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17편) : 주의 얼굴을 봄

stevision 2012. 11. 25. 14:03

 

(2007년 4월 21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주의 얼굴을 봄                                                English
말씀: 시17편

 

 

 >> 1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치 아니하였나이다. ... 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어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

아파트 뜰에서 어린애 하나가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어디 갔지?” 이런 말을 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그 엄마라는 여인은 건물 모퉁이에서 숨어서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버릇을 고치려 잠시 아이의 눈에서 피해 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어미가 얼굴을 내밀고 “아가야” 그러니까 그 아이는 금새 울음을 멈추고 기쁜 얼굴로 어미에게 달려가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거였습니다. 아직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었는데도 그 아이는 즉시 평안과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아이에게 엄마는 무한한 평안과 만족을 주는 존재입니다. 아이가 잠에서 깨서 울 때가 있고 울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려 엄마 얼굴이 보이면 울지 않고, 안 보이면 “으앙”하고 천둥소리를 냅니다. 오늘 시편 17편 다윗의 시는 주인공이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다윗과 그의 인자하신 엄마(?) 하나님입니다. 15절을 봅시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전날 모든 복잡함과 피곤함을 안고 잠이 듭니다. 그리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얼굴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고 계셨고 자기는 하나님의 인자한 얼굴(형상)을 보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무한한 평안과 기쁨을 맛보았노라 라는 주제로 이 시를 남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형상을 뵈올 수 있습니까? 다윗처럼 천진난만한 하나님의 자녀가 인자하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때 우리의 모든 문제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올 때 우리를 감싸고 있던 암흑은 새벽의 어둠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때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다 씻겨져 있고, 우리의 모든 추함은 다 사라져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며, 우리를 괴롭혔던 모든 어둠의 세력은 천리 밖으로 달아나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있습니다. 눈을 씻고 봐도 원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뵈올 때 우리는 기쁨과 평화와 안식과 만족과 거룩함의 나라에 거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바로 살 때 우리는 항상 그분의 인자한 얼굴을 뵈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더럽게 살면 하나님께서 잠시 얼굴을 감추시고 잠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직한 마음과 거짓되지 않은 입술”을 가진 자입니다.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1절).”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자녀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러 성전에 왔다가 거짓된 태도를 보였다가 큰 화를 당했습니다. 거짓은 사람에게 하든 하나님께 하든 성령을 속이는 죄입니다. 거짓은 어리석은 자가 주로 사용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누구에게든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맛있는 떡이 변질되어 악취가 나면 누가 그것을 먹겠습니까? 거짓을 마음에 품은 자는 영과 육이 변질된 자입니다. 마음은 거짓을 품고 있고 얼굴은 그 거짓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합니다. 우리가 모든 거짓을 다 버리고 정직한 마음과 입술로 주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자가 되고, 이 향기는 하나님을 무한히 기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 거짓이 없는 모습으로 다가갈 때 우리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봅니다. 사람들이 정직한 우리 기독교인들을 칭찬할 때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정결하고 정직한 삶은 하나님을 영화로우시게 해드리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산 제사입니다. 좋은 향기가 변질되면 가장 독한 악취를 발하고, 향기로운 꽃이 썩으면 가장 악한 냄새를 내듯 선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짓을 마음에 품어 변질되면 정말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됩니다. 여러분, 항상 거짓을 마음에서 몰아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의 자녀는 입으로 범죄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사는 자입니다.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3절).” 입으로 하는 범죄는 먼저 거짓말이 있겠고, 이에 더하여 남을 모욕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혀와 마음의 자존심은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혀는 우리의 자존심을 세우려 정말 온갖 추악한 것을 다 만들어냅니다. 거짓, 허풍, 과시하는 말, 남을 얕보는 말을 순간적으로 만들어냅니다. 남을 모함하는 말도 거짓된 혀가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사람들에게나 하나님께 발하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저렇게 제멋대로 노는 혀를 잘 단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통해 자신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과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아부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패하고 낙심한 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면 얼마나 그 자가 새 힘을 얻을까요? 무한 경쟁에 내몰아진 남편을, 혹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위로하고 새 힘을 얻게 하는 고운 말을 하면 얼마나 그 자가 힘이 나겠습니까? 아내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아내는 세상 살맛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입니다. 때로는 내용이 별로 없는 말이라도 큰 효과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남에게 힘을 주는 말은 무한한 창조력을 지닙니다. 반대로 거짓말, 험담, 비하하는 말, 무시하는 말, 기분 나쁘게 비교하는 말, 기를 꺾는 말은 파괴적인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파괴적인 말을 일절 금하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다윗은 입으로 범죄하지 않겠다고 마음에 작정을 한 자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합니까?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허탄함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울 때 우리는 성숙하고 은혜 충만한 언어를 구사하게 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2:8).”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잠17:27).”

하나님의 자녀는 의(義)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4, 5절).” 하나님의 자녀는 범죄에 빠져 사는 자들과 어울려 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않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남의 것 강탈한 것을 나눠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삽니다. 성경이 정한 의인의 길에서 한치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샛길로 가다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악을 행함으로 얻는 세속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을 손해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련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범죄행위가 주는 일시적 달콤함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혀 미끼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 미각은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이득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역겨움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록 고되더라도 때로는 쓴맛이 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쁨입니다.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세상길을 가겠다는 자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샛길로 빠지면 하나님께서 다시 바른 길을 가게 하시려고 샛길에서 돌에 걸려 넘어지게 하십니다. 여러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닦아놓으신 고속도로가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른 길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 길로만 가고 샛길로 가다 실족해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길이 의(義)의 길, 생명의 길, 성공의 길입니다.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잠2:20-22).”

하나님의 자녀는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잘 먹고 잘 살아서 뱃살이 두둑해지고 교만한 말을 하는 악인들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10절).” 악인의 뱃살이 두둑해지면 마음까지 기름으로 찌들어 있어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그들을 업신여기는 말을 내뱉습니다. 악인들은 몸이 억세고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서 자신과 가족을 안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계획한 약탈은 어김없이 성공합니다.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12절).” 그 악인들은 세상이 주는 풍성한 산물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들(14절).” 즉 그들의 창고에 금과 은과 좋은 옷과 양식이 쌓여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배를 곯고 산 적이 없습니다.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얻고(14).” 그들은 자식도 많고 그 자식들은 그 악인들이 남긴 재산을 상속받아 떵떵거리며 삽니다.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14절).”

다윗이 그런 악인들이 존경스러웠다면 그들과 한패가 되어 그들의 약탈물을 함께 나누며 사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악인들을 존경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한패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그 악인들은 의롭게 사는 다윗이 꼴보기 싫어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서 달아나 하나님께 피합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8, 9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구원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7절). 강하신 하나님께서 그것도 오른손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십니다. 높은 산의 견고한 성과 같은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피하면 원수의 화살이 미치지도 못합니다. 그 누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을 격퇴할 수 있겠습니까? 그 누가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처럼 여기시고 사랑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암탉이 날개로 병아리를 사랑하여 품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여 품으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원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의로운 길 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험악하고 힘든 세상의 새 아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강한 원수와 눈앞에 펼쳐진 삶의 역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떨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음의 눈에 인자하신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면 그것으로 대만족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요즘 나의 삶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인지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죄가 있다면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깨끗해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함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주시고 도우시고 복 주시려는 마음이 더 간절하십니다.

여러분께서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원하며,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