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계22:11-15) :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stevision 2012. 11. 24. 11:38

 

(2007년 2월 28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English
말씀: 계22:11-15

  

 

 

>>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리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맨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

성경에는 두 가지 곧은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의미로 곧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의미로 곧은 것입니다. 성경은 먼저 목이 곧은 자들을 책망합니다. 목이 곧은 자는 머리에 교만한 마음으로 꽉 차 있고, 진리로 교훈하고 책망해도 꿈쩍도 않고, 죄를 회개하여 돌이켜 바른 삶을 살기를 거부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패망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이렇게 목이 곧은 자들과 백성들은 구약 성경에서 여러 차례 선지자들의 경고를 받다가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망하게 됩니다. 이와는 다른 의미의 곧은 것은 심지(心志, 마음의 뜻)가 곧은 경우입니다. 심지가 곧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에서 좌로나 우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자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마음에 있는 굳은 의지에 힘입어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지킵니다. 심지가 곧고 굳은 자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마음의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 자신들의 악한 삶을 계속 굳세게 유지하는 것은 결코 자랑할 바도 못되고, 그러한 굳센 의지를 우리가 본받을 것도 못됩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불의하고 더러운 짓을 하는 자들은 계속 그 짓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한 자들이 된다고 합니다. 목이 곧은 자들과 심지가 굳은 자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구세주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심지가 곧은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차음부터 끝까지 절대 변치 않고 동일한 분이심을 세 번 강조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22:13).” 결코, 결코, 결단코 시종일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시겠다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변치 않는 굳센 마음이 정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각 사람이 일한 대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 천국문에 들어가 생명나무 과실을 먹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은 절대 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악인이 아무리 마음을 굳세게 먹고 자신을 지키려 해도 공의로운 법을 제정한 절대 권력인 정부의 뜻에 의해 형벌을 받습니다. 문제는 힘과 권세입니다. 객관적인 힘이 없는 자가 제 아무리 뜻을 세워도 더 강한 자에 의해 그 뜻을 접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그래서 오직 예수님의 뜻만 최종적으로 관철됩니다. 따라서 모든 의인들은 예외 없이 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결정된 사항입니다.

악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들은 영원히 자신들 뜻대로 살고싶겠지만 이들의 뜻은 도중에 꺾여야 합니다. 이들의 생각과 계획이 최종적으로 유효한 게 아닙니다. 이들은 무력한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잠시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대한 권세만 가졌을 뿐입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굴복해야 합니다. 굴복하기 싫어도 굴복해야 합니다. 이들이 남을 억지로 굴복시켜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공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 억지로라도 굴복해야 합니다. 이들은 개들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짐승같이 산 자들입니다. 윤리와 도덕과 인륜과 천륜을 무시하고 짐승처럼 산 자들이 예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들은 술객들입니다. 점치고 거짓 예언하고 종교를 이용하여 남을 속여먹은 모든 사악한 가짜 의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들은 행음자들입니다. 간음, 강간, 성추행, 매춘, 동성애 변태를 하는 인간들은 다 영원한 죽음을 맛볼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받은 귀한 생명을 자신들의 더러운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했으므로, 그리하여 이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모욕했으므로 이들에게 천국에서의 영생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이들은 영원히 지옥에서 저주받은 시간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들은 살인자들입니다. 죄회개를 거부한 살인자들이 천국에 있으면 안되지요! 생명을 발로 밟고도 영생을 얻겠다고요? 꿈도 참 야무지시네요! 생명을 소중히 한 자가 영생을 얻을 소망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상숭배자들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돌덩이나 통나무를 깎아놓고 거기다 절하며 복을 달라고 한 죄가 큽니다. 인간보다 못한 동물들도 생명 없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보다 훨씬 많은 지혜와 지식을 부여받은 인간이 동물만도 못한 미련한 짓을 했으니, 이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이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물질 이하로 만든 것이니 이들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정조를 버리고 간음한 여자는 스스로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린 죄가 있습니다. 물질과 건강 복을 받으려고 우상숭배를 한 자들도 간음한 여자 못지 않게 자신들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렸으므로 중죄인들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자들도 예수의 지엄한 판결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들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 최후 심판 같은 것은 없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서 믿지 않은 죄가 큽니다. 이들은 살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간사한 혀를 놀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여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어떠한 형식이나 내용의 거짓말이든 그것을 하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님께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습니다. 세상의 많은 거짓말쟁이들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어내서 밝은 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려 놨습니다. 예수께서는 저 저주받은 더러운 입과 혀를 가진 죄인들을 반드시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저 더러운 죄인들이 악한 마음을 굳게 하고 스스로 귀를 막아 진리의 말씀을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그 더러운 짓을 했는데, 예수께서도 세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저렇게 고집스럽게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기필코 지옥의 형벌을 내리실 뜻을 굽히지 않고 계십니다. 누구 고집(?)이 더 셀까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확보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더러운 죄를 범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고집쟁이들인지 즉시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위해서... 죄인들아 즉시 눈물로 회개하여 영생을 얻을지어다!

오늘 성경 말씀이 예수께 대해 한 증언을 좀 더 살펴봅시다. 성경은 예수께서 알파와 오메가이시라고 합니다. 알파는 신약성경 언어인 헬라어의 첫 번째 알파벳이고 오메가는 마지막 알파벳입니다. 따라서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전체를 상징하며, 이는 세상의 모든 언어와 사상 중에 참된 말씀과 사상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상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말이 아닙니다. 사실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진짜 말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공허한 말과 사상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공허한 말과 사상들은 빈 껍데기 말일뿐입니다. 겉모습만 사람인 마네킹이 사람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지요. 내용과 형식이 다 갖춰진 인간만 진짜 인간입니다. 마찬가지로 거짓말은 말이 아니고, 무지(無知)한 말도 말이 아니고, 거짓 사상도 사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자들이 거짓말만 길게 늘어놓은 무식한 철학자들의 궤변에 현혹되어 있습니까? 저는 철학자 헤겔의 말을 믿느니 차라리 개코원숭이를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오직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만이 진리이며 참된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남김없이 다 성취될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자들이 소위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에 심취해 있는데, 그들은 그 철학자들의 교묘한 논리에만 관심을 갖지 그 철학자들의 사상의 출발점, 즉 그들 사상의 전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상누각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만 사실은 어리석은 자들이 바로 저런 쓸데없는 철학 사상을 세상에 내 놓은 자들이고, 또한 그 철학자들의 사상을 연구하느라 평생을 허비하는 자들입니다.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그 쓸데없는 철학을 진리로 여기며 사는 게 문제라는 말이지요. 참으로 할 일없는 자들이지요. 그러나 기독교 진리는 다릅니다. 기독교 진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맨 처음과 맨 나중이라고 합니다. 이는 순서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어떠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첫 번 째 관심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첫 번 째 관심은 바로 예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관심도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관심도 바로 예수님의 뜻입니다. 교회도 가정도 개인도 모두 다 관심과 순종의 첫째와 마지막 째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방향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은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우리 모두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삶입니다. 우리가 장성하여 그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정해 살기 위해 우리는 목이 곧은 자가 되면 안되고, 온전한 순종과 겸손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첫 번째 관심은 바로 예수님의 영광이고 우리의 마지막 관심도 바로 그분의 영광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삶의 방향을 정해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걸을 때 우리의 길은 천국문에 이르는 대로를 걷게 됩니다. 비록 현실의 삶은 그 길이 좁고 험난해 보이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 길이 진짜 천국대로(天國大路)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시작과 끝이라 말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라는 말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어 세상이 시작되게 하신 예수께서 파란만장하게 진행된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신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생명의 시작과 끝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처음과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뤄집니다. 한 나라가 일어서고 그 나라가 패망하는 것도 그분께서 정하신 시간 계획표에 따릅니다. 죄인들의 마지막 날짜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거듭나는 날짜, 즉 우리의 영적 탄생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날에 시작됩니다. 우리들의 고난이 끝나고 번영의 축복이 시작되는 날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 열리는 날도 땅의 기름진 복이 열리는 날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막대한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때 우리의 모든 시작과 끝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질 때 조급병과 초조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작과 끝은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세상 근심 걱정을 할 시간에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우리에게 시작이 임할 때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에게 마지막이 임할 때 한없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우리의 옷을 빨라고 권고하십니다. 죄를 해결하는 것이 깨끗한 흰옷을 입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얼룩진 죄를 다 씻을 수 있습니다. 죄는 죄이고 선행은 선행입니다. 선행으로 죄를 상쇄시킬 수 없습니다. 설사 죄보다 선행을 더 많이 한 자도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의 죄를 지울 수 없습니다. 자선사업을 많이 했다고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나온 범칙금을 면제받나요? 그렇지 않지요? 죄와 선행은 그처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죄는 용서받아야 할 것이고, 선행은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의 죄를 상쇄시키겠다는 자는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해먹겠다는 자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교만한 자라고 합니다. 그게 아니지요. 어거스틴이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죄는 우리의 욕심에서 비롯되고 선행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요. 그런 이유로도 죄는 죄이고 선행은 선행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사함받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나의 죄로 인한 고난으로 믿을 때 우리의 죄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죄를 용서받아 영생을 누립시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모든 시작과 끝을 복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