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9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선하게 심는 대로 거둠 English
말씀: 갈6:1-10
>>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
여러분, 절대 웃지 마십시오. 제가 대학 4학년 때인 것 같은데, 글쎄 그 때 제가 영어 조금 안다고 영어 문법책을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완전히 코미디도 아닙니다. 그 때 제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대대로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는 우를 범했을 것입니다. 제가 또 얼마나 웃기는 인간인지 하나만 더 예를 들지요. 제가 신학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제가 신학을 다 아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여러 책을 보고 나서 졸업 후에 이 정도면 신학을 안다고 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신학대학원 졸업 후에 더 많은 책들을 보고 난 지금의 결론은 제가 참으로 무식한 자라는 겁니다. 지금은 그저 ‘신학이란 대충 이런 방향의 학문이구나’ 정도만 파악이 됩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3절)’라는 성경 말씀이 설교 본문성경말씀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진리의 말씀이 제 모습을 정확하게 비춰주는데 그냥 침묵만 하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랑하지 마십시오. 지식 자랑, 돈 자랑, 건강 자랑, 얼굴 자랑, 그런 것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이상하게 여러분이 자기자랑을 많이 하면 주위에 있는 자들이 피곤해집니다. 어떤 자는 탐욕에 빠져 이기주의적인 목회를 하여 대형교회를 이룩하여 놓고 주위에서 말들이 많자 ‘기독교인은 타인이 질투할 정도로 복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한국에 대형교회 담임 목사님들이 여럿 계시지만 같은 대형교회라도 어떤 목사님께서는 철저히 겸손하시고 철저히 재물에 대해 일절 깨끗한 태도를 취하시어 눈꼴사납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어떤 대형교회 목사는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여 휘하의 부교역자들을 복음회사 직원취급하고, 재벌총수처럼 전횡을 일삼고, 사리사욕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고, 입만 뻥끗하면 자기 자랑을 그렇게 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온유, 겸손, 사랑, 십자가를 지는 삶, 청빈의 삶을 살며 사람들에게 진정한 기독교를 가르쳐주고 많은 자들의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산 자들이 많았음을 모르기 때문에 저런 무식한 종교행위자들이 자기가 뭔가 큰 인물이 된 줄 착각하고 자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자랑을 하시더라도 남에게 용기와 위로와 힘을 주는 자랑을 하십시오. 즉 육적인 자랑을 하지 마시고 영적인 자랑을 하시란 말입니다. 육신의 탐욕을 죽이고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았더니 세상적으로 큰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전파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도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세상적 복도 많이 주셨다는 고백도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을 행하여 좋은 것들을 차지하고 나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다고 자랑하면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뒤로 뭔가 구린 게 있어서 자꾸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 업적을 자랑하여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심리가 엿보입니다. 옛말에 민심은 천심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자랑을 안좋게 보시고 계심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심는 대로 거둔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것을 심어놓고 선한 열매를 거두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선 자들입니다. 눈속임으로 선을 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생각을 하는 자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자라고 성경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옛말에도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합니다. 성실한 삶을 사는 자에게 하늘도 감동하여 도움을 준다는 말이지요. 여러분, 성실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성실한 종교입니다. 어떤 종교는 10원짜리 종이에다 이상한 그림을 그려 넣거나 이상한 글자를 써놓고 신통한 부적이라 선전하며 수천 배 수만 배의 가격으로 팝니다. 이 얼마나 불성실한 종교입니까?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철저히 인간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비싼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40일간 금식하셨고,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이 때 마귀가 나타나 옆에 있는 돌덩어리를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왜냐하면 돌을 떡이 되게 해서 먹는 것은 불성실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떡은 농부가 씨를 뿌려 그 씨가 싹이 터서 몇 달 간 자라나서 열매를 맺은 후 그것이 익었을 때 농부가 추수하여 빻아서 반죽하여 쪄 만든 것입니다. 인간이 되신 성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식물들과 인간들의 수고를 모욕하지 않으시기 위해 40일을 금식하시고서도 돌을 떡으로 만들어 잡수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천국에 있을 우리들의 집을 지금 천사들을 통해 짓게 하시고 계실까요, 아니면 단순히 ‘좋은 집이 있어라’라는 말씀만 하셔서 만드실까요?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 천국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우리가 복음을 위해 이 땅에서 그 고생을 하는 것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도 여러 궁리를 하시며 우리의 집을 짓고 계십니다.
성실은 기독교의 고귀한 가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분이시고, 마귀는 철저히 불성실합니다. 마귀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라고 가르칩니다. 마귀는 결과만 좋으면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고 가르칩니다. 마귀는 자랑을 하더라도 남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하라고 가르칩니다. 마귀는 터무니없이 가격을 깎아 물건을 사게 하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매겨 팔라고 가르칩니다. 생명이 그리도 귀하거늘 마귀는 사람의 생명을 무가치하게 보게 만듭니다. 이는 매우 불성실한 태도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성실한 태도로 사는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철저히 성실하신 분이신데 인간이 불성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보기 흉합니까? 불성실하게 사는 자들은 마귀의 제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이는 이 땅에서 굶주림과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굳은 신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위해 심는 자들에게 육체의 것들이 맺혀지게 하십니다. 열심히 공부한 자들은 좋은 시험점수를 받게 됩니다. 열심히 운동한 자들은 경기에서 우승하게 됩니다. 열심히 일한 자들은 넉넉한 부자가 되게 하십니다. 깨끗하게 산 자들은 깨끗한 자녀를 보게 하시고, 더럽게 산 자들은 더러운 자녀를 보게 하십니다. 일은 하지 않고 노름에 빠진 자들은 점차 가산을 탕진하게 만드시고, 술을 좋아하는 자들은 건강과 재산을 잃게 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바람에 시험공부 하지 못하셨습니까?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서 공부한 만큼 점수를 받게 하십니다. 제대로 된 믿음은 그 낮은 점수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좀 불성실한 믿음은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 공부를 못했는데 왜 제 시험성적이 이렇지요?’라며 은근히 불평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교회 건축헌금을 1000만원 약정했다고 합시다. 그 돈 절대로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습니다. 피나는 고생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그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실은 말로만이 아닌 헌신과 수고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이 말하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음’은 영원한 천국의 삶을 고려치 않고 이 땅에서의 평안과 기쁨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면 이 땅의 것만 얻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불로 심판을 받아 없어질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 땅의 것만을 추구했던 자들에게 장래에 뭐가 남아 있겠습니까? 100억 부동산을 남겨두고 죽으면? 그것 100% 남의 것이 됩니다. 죽으면 자기 자식도 남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위하여 심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을 거룩한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고, 우리 재물을 성령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인생 길어야 80이고 80이라는 세월은 절대 긴 세월 아닙니다. 여러분의 여생을 영원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리하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9절).” 여기서 피곤하지 아니하면은 ‘포기하지 아니하면’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삶입니다. 선을 행하는 삶은 이 땅에서, 천국에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적당한 상을 주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선행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선행은 죄를 몰아내고 사람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1절).” 여러분, 개인, 가정, 교회, 국가에서 죄를 몰아내는 것이 선행이고, 이는 성령의 일입니다. 부패한 인간들이 요즘 간통죄를 폐지하자고 하고, 동성애 정신병자들의 인권 운운하는데, 그런 더러운 사상을 개인의 머리와 국가 윤리에서 몰아내는 자가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런 더러운 죄를 몰아내는 자가 진정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기독교에 대해 비방해도 성경이 제시하는 윤리가 세상에서 제일 고상하고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의로 성경이 규정한 더러운 죄를 범하는 자들을 바로 교육하여 바로잡아줘야 합니다. 완고한 마음으로 교훈을 거부하는 자들은 교회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이는 평신도나 성직자 구별없이 적용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독교인이 해야 할 선행은 서로 짐을 져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2절).” 성도들은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로 힘을 실어드리고, 목사님께서는 성도들의 죄용서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려야 하겠지요.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줘야 합니다. 가난한 자들도 얼마든지 기도로써 타인을 돕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쩌면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돈으로 돕는 것보다 가난한 자가 부자를 위해 기도드림이 더 큰 가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위로함으로 남편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줄 수도 있고, 남편은 열심히 일해 집안 사람들 돈걱정 안하고 살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기독교인이 해야 할 선행은 자기의 일을 살피고 각자 자기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4, 5절). 자기 본분을 다 하는 것 자체가 자신과 타인을 위한 일이므로 선행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짐을 지고, 어머니가 자기 짐을 져야 가족이 다 행복해집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자는 악한 자입니다. 예수께서도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질책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선한 직분과 직업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잘 수행함이 바로 선한 것입니다. 넷째로 기독교인이 해야 할 선행은 바로 성직자들에 대한 극진한 대접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6절).” 여러분, 담임 목사님 잘 대접해 드리십시오. 여러분, 또한 이웃 개척교회 목사님들도 하나님의 종임을 아셔야 합니다. 명절 때나 특별한 때에 그분들께 푸짐한 선물 드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자녀들이 학비가 없는 것처럼 보여지면 학비도 좀 대주시오. 좋은 대학 합격해놓고 등록금 없어 입학을 포기하는 주의 종의 자녀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자식의 일이라 생각하십시오. 이웃 교회 목사님께서 병원비가 필요하시면 재정적으로도 도와드리세요. 그런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성심성의껏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다섯째로 기독교인이 해야 할 선행은 성도님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10절).” 교회에는 내색은 하지 않고 항상 밝게 웃고 다니는 성도일지라도 심각한 재정적 곤란에 시달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도울 자를 찾는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와줄 자를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도울 자가 누구입니까”라는 아름다운 기도를 선하신 하나님께서 안들어주시겠습니까? 상대방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딱한 처지에 있는 성도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착한 마음과 착한 행실을 보시며 크게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남을 돕는 삶을 살 때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은 꼬리가 되지 않고 더욱더 머리가 되고, 여러분의 이름은 더욱더 존귀해지고, 여러분에게 임하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은 여러분의 잔이 넘치도록 만듭니다. 바로 인생의 만족과 기쁨의 잔이지요. 여러분께서 남을 돕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는 분이 되십니다. 여러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딱한 사정이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어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위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서도 스스로 선한 자로 알고 있었다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며 산 것입니다. 여러분이 위와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서 천국에서 받을 상이 클 것이라 믿고 있었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여러분이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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