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우신 우리 어머니 >연안이씨(延安李氏) 이순례(李順禮)< 여사님
우리 아버님(金興培)께서는 나를 보시고 내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6 남매를 남기셨는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갖은 고생 다 하시며 6 남매를 길러내셨다. 우리 어머니가 너무 너무 고맙고, 내가 막내로서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음에도 인간적으로 어머니께 해드린 것이 하나도 없기에, 그냥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어머니 자랑이나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난 외할아버님이 너무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성품이 곧고 성실하게 가정을 살피시는 우리 어머니를 길러주신 외할아버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좋은 어머니를 보내주시어 우리를 기르시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내 외할아버님은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사셨던 연안(延安) 이씨 이주성(李周性)<이시다. 연안 이씨 사람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집안에 좋은 여인 보내주시어 집안을 살려주신 것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연안 이씨 집안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할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나올지어다. ...... 하나님의 종 김종택(Z^_stevision)<<. 또한 외할머니 김내란 여사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난 우리 어머니께서 거짓말 하거나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을 하거나 부정한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손이 남자손처럼 될 때까지 논받에서 일을 해서 자식들을 기르신 분이 우리 어머니이시다. 하나님의 종인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인간의 삶이 저래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바로 산 것이다. >>하나님, 인간의 삶을 바로 사신 제 어머니 이순례 여사에게 무한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어 영생복락의 영원한 천국 복을 허락하소서! 신실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얼마나 고되게 일하셨으면 여인의 손이 저렇게 변했을까!)
(저런 집에 사시면서 혼자 6남매를 길러내셨어요.)
난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라났다. 막내였으니까, 그리고 나를 낳으시고 곧바로 과부가 되셨으니 얼마나 내가 어머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겠는가! 어머니께서 나 낳으실 때 태몽을 꾸셨는데, 어떤 애가 그냥 책상에 앉아서 책만 보더란다. 가짜(!) 태몽은 아닌 것 같다.
여담인데 내 아버님의 사촌 형님, 참나무재에 사셨던 넷째 아저씨께서 내 아버님께 '자네는 왜 그렇게 딸만 셋 쭉 낳나? 나를 보게. 난 아들만 셋 쭉 낳았잖은가?'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 있은 후 그 넷째 아저씨께서는 딸만 쭉 셋 낳으시고 우리 아버님께서는 아들만 세 쭉 낳으셨다. (사실은 내 둘째와 셋째 누님 사이에 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애기였을 때 죽었음. 사실은 내가 7 번째 자식임.)
옛날에 우리 동네에 저 왕소나무가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 하냐면, 내 꿈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중학교 한문 선생님께서 나에게 송파(松坡, 언덕의 소나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내가 고등학교 시험을 보고 꿈을 꿨는데 하얀 학 네 마리가 저 소나무 위를 빙글빙글 도는 꿈이었다. 그런데 입학하는 날 보니 내가 전체 4등으로 들어갔던 것 같았다. 신기하지?
그런데 내 친한 친구들이 내 호가 송(松)자로 시작한다고 해서 내 별명을 '송아지'로 지어줬다. 그런데 내가 대학 때 중병에 걸렸을 때 내 어머니께서 꿈을 꾸셨는데, 차가 다니는 길 한 가운데에서 송아지를 우리 어머니께서 붙들고 계셨는데, 마침 차가 막 달려오고 있더래. 우리 어머니께서는 송아지가 차에 치일까봐 자기 품으로 송아지를 확 끌어당기셨고, 잠이 싹 깼대. 이 꿈을 꾸시고 내 어머니께서는 내가 병에서 완쾌할 것을 확신하시고 마음이 놓이셨다나. 어쨌든 난 오랜 투병 끝에 왠쾌했다. 신기하지?
아래 사진은 언젠가 눈이 온 내 고향 아개울이 멋져서 사진에 담은 것이다. 우리 집 뒷편 언덕에서 본 우리 마을이다. 저 앞쪽에 대명산이 있고, 산 앞쪽 아래로 아개울 방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