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4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지혜로운 백성, 지혜로운 평신도 English
말씀: 애2:11-22
>>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 20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오리이까.... <<
사사기 9장에 보면 기드온의 첩이 낳은 아들 아비멜렉이 외갓집이 있는 세겜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를 왕으로 삼아 자기의 다스림을 받으라 말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유명한 사사 기드온의 여러 아들들 중에 자기 동네 출신의 첩이 낳은 아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게 좋아보여 아비멜렉에게 돈을 모아줍니다. 아비멜렉이 그 돈으로 깡패들을 불러모아 자기 이복형제 한 명 요담만 빼고 나머지 70명을 다 죽이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원수 미디안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구해 평화를 안겨줬더니 세겜 사람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 반목케 하셔서 아비멜렉이 군사를 이끌고 세겜에 와서 그곳 사람들을 죽여 마을을 피바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아비멜렉이 나머지 성을 공격하는 중에 성에 있던 여자가 위에서 멧돌을 던져 아비멜렉의 머리를 부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 악인은 그날 죽었습니다. 부모나 형제나 자식을 죽인 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두시고 벌을 내리십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악인을 비호하여 무죄한 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사람을 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겜에 살고 있던 어린애들은 부모들이 지은 죄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칼에 죽고 불에 타죽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아이고, 나만 죽으면 됐지 왜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내 자식들까지 죽게 하시나!’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대신에 내가(Z^_stevision) 대답해주지요. “그것은 당신들이 악한 자를 도와 죄없는 남의 자식들을 죽였기 때문이오.”
전에 대구 지하철을 건설하다가 가스 폭발이 있어 많은 자들이 죽었고, 지하철이 완공되고 나서 운행 중에 어느 정신나간 자가 지하철에 불을 질러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한 도시에서 두 번의 대형 사건으로 육이오 전쟁 이후에 최대의 인명피해를 본 것은 절대 우연의 사건이 아닙니다. 왜 대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까? 개중에는 죄없는 어린이를 비롯하여 독실한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많은 자들이 죽었을까요? 그것은 영남지방 사람들 특히 대구 사람들이 아비멜렉과 같은 정치인을 두둔하여 많은 의로운 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악한 정치인들이 광주 사람을 미워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빽으로 삼아 대담하게 광주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죽은 광주 사람들 중에는 죄없는 젊은이들과 독실한 기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핏값은 악한 정치인들의 무가치한 더러운 피로 보상이 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대구 사람들의 깨끗하고도 소중한 피로 보상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의 눈물은 의로운 자의 눈물을 통해, 의로운 자의 피는 의로운 자의 피로 갚게 하십니다. 물론 그런 보응의 기간 중에 악한 자도 심판하시지요. 이 땅에서 심판을 안 하시면 죽은 다음에 반드시 악행을 저지른 자를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어 악한 자의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하고 지원하여 의로운 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악한 자와 악한 자를 두둔했던 자들뿐만 아니라 죄없는 그들의 자녀들까지 해를 당케 하십니다. 왜냐? 그 자녀들의 부모들 때문에 죄없는 자들이 해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 부모의 죄 때문에 자신의 피를 흘린 자들은 억울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안됩니다. 그 자들의 피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타인의 죄를 감당하여 흘린 것으로 인정됩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죄 없으신 분께서 의로운 피를 흘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피는 모든 악인들이 불법을 자행하며 흘린 의로운 자들의 피를 보상하는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의로운 피에 합당한 보상을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의 대구 지하철 사고로 죽은 죄없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죽음을 당했던 자들로 인정받을 것이고, 천국에서 큰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자의 죗값을 그 자의 3대 자손까지 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에는 아비의 죄 때문에 아들을 벌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좀 상충되는 말씀들 같지요?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아비 죄를 인하여 자식에게 벌을 내리면 안된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자녀의 의로운 고난이 필요하면 그 자녀에게 고난을 주시고, 의로운 피가 필요하면 그 자녀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겁니다. 대신 천국에서 그 악인의 자녀들이 흘린 의로운 피는 보상해주시겠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그 자녀의 죽음이 그 자녀의 악한 아비에게는 분명 형벌이 되지만, 그 자녀 자신에게는 절대로 형벌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 악인의 자녀들에게 벌을 내리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친히 지은 죄에 대해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심으로 해를 당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패망하자 남은 자들이 자기 조상들의 죄를 왜 우리가 감당하여 망했냐고 하나님께 원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망할 당시의 사람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의로운 자의 고난과 죽음이 분명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한 고난과 죽음은 분명 자기 이전의 사람들의 죄를 감당하며 자기 이전의 의로운 자들의 고난과 죽음을 보상하는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들 가운데 악한 정치인들을 두둔하지도 않았고 온 가족이 선한 삶을 산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대구라는 지역 전체의 책임을 묻지 않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선지자가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망하는 꼴을 목격하고 나서 쓴 글입니다. 군인을 비롯한 장정들은 칼에 죽고, 부녀자들은 강간을 당하고, 제사장은 성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물론 이 때는 성이 무너져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고, 그 이전 상황도 이에 못지 않게 비참했습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들이 자기 품에서 굶어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자식이 죽자 식량이 없어 그 죽은 자식의 살을 먹었습니다. 성이 무너져 적군이 들이닥칠 때 적군은 어린 아이라고 봐주지 않았고, 노인네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적군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죽였고, 살육이 싫증나자 목숨이 붙어있는 자들 얼마를 그 땅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포로로 끌고가 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 ...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여러분, 하나님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천둥소리처럼 들으십시오. 여러분, 여러분께서 사시고 계신 곳의 악을 방치하지 마십시오. 한 지역, 한 나라 안에 오랜 기간 동안 악이 횡행하여 많은 의로운 자의 눈물과 죽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날을 잡으셔서 그 악하고 더러운 지역을 다 엎어버리십니다. 그 날에 그곳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죽든가 아니면 이전 사람들이 흘린 의로운 피를 보상하기 위해 의로운 죽음을 죽든가 둘 중 하나에 의해 죽게 됩니다. 어린 아이라도 죽어야 합니다. 의로운 자도 죽어야 합니다. 물론 악인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지요.
패망한 이스라엘인들은 어리석은 백성이었고, 어리석은 여호와 종교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악한 정치인들을 추방하지 않아 이스라엘 안에서 의로운 피를 계속 흘리게 했고, 그들은 올바른 선지자를 배척하거나 죽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게 했고, 대신 자신들의 죄를 묵인해주는 거짓 선지자들을 살려두고 존경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믿었고, 거짓과 미혹케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14절). 하나님께서는 분명 거짓 선지자들을 살려두지 말라고 하셨으나 이스라엘의 왕을 비롯한 일반 백성들은 자기네들의 귀만 즐겁게 해주는 거짓 선지자들을 따랐습니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신실한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죄를 질책했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계속 무시하며 우상을 섬겼고, 의인을 괴롭혔고, 의로운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웃나라들이 결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성전 건물이 여러분을 지켜주지 못하고, 신분이나 직책이 여러분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신자는 참된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릅니다. 어리석은 신자는 삯꾼 목자의 거짓말을 믿고 따르다가 함께 망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삯꾼 예언자들이 설치고 다닐 때에도 참된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삯꾼 예언자들은 권세를 잡은 악인들을 책망하기보다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 삯을 받고 점치듯 예언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짓이 본래 의미의 예언은 절대 아닙니다. 모양으로 봐서 예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지요. 분명 그들은 하나님 이름 들먹이며 찾아온 자들이 듣기 좋은 소리를 했을 겁니다. 참된 예언자들은 분명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악을 행하면 엄중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책망합니다. 참된 예언자들은 불법과 불의로 인해 한숨과 눈물짓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며 그들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예언활동을 합니다. 무엇보다 참된 예언자는 악에서 떠나기 싫어하는 자들에게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죄를 지었을 때 죄를 책망하고, 여러분이 회개하기를 거부했을 때 심판을 선언하는 자가 바로 진짜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러분이 뻔히 죄를 짓고 있는데도 여러분의 영적 목자가 여러분을 그렇게 살도록 그대로 놔두면 그 목자는 참된 목자가 절대 아닙니다. 영이 혼미해져 성도들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알면서도 여러분과 충돌하기 싫어 그냥 방치하는 경우, 둘 중 하나입니다. 이는 그릇된 목자입니다.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성도의 죄를 눈감아주는 게 목사의 일이 아닙니다. 죄를 지적하여 회개하게 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서받아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언자의 일입니다.
“...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찌어다. ...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찌어다... ”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오늘 본문 말씀을 기록한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런 환란 가운데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성전의 제사장이 칼에 죽었지만 그런 혼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라든가, 모르드개라든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살려주셨습니다. 환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진짜배기 의인들은 다 살려두십니다. 참된 의인은 칼도 피하고, 화살도 피하고, 불도 피하고, 역병도 피하고, 사고도 피하고, 그러한 의인들의 특징은 사람들의 죄를 가슴아파하고,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환란 날에 참된 의인들의 산성이십니다. 사람들이 굶어죽고, 죽어 다른 자들에게 먹히기도 하고, 칼이나 화살에 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그들을 냉정하게 외면하시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일부 택한 백성들에게는 한없는 자비를 보이십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으니 영혼이 깨끗한 자들이고 소중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눈물을 흘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참혹한 환란을 면하게 해주십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거짓 예언자들의 달콤한 말에 속지 않고, 자신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세상의 죄를 몰아내기 위해 눈물로 기도드리는 자입니다. 지금 당장 악인들과 세상의 죄악이 여러분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그것들을 그냥 못본 체 방관하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날에 악인들과 함께 화를 당하는 여러분을 못본 체 하실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때에도 여러분이 악인들처럼 죄가 없다면 천국에 가긴 하겠지만 약간은 좀 억울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 세상의 죄에 대해 무관심하지 맙시다. 참된 성도, 지혜로운 성도는 세상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방치하지도 않으며,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세상의 악한 세력과 싸워 이겨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싸워 이겨야할 대상은? 더러운 동성애 정신병 문화, 이혼을 비롯한 가정파괴 문화, 무분별한 마약과 섹스문화, 악인들을 두둔하는 왜곡된 인권문화, 종교 혼합주의, 탐욕에 빠진 황제 성직자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성도,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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