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왕하:4:8-10) : 아줌마들을 위한 설교

stevision 2012. 11. 23. 13:06

2006년 10월 17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복을 받고 복을 지킨 여인                                                                     English

 

 

 

성경말씀: 왕하4:8-10 하루는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성경 잠6:16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육칠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형벌을 받지 않으면 큰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원래 엄청나게 위대한 사람이 자기의 위대함을 다른 자들 앞에서 감추고 겸손히 살고 있는데 좀 모자라는 사람이 그 위인 앞에서 교만한 행동을 할 때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그 겸손한 귀인은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만, 자신의 세상적 지위와 부를 믿고 허풍을 떠는 자에게는 엄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강자의 죄는 들춰내 꾸짖으셨던 귀인이셨습니다.


약자인 처지에 교만한 마음을 가졌으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문둥병을 고침받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엘리사 때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으나 단 한 사람도 고침을 못 받고 이방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교만한 문둥병자도 있습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주의 종에게 나와 고침을 못 받고 고생고생하며 코가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후 죽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오늘도 자기에게 임한 화를 끝까지 오기로 버티며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엘리야 시대에 기근이 있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엘리야를 대접하고 기근 내내 풍족한 양식으로 상급을 받은 자는 없었고, 다만 사르밧 과부가 그 행운을 얻었을 뿐이었습니다.


구약시대 누가 선지자 엘리사로부터 복을 받았습니까? 수넴 여인이 그 행운을 잡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 여인은 귀한 신분을 가졌습니다. 아마도 남편이 그 지방 유력인사였을 것입니다. 재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엘리사를 후히 대접하는 모습에서 그 재산의 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다 주의 종을 대접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 저는 어떤 늙고 가난한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글쎄 이분께서 20,000원을 봉투에 넣어 주시며 심방 감사하다고 식사나 한번 하라고 주셨습니다. 짜장면으로 치면 여러 그릇인데 그분 인심이 아주 후하셨습니다. 그전 같았으면 극구 사양했을 저였지만 그 집사님의 고운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그 돈을 받았습니다. 주의 종의 임무 중 하나가 거룩한 제물을 거룩한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은 후덕하여 가진 재물을 주의 종을 섬기는 데 썼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아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나이가 많아서 소망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남편이 나이가 많으니 이 여인도 나이가 많음이 분명합니다. 옛날에 아들이 없으면 집안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대를 잇는 것도 그렇고,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문제가 이 여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감사히 여기며, 이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간청해도 복을 못 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복에 덜 관심을 보여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거의 강권하여 복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넴 여인이 후자에 속합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기고 잘 대접한 여인에게 엘리사가 묻습니다. ‘사는 데 뭐 필요한 것이 없습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 많으니 말 해 보시오.’ 이 여인은 이 물음에 특별한 대답을 안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넉넉하게 사고 감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복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그녀에게 없습니다. 엘리사가 그 종 게하시에게 이 집안에 뭐 필요한 것이 없는가 알아보라 했습니다. 이 집에 아들이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불러 1년 후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제 아들이 생겼으니 이 수넴 여인은 기를 펴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출생과 함께 이 수넴 여인의 삶은 완전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여자로서 인생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여인이 된 것입니다. 여자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여인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기를 생산하여 잘 기르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요 보람된 일이 아닐까요? 남자는 그 고생하며 기껏해야 곡식을 생산하고, 가축을 기르고, 돈을 버는데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간이라는 생명을 생산하니 이것이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남자가 힘들여 가축을 길러 얻는 기쁨이 여자가 예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기쁨과 비교가 될까요? 양 새끼나 송아지가 어린아이만큼 재롱을 부리던가요? 하나님께서 여인들에게 주신 사명이 바로 정결하고 거룩한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거룩한 아이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 막중한 사명을 망각하고 젊은 날 불륜을 저지르며 부정한 자식을 잉태하여 부정한 인간을 낳는 것은 큰 죄입니다. 인간에게 행한 죄이고 하나님께 행한 죄입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이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이 여인은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의 종으로 알아보고 대접을 했습니다. 교역자가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돈과 세상적 명예는 이미 출발 때부터 포기한 것입니다. 단 하나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주의 종으로서의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을 지켜주는 자에게 주의 종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줍니다. 제가 주님께 부름받아 주의 종이 되기 전에 교회에서 집사가 되었고 청년부 지도교사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회원은 “집사님, 집사님”하는 자들이 있었고, 또 다른 자들은 “선생님, 선생님”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두세 살 정도 적은 청년이 총각인 저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니 민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좋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생이 못되어도 너에게만큼은 좋은 선생이 되겠다.’ 저는 오늘까지 당시에 저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복을 빌어줍니다. 그 외에 저에게 좋은 호칭으로 불러주셨던 모든 자들을 위해 저는 책임지고 지금까지 기도해 줍니다. 이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어떤 집사님은 주의 종의 직분을 잠시 사임한 저를 보고 ‘자네~’라고 하더군요. 하나님의 복이 총알같이 달려들어도 튕겨낼 믿음입니다. 철갑을 두른 분이시죠. 교만의 철갑! 주의 종을 경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생각을 아예 말아야 합니다. 주의 종을 존중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자입니다. 주의 종은 축복권을 가졌습니다.


또한 수넴 여인이 복을 받은 이유는 아픔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일을 한 데에 있습니다. 수넴 여인의 가정에 주의 종 엘리사를 모시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아들이 없는 집안에 그것도 남자 손님이 자주 들락거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수넴 여인의 남편 입장도 편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주의 종이지만 엘리사도 남자입니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의 방을 청소하고, 음식도 차려 바치고, 심부름도 가끔 하고 그러니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수넴 여인은 그 남편을 설득합니다. “이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진실된 말을 진실로 믿어주는 그녀의 남편이 아주 맘에 듭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의 말을 믿어줍시다. 부부간의 신뢰가 깊은 이 가정은 이미 많은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남자가 아들을 못 낳는 자기 아내를 버리거나 후처를 두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수넴 여인은 덕이 많고, 특히 남편을 공손히 설득하는 재주가 남다릅니다. 얼굴이 예쁘면서도 화를 내며 독설을 내품는 여인의 얼굴이 배고픈 암사자 얼굴로 변하는 것을 저는 가끔 보았습니다. 교만하고 화를 잘 내는 여자는 정말로 상대하기 힘듭니다. 공손한 아내를 둔 그 남편이 딴 맘 안 먹고 산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약점이 있는 중에도 자기 복과 권리를 지킵니다. 여인이 약점이 많은 가운데서도 교만하며 화를 잘 내고 부정한 짓을 하면 그 인생 하나님께서도 책임을 못 지십니다. 누가 그 파멸을 막을 수 있습니까?


엘리사를 자기 집에 모셔드리는 일이 어쩌면 수넴 여인의 가정의 위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잃고자 하면 생명을 얻을 것이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나그네와 같은 주의 종 엘리사를 집에 모시고 먹을 것을 대접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사랑을 건 이들이 바로 이 수넴 여인 부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부에게 더 큰 사랑이 있게 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며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부에게 이전보다 더 큰 사랑이 있게 하십니다. 그 돈독한 사랑의 비결이 바로 늦둥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노부부에게 늦둥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요즘 중년의 위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돈 좀 벌어 잘 살게 되면, 점점 늙어가는 아내를 버리고 바람을 피워 가정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남자는 맘이 착하여 그런 짓은 안 하지만 성인병이나 그 합병증 때문에, 혹은 사고로 인하여 성불구자가 되어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힘들어 고민하기도 합니다. 한 때 비아그라가 인기 절정에 있었는데 요즘도 그렇겠지요. 밀수하는 자들이 있으니 찾는 자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만큼 비정상적인 부부관계로 고민하는 부부들이 많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부는 노년에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제반 문제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남편도 건강하고 아내도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늦둥이가 그 증표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남녀간에 언제 사랑이 가장 뜨거울까요? 신혼기가 아닐까요? 누가 신혼부부입니까? 이미 20대에 초등학교 학부형이면 신혼은 다 지난 것입니다. 비록 늙었어도 처음 아들을 낳고 젖도 먹이고 기저귀도 빨아야 신혼입니다. 이 부부는 신혼의 사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또 대를 잇는 아들을 보게 되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복 받은 부부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 이 부부가 부부사랑의 결정품인 아들을 선물받았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면에서 유효합니다. 주위에도 보면 남을 대접 잘하는 자가 잘 살더군요.


하나님의 일인고로 자기 아내가 남의 남자에게 밥상을 차려다 주어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 수넴 여인의 남편에게 어떤 복이 임했습니까? 이 남자는 젊은이 못지 않은 삶의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 집안의 아들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옛날에 아내가 아이를 못 낳으면 다른 여인을 고용하여 자식을 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부실하여 자기 아내가 아이를 못 낳으면 남몰래 건강한 남자를 고용하여 아이를 낳게 하고 그 집안의 대를 잇게 했습니다. 이때 자기의 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에 잠시 맡겼던 그자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정상적인 방법으로 건강한 자녀를 낳은 자들은 다 하나님께 감사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없거나 딸만 있는 남자는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왠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가 죽습니다. 수넴 여인의 남편도 그렇게 기죽어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마을의 이장 선거에 이 남편이 출마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아들도 못 낳는 주제에 다른 일은 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노인이?’ 그러나 이제 아들을 낳고 나니 사정이 반전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저 노인네 대단한 분이시다. 늙은 나이에 아들을 보시다니! 무슨 일을 맡아도 잘 하실 것이다. 옆 동네 젊었어도 아들 못 낳는 박춘삼 이장보다 낫다.’ 늙은 나이에 몸이 건강하여 삶의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요? 돈 많고 자식이 많아도 50세가 되기 전에 성불구자가 되면 불행하지 않습니까? 벌어 놓은 돈은 많은데 늙어 매일 빌빌거리며 병원에 출퇴근하는 자와 비교하면 이 남편의 복이 얼마나 큽니까? 평생 자기의 아픔을 무릅쓰고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노년의 건강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여기서 마치면 뭔가 좀 싱거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노부부에게 장수의 복을 허락하시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늦둥이를 보고나서 얼마 있지 않아 이 두 부부 중 하나가 일찍 죽으면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부에게 이 늦둥이가 다 성장할 때까지 건강함을 주셔서 이 늦둥이를 잘 키우게 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늦둥이를 보고나서 75세를 더 살았고 욥도 늦둥이를 보고 140세를 더 살았습니다. 아마도 이 부부도 장수의 복을 누리며 손자까지 봤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 부류의 부부가 나옵니다. 먼저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이 둘은 하나님 앞에 다 부정직했습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울 시기에 자기들의 노후 대책자금 얼마를 떼어놓고 주의 종을 속이다가 같은 날에 죽었습니다. 노후 대책자금을 한 푼도 못쓰고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들에게 배신당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더 억울하셨겠습니까? 아나니아라는 말의 뜻이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인데 아나니아는 자비로운 하나님으로부터 지엄한 벌을 받았습니다. 불행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로 맺어주신 이유는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충성하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부부가 공모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면 이런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는 한 사람만 복을 받았습니다. 나발은 어리석은 자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세상 욕심에 끌려 인간관계조차도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이 남자는 홀로 죽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인격을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예쁜 처녀라도 감히 꿈도 못 꿀 자리를 아주머니가! 한국의 아주머니 성도님들이여, 신앙의 인격만 잘 갖춰지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수넴 여인 부부입니다. 이들은 가정이 화목했으며, 자신들만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등한히 하지 않았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ps. 수넴 여인의 아들은 나중에 한 번 죽게 됩니다. 이 때 엘리사가 그 아이를 살리려고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점점 따뜻하더라.” 그 죽은 아이를 살리려고, 수넴 여인에게 받은 환대를 갚으려고 엘리사는 아이의 시체에 키스까지 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 그 누가 몇 번 숙식을 제공받았다고 그 집안에 있는 시체에 키스까지 합니까? 수넴 여인이 엘리사에게 대접한 수고가 더 큽니까, 엘리사가 수넴 여인 가족에게 행한 수고가 더 큽니까? 인간이 아무리 사랑이 많다고 하나 하나님의 사랑에 비할 바 못되고, 평신도들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하나 목회자의 사랑에 미치지 못합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가정의 시체와 같은 부분들을 자기 일로 여기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여 회복시킵니다. 성도들에게 향한 목회자의 사랑이 의외로 크니 성도님들께서는 가끔 목회자로부터 서운한 말을 들으셔도 그 목회자의 사랑 자체를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