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요20:24-29) : 흔들림 없는 굳센 믿음

stevision 2012. 11. 27. 11:23

 

(2007년 7월 18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흔들림 없는 굳센 믿음                                           English
말씀: 요20:24-29

  

 

>> 24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

이단의 교주인 마호멧과 한국의 ㅌㅇ교 교주 ㅁㅅㅁ과 미국의 몰몬교 창시자 조셉 스미스의 치명적 약점이 뭔지 아십니까? 이들이 천사나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만났다는 경험이 자기만의 경험이었다는 겁니다. 또한 이들은 이전에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기존의 정통신앙을 거부했다는 겁니다. 세상에 얼마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헛된 환상을 보고 무식하고도 망령된 말을 해대는 인간들이 많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홀연히 나타나셨습니다(요20:19).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동시에 여러 제자들에게 보이심으로 제자들에게 그들이 부활을 확실히 목격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는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바울과 같은 자는 예수님을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완전한 단독이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갔던 다른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울이 만나고 있던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바울이 어떤 종교 경험을 하고 있는 순간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꿈을 꾸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신비로운 대상과 인격적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지요. 또 무엇보다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시에 체험했던 여러 사도들이 말하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사도들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만난 예수님은 실제 예수님인 것이지요.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베드로와 바울의 하나님, 루터와 칼빈의 하나님, 한국의 주기철 목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신적 대상을 체험한 자들은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유산을 계승 발전시킵니다. 기독교는 건물과 같습니다. 기초석은 예수님이시고, 그 위에 여러 벽돌을 쌓아 건물을 이룹니다. 자기 아래의 벽돌과 기초석을 함부로 빼버리면 그 건물은 붕괴되고 맙니다.

도마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자기가 없는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진리로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는 그릇된 것입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체험한 기독교인들의 말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그릇되어 그렇습니다. 적어도 인격에 문제가 없고 정신도 건강한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고백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신앙의 대상을 인정해야 합니다. 도마는 동시에 한 장소에서 여러 제자들이 동일한 한 분의 예수님을 만났다고 제자들이 주장했을 때 예수님의 등장이 단순한 개인의 환각현상이 아님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혹자는 집단 최면에 걸려 제자들이 있지도 않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시에 만났다고 주장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당시에 최면술사가 있었나도 의문입니다. 또 성경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두가 다 예수께서 죽으셔서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신 분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을 개인이나 집단이 환각 또는 최면으로 그런 공동 체험이 가능이나 했겠습니까?

도마의 신앙은 어떤 거였습니까? 도마는 증거가 확실하면 진짜로 믿겠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5절).” 그런데 이 도마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도마는 다시 사신 예수님의 증거로 그분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은 당신의 양들을 사랑한 증표였습니다. 도마가 진짜 다시 만나 뵙고 싶었던 대상은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예수님이었습니다. 여러분, 평신도들이 자기 목사님을 진짜로 존경하고 목자로 인정하게 만드는 요소가 뭔지 아십니까? 자기의 목자에게 못자국과 창자국이 있음을 보았을 때 평신도들은 자기 담임 목사님을 진정한 목자로 인정합니다. 예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몸에 상처가 날 정도의 희생을 한 자는 양들의 목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희생과 사랑이 목자의 인품이 되어야 합니다.

도마와 다른 제자들간에 그러한 대화가 있고 나서 8일이 되었을 때 예수께서 도마와 다른 제자들이 있는 방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하셨습니다. 이 때 나타나신 예수님은 지상 사역 당시의 그 육체를 소유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떤 기독교인은 믿는 자들의 부활이 영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릇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완전한 육체와 완전한 영을 갖춘 부활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나 짐승들은 죽어 다 흙이 되었고, 한 사람의 육체를 구성했던 원자들이 다른 생물에게 흡수되어 몸을 이루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았던 그 육체가 부활 때 복구되냐”고 질문하실 겁니다. 한 원자가 시간차를 두고 여러 생명체에 흡수된 적이 있다면 그 원자가 부활 때 누구의 몸을 이루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모순은 저(Z^_stevision)의 글 ‘창조주 하나님’을 참고하시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정말로 자신이 죽었다 살아나셨음을 보이셨고,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라 당부하십니다. 사람은 뭔가 간절히 바라거나 기대하고 있을 때 그것에 맞는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생각을 접고 자기 길을 가려 할 즈음에, 즉 도마가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때에 그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정말로 믿고는 싶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믿어지지 않는 도마에게 예수께서는 확실히 당신의 부활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대나 예측에 맞춰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지 않으십니다. 인간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뜻과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 계시하십니다.

확실한 증거를 본 도마는 파격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 옛적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진다는 주장을 했고, 많은 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우박이 떨어질 때 큰 덩어리나 작은 덩어리가 동시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물체는 무게에 비례하여 빨리 떨어지지 않고 무게와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라면 큰 우박 덩어리가 먼저 떨어지고 난 다음에 작은 덩어리들이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갈릴레오가 확실한 증거를 보고 나서 이전의 그릇된 지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학설을 주장한 것이지요. 여러분, 확실한 증거를 보았다면 그 증거가 제시하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증거를 보기 좋아하고 의심이 많던 도마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예수님께서 나사렛 출신의 경건한 종교인이라는 부정확한 지식을 버리고 자기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바로 도마가 확실한 증거를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고, 도마는 이것을 여러 제자들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본 근거가 무엇입니까? 인간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나 예수께서는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보통 사람은 다른 곳에 있는 자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으나 예수께서는 도마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를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보통 사람은 문이 닫혀 있으면 못들어오나 예수께서는 칸막이 벽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사람들 앞에 선 적이 없었습니다. 도마는 자기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신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심을 그가 발견한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예수께서 이룩하셨으므로 그분께서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보통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라는 증거들이 심히 많으니 이 진리를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께서 착하게 살다 돌아가신 보통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라 칭하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러나 도마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도마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복된 자입니까? 병에 걸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많은 재산을 잃어도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사업에 실패해도, 사고를 당해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자가 바로 복된 자입니다. 조그만 실패에도 예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믿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우리 눈에 확실한 것이 안 보이고, 우리 손에 확실한 것이 잡히지 않을지라도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심과, 나의 죄를 감당하신 나의 구세주이심과, 나도 그분과 같이 죽음 이후에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자가 복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확실한 복을 받아야만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믿는 자는 복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믿으면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이지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에 근거하여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도마의 태도는 십자가 고난 이전에 미리 죽은 후에 3일만에 부활하시겠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말이고, 이는 예수님의 품성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이고, 이 태도 때문에 예수께서 언짢아하시는 겁니다. 매사에 증거를 구하는 자는 정말 불확실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 자는 마귀의 공격의 표적이 됩니다. 마귀가 그런 자의 취향에 맞는 거짓 증거를 보여줄 때 그 자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 응답이라 착각하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반드시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굳게 믿는 자는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을 버리거나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안 보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 구원에 이른 진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증거를 보면 믿겠다는 자는 아직은 믿지 못하겠다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자는 아마 평생 가도 제대로 된 믿음을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인 증거를 대라고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 빈 무덤 사건을 통하여, 그리고 많은 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모든 인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증거에 대한 반응은 각자 주관적 판단에 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지만, 어떤 자들은 그런 증거를 보고도 그분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결국은 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께서는 죽으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구세주이시고 여러분을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들에게 평강의 복(26절)을 주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있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평화는 완전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내가 좀 실수를 해도 나의 인격을 신뢰해주는 자가 있다면 이 얼마나 나를 상쾌하게 만드는 자입니까?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거룩한 성품을 믿어주는 자는 예수님의 기분을 매우 상쾌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진실되고 굳세어 평강의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