 예수님의 육체적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가한 비판이 나오는데, 바로 그 대상이 영지주의에 빠진 기독교인들이었다. 이 철학은 지식(Gnosis, 그노시스)을 가진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지식은 논리적 지식이 아니라 신비적 직관으로 신의 계시를 체험했을 때의 상태를 말한다. 이 영적 지식을 통하여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 신에 귀의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자들의 구원관이다. 이 철학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에 빠져있다. 그리하여 영지주의에 빠진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가짜 허깨비 육체를 입으셨다고 했다. 이들 중에는 일단 영지를 취득하여 영이 구원을 받으면 자신의 육체는 구원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육적 방종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영지주의의 가장 큰 해악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고난을 사기극으로 치부하고, 물질적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저급한 신으로 여기고, 신자들의 육적 방종을 조장하는 데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기독교 교훈에 심히 배치된다.

바울은 이런 세상 학문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그리스도를 발견한 이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