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25편) : 주를 바라는 자

stevision 2012. 11. 27. 09:30

2007년 6월 16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주를 바라는 자                                           English
말씀: 시25편

  

 

 

>> ...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로다. 13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

세상에는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친구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나를 해치려는 자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돈이 나올 곳도 없는데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많고,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자들은 많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이게 바로 “외롭고도 괴로운 상태(16절)”가 아닐까요? 여러분 이러할 때 자신의 삶을 저주하거나 타인을 욕하거나 하늘을 원망하고 싶으시지요? ‘내가 이 고생하려고 세상에 태어났단 말인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데도 단비와 같은 은혜가 내리지 않으니 속만 터질 뿐인가요?

여러분, 먼저 죄용서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7절).”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 깨달음이 있을 때 분함과 원망이 사라지고 창조주 하나님의 자비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실 내게 임한 모든 불행은 내 죄의 결과물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설사 자신과 타인이 보기에 의로운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임하는 여러 불행들은 자신의 무능의 결과입니다. 자신의 정신이 무능하여 방탕과 방종 가운데 살다가 재산을 탕진하거나 몸을 버려 병을 얻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기꾼에게 속았더라도 자신의 지혜와 신중함이 부족했고, 쉽게 돈벌려는 욕심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겉과 속 다 완전히 깨끗한 자가 도무지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지금 외롭고도 괴로운 삶을 살고 있다면 남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삶을 저주하기보다는 겸허히 자신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받는 게 급선무입니다. 죄용서의 기도가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다윗에게 참기 힘든 가정의 불행이 닥쳤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다윗이 그 아들을 피해 달아납니다. 반란군과 다윗의 군대가 싸워 반란군이 진압되고 압살롬도 죽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남을 원망하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네 대신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윗은 자신의 가정의 불행이 자신의 부하 우리야를 죽인 죗값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임한 불행을 갖고 남의 탓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왜 이런 불행이 재수없게 내게 임했나?”라고 하지 않고 “나는 이런 불행을 당해도 싸다”라고 한 것이지요. 여러분 외롭고 괴로울 때 입에서 험악한 말이 나오려 하면 꾹 눌러버리시고, 대신 아름다운 회개의 기도와 겸손한 도움요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보고 들으라고 험악한 말을 하시렵니까? 험악한 말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진짜로 여러분이 의인인데도 험악한 불행이 닥쳤다면 그 불행으로 인한 여러분의 고난은 여러분에게 해가 되지 않고 반드시 여러분에게 복이 되는 데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정직한(8절)”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의인이 자신의 허물에 비해 너무 과하게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그 당한 고난을 갑절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혹시 병이 들면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원망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면서 오직 생명들만 먹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살리려 곡식들이 수없이 죽었고, 여러분을 살리려 가축들이 수없이 죽었습니다. 우리가 병들어 죽기 전에 다른 생명체들의 죽음이라는 고통이 있었고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병이 들거나 죽음이 임한다고 누굴 원망합니까? 태어나 생명을 누린 자는 다른 생명체들의 희생으로 그런 복을 누렸으니 자기에게 병이나 죽음이 닥쳐도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입밖에 내면 안됩니다. 특히 병은 나의 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하나님께 나를 강하게 회복시켜달라는 기도는 드려야겠지만 그분을 원망하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임한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하거나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것입니다. 죄로 인한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고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분께서 흔쾌히 용서해주시고 우리의 복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누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마음이 온유한 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온유한 자는 마음이 순하고 겸손합니다. 겸손하기 때문에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를 용서하시고 온유한 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인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9절).”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를 이끄시되 공의로운 방식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람의 잔꾀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가 지켜지는 방식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무능으로 인한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인도하심으로 다 해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공의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부당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다 제거하시고, 우리의 부족한 재능을 채워주십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의 도움 요청을 무시하는 것은 공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이 없고 지혜가 없다고 생각될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얼마나 많이 성경에 나와있습니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4절).”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10절).” 하나님의 길은 없던 것도 있게 되는 길입니다. 홍해바다가 짝 갈라져 길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남들이 다 가는 큰 길이 아니라 다른 좁은 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했을 때 왕의 대로로 갔다면 며칠만에 가나안에 도착했을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길 같지도 않은 광야의 길을 40년이나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모든 불신앙이 다 제거된 길이었습니다. 모든 혈기가 다 제거된 길이었습니다. 오직 하늘의 만나만 먹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참다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는 길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만 믿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크고 넓은 길로 가지말고 좁은 길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외롭고 괴로워 하나님께 인생의 길을 활짝 열어달라고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믿음만 있다면 그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 길을 가시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그 길은 힘은 좀 들겠지만 괴로운 길은 아닙니다. 내 부패한 자아가 죽고 온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 내 안에 형성되기 위해 처음에는 힘이 좀 들겠지만 이것도 믿음이 있는 자는 거뜬히 견딜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회복과 승리의 길을 예비해 놓으셨는데도 내 짧은 지혜로 그것을 거부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입니다(10절).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결실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들을 도와주시겠다고 분명히 언약하셨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자에게 성공과 승리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언약과 증거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늘의 도움이 임합니다. 원수는 나를 심히 미워하고 죽이려 하나, 원수보다 무한히 더 강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게 신실하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시어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구덩이에서 건지십니다.

여러분, 창피당하고 싶지 않으시지요? 하나님을 바라고 그분을 피난처 삼으십시오.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니(3절).”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옵소서(20절).” 여러분, 아침에 삶의 현장으로 출근하실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오니 오늘 제가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공과 승리를 주시어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치 않고 칭찬과 존경을 받게 해주십니다. 이와 달리 교만하고 죄짓기 좋아하는 자들은 맨날 수치를 당합니다.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라(3절).” 여러분, 힘든 상황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아부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피해 그분에게서 피난처를 찾으십시오.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 숨으십시오. 힘든 일이 있을 때 죄짓기 좋아하는 자에게 아부하고 뇌물 줘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마귀는 좋아라 감상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서글프게 여기실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구덩이를 만들어놓고 우리가 더 죄짓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오냐, 그런데 왜 이제야 오는 거냐?”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달려가면 절대 사람들에게 창피당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는 자는 주님께 소망을 두는 자를 말합니다. 소망의 닻을 하나님께 내리는 자가 바로 주님을 바라는 자이고, 이 자가 바로 세상 살면서 수치를 당치 않고 승리하고 성공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는 자입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마음속 깊이 평화가 자리잡고 있고, 이 자는 자신이 받은 많은 복을 후손에게까지 물려줍니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13).” 아무리 태풍이 몰아쳐도 견고한 곳에 닻을 내린 배는 결코 파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견고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 소망을 두는 자는 결단코 인생 파선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소망을 둔 자는 절대평화를 맛봅니다. 외롭고 괴로운 자가 그분께 소망을 두면 세상이 절대 깰 수 없는 평화를 맛봅니다. 예수께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분께서 명하시니 광풍이 몰아치는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평화의 왕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주인이십니다. 여러분이 그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그분의 문제가 되고, 그분께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절대 어려운 것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죄를 그분께 고하고 용서를 받아 영생을 얻었다면, 여러분이 이번에는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를 그분께 맡겨 수치를 당치 않고 승리와 성공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고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신 그분께서 여러분의 문제 해결 하나를 못하시겠습니까? 문제는 그분에 대한 여러분의 신뢰입니다. 신뢰하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소망을 닻을 하나님께 내리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바람으로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치 않고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