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

단종과 그의 숙부 수양대군(세조)

stevision 2012. 12. 11. 15:07

(2011년 9월 8일 언테넷에 공개)

 

역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단종과 세조다. 작은 아버지 세조가 왕인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되고, 나중에 세조는 단종까지 죽인다. 사람들은 세조가 죽일 인간이라며 분노를 터트리고 단종은 그저 불쌍한 왕으로 여긴다. 

 

나는 단종과 세조의 문제를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단종의 모든 행위는 그저 약자의 어쩔 수 없는 행위였나?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과 왕위를 굳건히 하는 과정에서 많은 단종의 지지세력이 죽었다. 수양대군은 때론 모함으로 때론 재판도 없이 테러를 가함으로 단종의 지지층을 없애나갔다.

 

문제는 단종이 수양대군의 세력에 굴복하여 죄가 없는 자들과자신을 지지하려다 수양대군에게 발각되어 잡힌 자들의 처형에 최종 재가를 했다는 것이다. 단종은 왕으로서 죄없는 자들의 죽음에 최종적인 책임이 있는 자였다. 숙부 수양대군의 모함과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단종은 왕으로서 모든 처형된 자의 억울한 죽음에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왕의 힘이 아무리 없더라도 죄가 없는 것이 명백함에도 강압에 못이겨 사약을 내리고 참하라 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단종은 일종의 기회주의자였던 것이다. '설마 숙부가 내 왕위를 빼앗으랴? 그저 내 지지세력을 좀 없애고 자신의 지지세력이 실권을 잡으려 저러겠지'라고 생각하고 타협에 타협을 계속하다 결국은 왕위까지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단종은 '정치적 판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판결한 빌라도'와 같은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실까? 단종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자는 외압에 굴복하여 죄없는 자를 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강압에 굴복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하기를 원하신다. 이런 자에게는 '악의 세력에 고난받고 의인을 위해 고통을 받은 의인'이라는 명예와 상이 주어진다.

 

이제는 수양대군과 단종의 지지자들을 생각해보자. 단종의 지지자들은 의를 위해 악의 세력과 싸우다 죽은 의인들로 평가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수양대군의 계획을 무산시키시지 않은 이유는 수양이 그런 짓을 해도 영원한 세계에서는 새로운 의인(단종의 지지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양대군을 비롯한 그 일파는 영원한 세계에서 추악하고 무자비한 정치인들로 남아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작심을 하고 악한 짓을 하려는 자들을 그 욕심에 끌려가게 그냥 놔두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더러운 짓 자체가 자신에게 무서운 형벌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세계에서는 돈보다, 권력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다.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보며 '단종이 차라리 자기 목숨을 걸고 과감히 수양대군과 맞서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수양대군의 그 모든 짓과 목표달성은 인생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파멸과 치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단종과 세조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무죄한 자들의 피를 많이 흘린 죄문제이다. 이 둘이 많은 자들을 죽였기에 잔인하고도 고집이 센 수양대군이라는 극악무도한 패륜범이 후손에 나타나 친동생을 죽이고 조카를 죽이며 왕권을 빼앗게 된다. 수양대군의 행위는 누가봐도 실성한 자의 행위이다. 이런 권력에 눈이 먼 정신병자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게 조상의 죗값이라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성경에 봐도 다윗이 무죄한 우리야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까지 빼앗는 짓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 중에서 형제의 칼에 죽는 자들이 나오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