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10편) : 하나님의 침묵

stevision 2012. 11. 24. 11:41

 

(2007년 3월 3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의 침묵                                                    English
말씀: 시10편

  

 

 

>>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8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 11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니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총명하여 그의 글과 논리는 기독교 교리의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가 처음에는 초대교회 핍박의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핍박을 당하는 교회 내에 세 종류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 저 자는 교회를 파괴하는 악질 마귀의 종이오니 즉시 벼락을 내리어 숨통을 끊어주옵소서!’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저 바울이라는 악인에게 고통받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 저 바울이라는 자가 아직 복음에 대해 무지해서 저 모양으로 살고 있사오니, 저 자를 변화시켜 주셔서 교회의 큰 재목(材木)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바울이라는 자가 얼마나 교회 핍박에 열심을 내었는지 이웃 나라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오려고 살기가 등등하여 행차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그는 빛 가운데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영광을 누린 다음에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사람이 되어 만년 노총각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부활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증거하다 생을 마쳤습니다. 후에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교회를 핍박했던 때를 회상하며 자기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자비를 자기에게 보이셔서 자기를 변화시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삼으신 것을 감사 드리며 찬양하고 다녔습니다.

세상에는 바울과 같은 자도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교회를 핍박할 때 악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에 바울은 무지한 자였지 악인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무지해서 죄를 범해 죄인이기는 했으나 악인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제 딴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겠다고 하면서 했던 짓이 교회 핍박이었습니다. 후에 바울은 자기가 용서받은 것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 짓을 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그렇게 핍박했던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도 찬성했던 자가 바로 바울입니다. 따라서 교회나 교인을 핍박하는 자들 중에 바울과 같은 자들이 있어서 후에 개종하여 교회의 큰 일꾼들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핍박하는 자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그들이 변화되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합니다. 핍박을 많이 했던 자가 변화받으면 이전에 핍박했던 그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유독 독살스럽게 반기독교적인 자들을 눈여겨보신 후 그 자에게 참복음을 전해 주는 것도 해볼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과 같은 자를 발견합니까? 먼저 인격을 갖춘 자가 바울과 같은 자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불효 저지르고, 거짓말 잘 하고, 매사에 마음이 휘어져 굽은 행동을 하는 자는 십중팔구 태생이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런 성질 가지고도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에게 복음을 전할 시간에 다른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더 이익입니다. 바울은 당시에 유대교인으로서의 올바른 신앙인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던 자였습니다. 이웃에게 치사한 짓 하며 살던 바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참 진리를 찾으려 하는 자가 바울과 같은 자입니다. 바울은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던 자였습니다. 그가 왜 변화되었습니까?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진리 앞에 자신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자가 참다운 학자이고, 양심이 살아있는 자이고, 진정 지혜로운 자입니다. 바울에게는 진리에 대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아보았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진리에서 더 확장된 기독교 진리를 접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거기에 걸었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평소에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참다운 인격을 갖추고 참다운 진리를 추구하던 자가 기독교를 오해하여 반기독교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려 그에게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지혜를 주시고 마음을 열게 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잠시 기독교를 오해하여 핍박을 가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예수께서 교훈하신 대로 인내와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시편 10편 말씀에 나오는 핍박자는 악인입니다. 보통의 악인은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믿고 악행을 저지릅니다. 이들에게는 약간의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깨달으면 마음을 고쳐먹고 바른 삶을 살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10편에 나오는 악인은 뻔히 하나님께서 계신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형벌이 속히 임하지 않으니 간덩이가 부어서 계속 악행을 저지르는 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최악질 인간이지요. 이 자는 인격마저 최하위 등급입니다. 이 자는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등쳐먹는 자입니다. 심지어 사람이 보지 않는 데서는 살인도 저지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의 악인들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교회 안나오면서 더러운 인격을 보이며 죄를 짓는 자들과, 교회에 나오면서도 남몰래 더러운 인격으로 죄를 지며 선량한 교인들을 괴롭히는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 불미스런 일들이 가끔 일어납니다. 간음에 빠진 목회자, 교회 헌금 갖고 종적을 감추는 신도, 여러 교인들에게 돈을 빌려 자리를 뜨는 교인 등이 바로 오늘 시편 10편에 나오는 악인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이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마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거룩한 기독교 단체 안에서 더러운 인격을 소유하며 은밀히 죄를 범하는 자들은 더 이상 타락할 게 없이 최고로 타락한 자들입니다. 저렇게 더러운 인격을 소유한 자들을 위해 100년을 기도 해 보십시오. 아마 안 바뀔 겁니다. 마귀도 자존심이 있지요. 성경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를 드리셨으나 가룟 유다를 위해 따로 기도를 드리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다가 마귀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마귀의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혹시 유다처럼 보이는 자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런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안되겠지요.

문제는 자신의 오해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속까지 다 악한 자들에게 의인들이 오랜 기간 고통을 당해도 왜 하나님께서 침묵을 하시냐는 겁니다. 그러나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에 죽고 사는 마당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악인이 괴롭히더라도 걱정할 바는 못된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14절에 보니 “주께서는 (악인의 행위를)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눈을 만드신 분께서 사람들의 일을 못 보시겠습니까? 귀를 지으신 분께서는 인간의 모든 소리를 들으시고, 영을 지으신 분께서는 마음속 깊은 생각도 다 아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불평하느냐 아니면 모든 사정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원수를 물리치느냐입니다. 우리가 오랜 기간 어떤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려 그 문제를 해결받으면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깊은 인격’을 체험하게 됩니다. 뒤돌아보면 악인이 날 해치려 날뛰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하여 주셨고, 악인은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합당한 형벌을 받고 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다 듣고 계셨으며, 나의 신음소리도 다 듣고 계셨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나의 모든 기도를 다 응답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자비로우시며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우리로부터 온전한 신뢰와 감사하는 믿음의 고백을 먼저 들으시기 위해 안타깝지만 계속 침묵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하고 우리의 성숙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모든 궂은 일에도 처음부터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이유가 없지요. 이스라엘 군대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때 하나님의 종 엘리사의 입이 바로 열려 응답의 예언을 했습니다.

우리는 위의 경우를 대하며 무엇을 배웁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악인의 삶을 사는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줄 뻔히 알면서 교인들끼리 거짓말하고, 뒤에서 험담하고, 십일조 떼어먹고, 여러 가지 경범죄를 범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맘 넓으신 분이시라 생각하며 오랜 기간 그런 짓을 했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악인들이 형벌을 받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죗값의 갑절로 받을 수 있으니 악인이 오랜 기간 잘 먹고 잘 살다가 하루아침에 고꾸라지는 것을 보거든 너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오래 참으시다 한 날에 폭삭 망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악인들처럼 미련한 삶을 살면 안됩니다. 우리가 범죄함에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그분께서 우리의 삶을 그냥 무조건 받아주시고 계신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데도 주께서 침묵하고 계시면 정말로 나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음을 빨리 깨닫고 퍼뜩 정신차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악인이 장수하며 잘 살고, 내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러한 악인에게 고난을 받고 살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인격을 신뢰할 수 있나? 악인들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믿음을 참된 믿음으로 확인시켜주는 자들입니다. 때론 아무 이유없이 악인에게 고난을 받더라도, 또 악인이 완전 범죄를 저질러서 국가로부터 형벌을 받지 않더라도 나는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뢰하며 감사할 수 있나? 우리의 신앙은 이유없는 고난에 대해서도 조건없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완성입니다. 이유없는 고난에 대해 이유있는 불평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거저 영생을 얻을 자격이 있습니까? 따라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악인이 우리에게 가하는 이유없는 고통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것을 잘 견디며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드리면 그처럼 아름다운 마음에 어디 있습니까? 그처럼 귀한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믿는 자들이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면 악인은 고난의 칼을 우리에게 들이대어 우리를 멋진 보석으로 깎아 놓습니다. 연마의 기간이 길수록 원석의 크기가 크다는 것이고, 연마의 기간이 길수록 흠 없는 극상품 보석이 탄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가련한 자를 핍박하는 자는 교만한 자라고 그럽니다. 2절,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그러면 가련한 자를 돕고 사랑하는 자는 겸손한 자라는 말도 되겠군요.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은 일종의 섬김의 행동이니 자기보다 못한 자를 섬기는 것은 참다운 겸손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우리 가련한 인간들을 섬기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겸손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으라 우리에 말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영생을 얻을 자들은 그분의 마음을 본받아 약자를 돕고 가난한 자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며,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시기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교만한 마귀는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생명까지 불어넣으신 그분의 피조물들을 파괴하려 혈안입니다. 약자를 괴롭히는 악인들 보시오. 당신들이 교만하여 약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깁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유없는 모든 고난을 견딥시다. 예수님과 함께 이 일을 합시다. 그분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 일을 합시다. 그리하여 마침내 예수님처럼 우리도 모든 악을 이기고 승리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시고 세상이 주는 고통을 이길 인내력을 주시어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