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사43:22-24) : 하나님을 기뻐함

stevision 2012. 11. 27. 11:35

 

(2007년 7월 28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을 기뻐함                                      English
말씀: 사43:22-24

  

 

>>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여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보고 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면 기분이 좋겠지요. 특히 맘에 쏙 드는 이성(異性) 나를 좋아한다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겠지요. 그러나 타인이 나를 싫어하고 나를 부담스러워한다면 정말 기분 나쁠 겁니다. 그런데 한쪽은 다른 쪽을 좋아하는데 다른 쪽이 그쪽을 싫어하면 짝사랑이라고 하지요. 짝사랑이 깊어지면 상사병(相思病)에 걸리게 됩니다. 사랑은 좋은 것이긴 한데 그것을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고, 사이가 틀어지면 깊었던 사랑만큼 상처의 깊이도 커집니다.

대개 보면 사람들은 아쉬울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그분을 경외한다고 하고 예배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만, 일단 고비를 넘기고 만사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솔직한 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 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닙니다. 지체 높으신 어른을 집안에 모시고 손님대접 하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경솔히 대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중에 규정에 어긋난 불을 사용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죽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찬송가 중에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라는 가사도 있습니다. 높고 귀하신 분을 가까이에 모시고 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에 모시고 사는 자들이 큰 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살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으로 올려졌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그 자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다른 자들이 다 큰 홍수로 죽었을 때 자신과 가족들을 살렸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제사를 드렸고, 이들의 자손들이 그분의 은총을 입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물(聖物)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면 얼마나 큰 복을 받을 것인지 잘 아는 지혜로운 자였기 때문에 성 밖에 있던 법궤를 자신의 성 안으로 들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법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는데 그것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소가 날뛰어 그것이 땅에 떨어지려 할 때 웃사가 붙들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웃사를 죽이셨습니다. 이에 다윗이 겁을 잔뜩 먹고 더 이상 법궤를 옮기지 않고 그 법궤를 가까운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 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법궤를 잘 보관하고 있던 오벧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복을 받으려는 열심이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다윗이 그 소문을 듣고 그 법궤를 기필코 자기 성에 두려고 또 생명을 거는 모험을 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법에 맞게 레위인들의 어깨에 법궤를 지게 하고, 여섯 걸음 옮기고 소 두 마리를 하나님께 잡아 바쳤습니다. 죄 투성이인 인간이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여섯 걸음 옮긴 것이 너무 죄송하고 죄스러워 소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이지요. “오 하나님, 이 살찐 소를 받으시고 법궤를 여섯 걸음 옮긴 것을 용서하소서!” 결국 다윗은 법궤를 자신의 성 안으로 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다윗에게도 분명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것이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때론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지만 그는 기필코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길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하기가 좀 힘은 들어도 그분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 남이 받지 못하는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복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 때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가 되고,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시니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했고, 다윗의 나라는 견고해졌으며, 다윗의 잔이 넘치고, 그가 부족함을 전혀 모른 채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자가 바로 다윗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다윗은 저렇게 지혜로운 자였는데,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의 이스라엘인들은 매우 어리석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 했다(22절).” 이들은 하나님을 싫어했습니다. 사람인 나도 다른 자가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면 기분이 나쁜데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싫어했으니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분이 나쁘셨겠습니까? 여러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랑할 때 복을 받습니다. 반대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역겨워하면 절대 복을 받을 수 없고, 이미 받은 복도 다 회수됩니다. 여러분 같으면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어 준 자가 배은망덕하게 여러분을 싫어하면 그에게 계속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싫어하는 자들의 죄를 절대 용서 안하시고 책임을 물으십니다. 결국 하나님을 싫어한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담스러워 하고 괜히 멀리 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엄한 분이시라 당신의 거룩을 훼손하거나 당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자들을 엄히 벌하시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43:4).”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귀하게 보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저렇게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여러분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절대 하나님께서 먼저 여러분을 싫어하여 내쫓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여 그분께 나아갈 때 여러분의 죄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를 막지 못합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43:25).”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짓고 당신께 나아오기를 주저할까봐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아예 그들의 죄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을 경배드림이 여러분이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되어 사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유익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여러분을 죄를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니 혹시 죄를 많이 진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 죄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죄 용서 기도가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것을 안해 하나님과 원수지간으로 삽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부담이 되어서 하나님을 멀리 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여러분, 헌금 조금밖에 안한다고 지옥 가는 것 아닙니다. 10원을 헌금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하십시오. 성경에 헌금 얼마 해야 천국에 간다는 그런 커트라인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헌금이 문제가 된다면 그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의 분에 넘치는 욕심이 문제입니다. 내일 일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내일 먹을 양식을 오늘 구해 쌓아 놓으려는 당신의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어떤 자들은 200년 동안 쓰고 먹을 돈을 저금해 놓고 하나님께는 정말로 구두쇠처럼 인색하게 굽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까 이스라엘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물이 아까워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비용을 부담스럽게 여겨 아예 하나님께 나아오지도 않습니다. 부모님께 드릴 용돈이 아까워 아예 부모자식의 끈을 끊는 인간처럼.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여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24절).”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아까워 아예 그분께 경배드리는 것을 포기하니 다른 일들로 인한 그들의 죄가 용서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게 됩니다. 여러분, 아까워하고 인색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정말 형편이 어려워 헌금할 돈이 없다면 그냥 빈손으로 성전에 나아와 예배드려도 됩니다. 여러분의 사정이 그러함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교만하고 인색한 부자가 내는 헌금보다 돈 없어 헌금은 못내지만 예배에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합니다. 살찐 황소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 드리는 찬양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합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과부의 동전이 다른 부자들의 큰 헌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낸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지만 예수께서는 “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맘이 있다”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부자가 말로만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꼴사나운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그분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재물을 통하여도 그분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재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다(23절).” 우리 인간들의 본분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서 찾아야 합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들이 되어 그분의 자녀로서 선하고 의롭게 살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로우시게 합니다.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높이는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절대 하나님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멀리하지 마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 때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또 세상일 하는 중에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또 자신의 재물을 그분께 바치는 것이 약간의 부담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고와 부담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모시고 살 때 우리가 받는 복을 생각할 때 결코 헛수고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가까이 모시고 경배드리는 삶을 살 때 그분께서 다음과 같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신28:10-13).” 이러한 현세적 복도 귀하지만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분을 공경하는 자는 그분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미천한 나를 알아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실감하며 살 때 우리는 무한한 자부심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귀하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분께서 나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나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때에 맞게 채워주시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공경하는 삶을 살아 다윗처럼 큰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