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알곡과 가라지

stevision 2012. 12. 8. 11:35

(05. 6. 16. 동아 시사 발언대)

 

삯꾼 목사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막으려고 늘어놓은 궤변에 대해서는 본인의 글 "삯꾼 목사들의 궤변을 논박함"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 중에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들어 교회 안에 있는 악인들을 처벌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이 마치 예수님의 뜻인양 착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성경은 교회 안의 악을 용납한 적이 절대로 없다.

마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예수의 이 말씀은 나중에 천국이 완성되는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여기에 나오는 밭이다. 이 밭은 교회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만약 이 밭이 교회라면 교회에 있는 악인들이 굉장히 좋아할 말씀 같은데... 그러나 셩경은 예외가 없다. 교회 안에서 악이 싹을 틔워 계속 자라도 된다는 성경 말씀은 없다.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신다.

마13:37-39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예수님)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꾼은 천사들이니."

여기서 가라지는 교회 안의 악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인들과 함께 세상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을 말한다. 이 악한 마귀에게 사로잡혀 사는 자들을 제거하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과 전쟁이라도 일으켜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들도 피해가 막심해진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상 종말까지 기다리라고 하신다. 가라지는 교회의 권한 밖에 있는 세상의 불신자들을 말한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교회 안의 악인에 대해서는 뭐라 말씀하시나?
마18:15-18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특히 교역자의 문제에 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딤전5:19-21 "장로(목사와 장로를 말함)에 대한 송사(고소하여 재판을 걺)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따라서 교회 안에서 범죄한 자들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반드시 징계해야 성경적이다. 혹자는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교회 안의 범죄자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은혜"로 모든 것을 다 마무리 짓자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이 원수갚아서는 안되는 것은 세상 법도 마찬가지다. 세상 법도 자기에게 해를 끼친 자를 국가권력에 맡겨 벌을 받게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도 한 개인이 타인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랑으로 용서하고 덮어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교회의 적법절차를 거쳐 그 자의 죄를 교회에서 공표하고 마땅한 제재를 가하는 것도 지극히 성경적이다. 교회의 적법 절차를 거쳐 자기에게 해를 가한 자를 제재하는 것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교회 전체에 해를 끼친 성도나 장로나 목사의 경우는 원수갚는 차원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을 지키는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교회 법을 어기고 망나니 짓을 하는 자는 반드시 적법절차에 따라 벌을 줘야 한다.

왜 그런가?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11:44에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했다. 신13:5에서는 우리 가운데 악을 제거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꼭꼭 숨어 있었던 아간을 기어코 사람들 앞에 끌어 내어 돌로 쳐 죽게 하셨다.

따라서 알곡과 가라지 예를 들어, 또한 자기 스스로 원수 갚으면 안된다는 예를 들어 교회 안의 범법자에 대해 성도나 목회자나 교단이 나몰라라 하는 것은 성경적인 태도가 절대로 아니다. 교회는 스스로의 법과 절차를 따라 항상 악인들을 가려내어 적당한 제재를 가함으로 다른 성도들이 그것을 보고 죄짓는 일을 두려워하게 해야 하고, 교회를 항상 거룩하게 유지해야 한다. 필자가 성경 여기 저기를 다 살펴보니 결론은 이것이다. 교회 안에서 악인을 용납하는 것은 성경을 마귀적으로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오늘도 벌써 교직에서 추방당했어야 할 삯꾼 목사들이 한국 교회를 좀먹고 있다. 교회 돈을 제 쌈짓돈 쓰듯이 쓴 나쁜 놈들, 교회 처녀를 욕보인 짐승만도 못한 나쁜 놈들이 그 죄가 발각되었음에도 그냥 대충 넘어가서 성도들 앞에 거룩한 체 하며 목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나쁜 놈들을 계속 목회자로 남겨 둔 교단의 모든 책임있는 목사들도 같은 유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덮어둔 것이다. 그런 나쁜 놈들에게 세례를 받고, 안수기도 받은 성도들에게 이 얼마나 몹쓸 짓을 한 것인가? 그런 나쁜 놈들이 다시 그런 추악한 범죄를 성도들에게 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한국의 책임있는 목사들은 바울의 말대로 장로와 목회자의 범죄에 대해 편견 없이 편벽됨이 없이 치리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적이고, 즉 하나님의 뜻이고 교회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