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30편) : 절망을 극복함

stevision 2012. 11. 27. 11:25

 

(2007년 7월 21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절망을 극복함                                           English
말씀: 시30편

  

 

>>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 5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자는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자기 수입보다 갚아야 할 원금의 이자가 더 큰 자도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매일 같이 나를 괴롭히는 자들이 나보다 더 힘센 자들일 때 사람은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요즘은 대학 나와도 취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0번 20번 이력서를 제출해도 아무런 결과도 없을 때 사람들은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을 떨쳐버리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2절).” 여러분께서는 절망을 떨쳐버리고 하나님 안에서 새 소망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하나님 아버지, 제 병을 고쳐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저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직장 좀 구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제 원수가 저보다 힘이 셉니다. 저를 보호하여 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제발 빚 좀 갚고 살게 해 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여러분을 그냥 깊은 구덩이에 방치해 두시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절대 수치를 당치 않고 그 난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있든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피하면 절대 부끄러움을 당치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그분께 피하기만 하면 100% 승리하게 됩니다.

왜 다윗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찾습니까? 그것은 다윗이 보기에 하나님께서는 정말 믿을만한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정말로 신뢰해도 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볼 때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남에게 허풍을 떠는 자들이 있습니다. 능력도 없는 자에게 무슨 신뢰감이 생깁니까? 세상에는 무자비한 자들도 있습니다. 윤리와 법보다는 자기 주먹을 주로 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남의 유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배만 채웁니다. 이런 자들에게 무슨 신뢰감이 생깁니까? 배반하기 좋아하는 자들도 전혀 신뢰감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렇게 능력 없고, 무자비하고, 배반하기 좋아하는 자들과 전혀 다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존귀케 하시기 위해 그분께 피하는 자들을 돌보십니다. 피조물을 괴롭히는 창조주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존귀한 이름을 한층 더 존귀케 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의(義)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자식이 잘 되면 부모의 자랑이고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의 수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형통한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 그분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개는 다른 자들을 통하여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돕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사들의 손길을 통해 자녀들의 병을 고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좋은 선생을 만나게 하셔서 그들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불쌍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남의 도움 요청을 묵살하고서 어떻게 하나님께 도움을 달라고 기도를 드립니까?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먹칠하면 안됩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 제사장의 딸이 결혼도 하기 전에 재미삼아 아무 남자와 관계를 가지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거룩한 제사장인데 그 간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제사장의 명예에 큰 흠집을 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거룩한 것들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여 의로운 삶을 살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의 기도를 속히 들어주십니다. 우리의 거룩한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거룩한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찬송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 그분을 높이며, 그분께 감사드리며, 그분께 찬양을 드립니다. 인간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시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을 제거하시고, 의인에게 넓은 삶의 터전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은 자들은 다 그분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 찬양드립니다. 우리는 타인이 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찬양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형제가 일이 잘 풀렸을 때 그를 시기하고 은근히 미워하면 안됩니다. 형제들 간의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찬양을 헛것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큰 도움을 받고도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우리는 기쁨이라는 선물을 덤으로 받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내 이름은 하나님의 마음에 영원히 새겨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힘과 위로와 기쁨과 평화를 주십니다. 인간이 가장 아름답고 귀한 때는?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고 그분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잘 아시고 계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아름답고, 힘있고, 능력있다고 하나 까딱 잘못하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인간들을 돕지 않으시면 인간답게 살 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노염보다 은총을 훨씬 크게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녀들이 범죄할 때 잠시 노엽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노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반성하고 성숙한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노염은 예리한 칼이 되어 우리의 죄 덩어리들을 잘라내 버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실 때에도 절대로 낙심하면 안됩니다. 자식이 조금 잘못했다고 아버지가 그 자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잠시 징계를 하시겠지만 우리가 그분의 사랑스런 자녀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남의 자식은 잘 하든 못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지요. 그러나 자기 자식은 잘못하면 채찍을 드는 게 정상적인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징계하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니, 징계를 받더라도 더욱 더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태도를 보일 때 하나님의 노염은 기간이 더욱 짧아지고 그분의 은총은 영원 영원하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얼마간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식지 않을 때 그 자는 비로소 성숙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 성숙한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고 그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십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물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면 죄인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세상에는 살길이 막막한 약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미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으면 그 아기는 죽고 맙니다. 어미가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필히 망하게 될 자들이 그분께 도와달라며 기도를 드릴 때 그분께서는 무한한 긍휼함으로 그들을 도우십니다.

여러분께서 위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정할 때 소망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위와 같은 믿음을 가질 때 절망은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는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분께 기도드리지 않고 그분을 떠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들은 절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죽은 자의 침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승리한 자가 드리는 찬송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헛되지 않은 참된 소망이 있게 하고, 하나님과 자신간의 사랑을 무르익게 만듭니다.

기다림의 지루함이 우리의 믿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즉시 그 기도가 응답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려서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응답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 인정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믿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의인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오랜 기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야속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내가 클수록 여러분은 더 성숙한 의인이 됩니다. 기다림의 기간이 길다고 투덜거리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장래의 복을 잘 지킬 수 있는 자들이 되십시오. 큰 일을 할 자질을 갖추라는 말입니다. 복을 지킬 능력도 없이 복을 받으면 그 복을 영원히 잃는 수가 있습니다. 때가 되기 전에 딴 과일은 아무 짝에도 못씁니다. 때에 맞지 않는 기도응답도 그와 같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5절).”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띠우셨나이다(11절).” 여러분들의 삶에 이런 반전(反轉)의 은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녁에 눈물자국을 남긴 채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나의 모든 문제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기뻐해야 할 일이 내게 닥칩니다. 여러분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다 해결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한없는 사랑을 믿는 자가 모든 문제와 슬픔을 극복하고 기뻐하며 춤을 추게 됩니다. 절망은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도 엄습했으나 바울은 그 절망을 극복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1:8-9).”

여러분 절망은 불신앙입니다. 소망과 인내는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게 소망과 인내가 아니었던가요? 하나님 아버지시여, 믿음이 부족하여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속히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