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빌4:4-7) : 주 안에서 기쁨과 평화

stevision 2012. 11. 27. 11:30

 

(2007년 7월 25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주 안에서 기쁨과 평화                                         English
말씀: 빌4:4-7

  

 

>>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욘1:2).” 그런데 요나는 보기 드문 삐딱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줄행랑쳤습니다. 니느웨는 내륙에 있는 도시인데 요나는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려 했습니다. 니느웨로 가야 정상인데 방향이 반대인 다시스로 가려 하니 참으로 한심한 선지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다 가운데에서 큰 광풍이 일게 하시어 배를 거의 침몰 직전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선원들이 누구의 죄 때문에 신이 화를 내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요나가 순순히 자기 죄 때문에 그 어려움이 닥쳤다고 했고,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보내시어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회개 기도를 했고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어 요나를 해변에 토해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은 왕을 비롯하여 모든 자들이 다 하나님께 겸허히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어 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멸망시키시지 않을 거였으면 왜 자기를 귀찮게 이곳까지 보내셨냐는 투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혹시나 하여 요나가 성 밖에다 초막을 지어놓고 니느웨가 어떻게 되나 살펴보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박넝쿨이 자라나게 하시어 요나가 그늘에서 편히 쉬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니 이 때 요나가 “심히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날 하나님께서 벌레를 보내시어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고 그 날에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니 요나가 잔뜩 성질이 나서 “차라리 저를 죽이시지요”라고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박넝쿨을 아꼈는데 내가 십만이 넘는 이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요나가 성깔을 부리며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잃었습니까? 그것은 요나가 하나님 안에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하나님 안에 살고 있었다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쁜 마음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또 그가 하나님 안에 살고 있었다면,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기도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셨을 때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정말 힘들고 험한 곳입니다. 이 힘든 세상에서 여러분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주 안에 있음(빌4:4)”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이 주님과 따로따로 놀면 세상이 주는 모든 고난과 고통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쿡쿡 찔러 잠시도 여러분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주님과 따로따로 살면 시련과 고초가 닥칠 때마다 ‘내가 지은 죄가 많아 지금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때문에 여러분의 불안과 고통은 갑절로 커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밖에 있으면 항상 마귀와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끈질기게 괴롭힙니다. 기독교인이라도 주님의 밖에 살기도 합니다. 그 주된 이유는 자신의 현세적 꿈과 소망에 있어서 주님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관심사가 나의 관심사가 아니고, 나의 꿈을 내 자신이 결단코 포기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주님과 따로따로 살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될 때 참된 기쁨과 평화를 소유하게 됩니다. 내가 주님 안에 살고 주께서 내 안에 살 때 주님과 나는 하나가 되고, 나의 인생길은 주께서 보증하시는 의로운 길이 됩니다.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주된 요인이 바로 앞날의 불확실성입니다. ‘지금 내가 이 길을 가고 있는 게 옳은 길인가? 혹시 얼마 안가서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내가 주 안에 살 때 ‘내일 일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 나의 인생길은 주님 안에서 의로운 길이고, 주님 안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게 됩니다. 주님을 나의 선한 목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내 삶 전체를 맡길 때 주님과 나는 하나가 됩니다. 내가 주님과 하나가 될 때 나는 확신과 평강 가운데 살게 됩니다.

내가 주 안에 살 때 나는 의로운 자가 되고, 악한 세상이 주는 고난은 내게 근심과 불안이 아니라 큰 기쁨을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하나되어 살 때 악한 세력들이 우리를 핍박하게 되는데, 그 고난은 주님과 함께 하는 고난이 되고, 그 고난은 내가 주님과 하나라는 증거이고, 그 고난은 내가 영생을 얻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질병과 가난도 주님 안에서 사는 자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십자가이니 이 어찌 싫어하여 마다하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님께서 가난한 성도들과 병에 걸린 성도들의 사정을 모르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와 아픔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가난과 질병으로 맘고생 하지 마십시오. 내가 주님 안에 살 때 나의 모든 것은 내게 유익입니다. 부유함도 내게 유익이고, 가난도 내게 유익이고, 건강도 내게 유익이고, 질병도 내게 유익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사단이 찔러 놓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는데, 그가 하나님께 그것을 제거해달라고 기도드렸을 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그것이 꼭 필요한 육체의 고난이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기의 약점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도 주님 안에서 감사할 때 우리는 진짜 주님 안에 살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는 가난한 자들도 있고 병든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을 돕는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자이고 다 건강하다면 세상에는 도울 자도 치료할 자도 필요 없습니다. 따라서 부자나 건강한 자들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멸시하면 안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요나 이야기에서 볼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 크게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머리 위에 박넝쿨이 자라게 하시어 그늘을 만들어주시자 변덕스런 요나가 크게 기뻐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크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특별한 기적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기뻐합니다. 어찌 인간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 모든 일을 주님과 상의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 태도를 기뻐하시고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포기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나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박넝쿨 때문에 크게 기뻐했는데,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리고 형벌을 면케 해주시는 예수님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어찌 기뻐 안할 수가 있습니까? 잠시 햇빛을 가리는 박넝쿨이 더 가치가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는 예수님의 보혈이 더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쓸데없이 염려하지 마시고 기도를 드리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절).” 집을 나간 탕자는 남의 가축을 기르는 비참한 생활을 떨쳐버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낯으로 아버지를 뵙나? 그 많은 재산 탕진한 나를 용서하실까? 나는 이제 아들이 될 자격도 없으니 아버지 집에서 머슴으로 살겠다고 해야지.’ 그러나 그 날도 아버지는 집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먼 길을 보고 있었습니다. 걷는 폼이 둘째 아들 같은 사람이 보입니다. 아버지는 자세히 살펴 둘째 아들인 것을 알고 기뻐하며 뛰어나가 아들을 맞았습니다. 여러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둘째 아들이 한 걱정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고 왜 쓸데없이 걱정을 한답니까? 사실 걱정은 아버지가 하고 있었습니다. ‘이 둘째 녀석 분명 지금쯤 돈 다 날리고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건데 혹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평생을 거지처럼 살면 어쩌지?’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그분께 기도를 안 드림으로 계속 걱정하고 슬퍼하며 살 것을 염려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여러분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분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닥친 어려움에 대한 걱정도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퇴짜 놓으시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귀한 음식은 귀한 그릇에 담아 사람을 대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기도를 감사함이라는 그릇에 담아 하나님께 바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지 결코 짜증, 불평, 불만을 들으셔야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짜증과 불평과 불만은 마귀나 악인들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뢸 때에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말을 곁들여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소에 조그만 호의에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자를 더 돕고 싶어집니다. 감사는 도움을 준 자를 존경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도움을 준 자의 수고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그 말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도 마음을 활짝 여시고 아낌없이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고,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린 자는 신속한 기도응답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아무 염려없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절).” 여리고성이 무너진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여리고성을 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에 기쁨이 있으셔서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와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아시고 계십니다. 물론 그분께는 해결책을 다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감사함으로 소원을 그분께 아뢰는 자들은 하나님께 무한한 기쁨을 드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적당한 시기에 기도를 응답해주실 계획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응답을 주시겠다는 증거로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십니다. 기도 가운데 마음에 평강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주신다고 이해해도 됩니다. 또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 구함으로 기도 응답을 안 주실 수도 있는데, 그럴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면 평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기도를 즉시 다 이루어주시길 바라지요?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렇게 자기의 기도가 다 신속하게 응답되기를 바라신다면,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부탁의 말씀을 다 신속하게 순종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게으름 피우며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차일피일 미루며 불순종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즉시 응답되기를 바라십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여러분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여 살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기도를 기뻐하시며 즉시 응답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시원스레 순종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자가 되어 항상 기쁨이 넘치고,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방식으로 기도를 응답해 주시어 여러분이 불확실성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강같은 평화를 맛보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기도 제목, 특히 오랜 기간 해온 기도를 하나님께서 속히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