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살후3:1-5) :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

stevision 2012. 11. 29. 18:22

 

(07. 12. 26. 동아 시사 발언대)

 

제목: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                         English
말씀: 살후3:1-5

  

 

 >> 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생명은 기쁨을 줍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는 화분이 많이 있습니다. 조촐한 화단도 있지요. 가끔은 밖에서 흙을 퍼다가 나무를 화분에 심기도 하는데, 어느 때인가 작은 개미가 흙과 함께 아파트로 들어와서 이제는 화분마다 개미집이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개미들이라 새로운 화분이 생기기만 하면 제 맘대로 입주(?)해서 제 집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개미가 있어서 귀찮을 거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개미들은 흙과 물기가 있는 화분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삽니다. 그것들이 문지방을 넘어 집안으로 기어들어 오는 것을 제가 허락하지도 않을뿐더러(에프킬라가 있잖아요) 이 개미들은 흙도 없고 물기도 없는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살 곳이 못되는 지역이거든요. 개미들이 제 분수를 알고 베란다 안에서만 얌전히 잘 살고 있습니다. 또 언젠가는 쥐며느리라는 곤충도 들어와 살더군요. 또 다 크면 새끼손가락 만한 연체동물(민달팽이라나?)도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크기나 형체가 거머리 비슷하게 생긴 겁니다. 작은 거미도 살고 있더군요. 이것들을 죽이지 않고 그냥 살게 했더니 나름대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잘 살더군요. 가끔가다 이것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밤이 되면 민달팽이 무리가 여기 저기서 기어 나와 베란다를 장악해버립니다. (가끔 밟혀죽는 놈들도 있지요.) 가끔은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문 유리를 기어올라가 관객에게 제 발바닥인지 뱃살인지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민달팽이 녀석도 있습니다. 벌레들에게도 사랑과 삶과 죽음이 있더군요. 가끔가다 음식 찌꺼기를 주면 이것들이 아주 맛있게 잘 먹습니다. 벌레들이 먹이를 먹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예쁘던지... 벌레들이 고기를 줘도 잘 먹습니다.

벌레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기쁜데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이들의 믿음이 날로 자라나면 얼마나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기쁨을 줄까요?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박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1절).”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이 빨리 확산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 믿는 자들이 많아진다는 말도 되겠지만 각 성도들의 마음 안에 뿌려진 복음의 씨가 싹이 터서 겨자나무처럼 크게 자라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그 복음이 내 안에서 빨리 자라나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이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선포된 복음의 진리를 의심하는 자는 자기 안에서 그 말씀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선포된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 날로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자라날수록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참된 복음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 않고 겸손하게 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자라날 때 나의 신앙적 지혜와 지식이 커갑니다. 영생을 위해 잠시 동안만 있을 이 세상의 복락을 포기할 줄 아는 게 지혜입니다. 나를 높이기 위한 삶보다는 구세주 예수님을 높이는 삶을 사는 게 지혜입니다. 믿음이 커갈수록 하나님과 예수님의 모습이 점점 나에게 선명해집니다. 그분에 대해 배울수록 내 마음에 그분의 모습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그분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이 진리의 빛으로 밝혀져서 모든 무지와 걱정과 근심과 어둠이 다 사라지고 확신과 평화와 기쁨이 가득 차게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 안에서 주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영광스럽게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할 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영광스럽게 됩니다. 말씀이 내게 임함으로 어둔 마귀의 세력, 거짓된 마귀의 세력, 악한 질병의 세력이 물러나고 회복과 거듭남의 삶, 말씀에 순종하는 삶, 거룩한 열매를 맺는 삶이 내게서 나타납니다. 죄악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될 때 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길 기원합니다. 또한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임하여 그 말씀이 단기간에 널리 확산되어 그 말씀이 영광스럽게 됩니다. 말씀의 권세가 축소되는 곳은 말씀에 치욕을 끼치는 곳이고, 말씀의 권세가 날로 확장되는 곳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여러분, 부지런히 전도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신속한 확장과 영광으로 인해 바울의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만 생각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받은 자들은 그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 자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자신의 믿음을 키우셔서 목자의 기쁨이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이처럼 믿음이 자라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합니다. 믿음이 자란 만큼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교회에 나가 말씀을 배우고 믿음이 자라면 자란 만큼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배우기만 하고 그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열매 없는 나무입니다. 열매를 못 맺어 도끼에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하는 자들이 되면 안되지요. 어떤 자는 교인들에게 인기가 있어 교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긴 했으나 목회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만 골라 하기도 합니다. 그 자리에 다른 자가 있었다면 목회자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교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인데, 이런 자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할 일은 하지 않아 하나님 나라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며 삽니다. 그러면 안되지요. 여러분은 자리 차지하고 교회에 방해만 되고 일만 만드는 자가 되지 말고 바울이 제시하는 좋은 신앙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먼저 바울은 기도에 열심을 내는 자들이 되라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당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살후3:1-2).” 바울은 해외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최전선 야전사령관이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데살로니가에서처럼 속히 퍼져나가게 되도록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성도님 여러분, 여러분께서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전파를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쓸데없이 놀러 간 곳 또 시간 내서 놀러가지 마시고, 쓸데없는 오락에 탐닉하지 마시고, 무의미하게 오늘 하루도 낭비하지 마시고 전세계의 신속한 복음화를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목사님 설교 수준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마시고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위해 중보기도 하십시오. 여러분이 진정으로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설교를 위해 일주일에 10분 기도하고 주일 날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동일한 수준의 설교라 할지라도 여러분 자신이 그 설교를 위해 기도를 했다면 여러분이 그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 말씀이 전보다 열 배의 감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내 마음이 겸손하고 사랑으로 차 있으면 하나님 말씀이 내게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삶에 실패한 성도 있습니까? 선포되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지 않아서 당신이 지금 그런 것이지 담임 목사님 설교 수준이 낮아서 당신이 지금 그렇게 된 게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씀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고, 교회 전체 안에서 살아 역사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 말씀이 교회 담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바울은 또한 바울 자신을 위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세상에는 이성적 판단에 의해 살지 않고 악한 욕심을 좇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마음을 마귀가 사로잡고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같은 자를 핍박하고 죽이려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런 악한 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중보기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 악한 세력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항상 중보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도 악한 자가 있어 목회자를 공격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어수룩한 성도들은 그 악한 자 편에 서서 덩달아 목회자를 괴롭힙니다. 화를 자초하는 삶이지요. 여러분 입맛을 기준으로 목회자를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단 사상이 아니라면 절대 목사님 설교 가지고 시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한 목사님의 개인 취미생활에 대해 시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사례비를 어디에 쓰시나에 대해서도 시비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소한 시비 하나 하나가 다 목사님을 공격하는 악한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악한 자들이 목회자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할 자들입니다. 그걸 잊지 마십시오. 양(羊)이 어찌 목자를 물어뜯습니까? 미친 양이 아니고서야.... 담임 목사님에게 선한 방패가 되어주는 자들에게 천사의 보호가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기가 가르친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철저히 행할 것을 권면합니다.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4절).” 이는 지금도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살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순종의 삶을 살 것을 바울이 확신한다는 말입니다. ‘행하고 또 행할 줄을’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목회자에게 얼마나 큰 확신을 주고 사십니까? 담임 목사님께서 여러분의 신앙 인격을 신뢰하십니까? 진실로 거듭난 자만이 오늘도 순종하고 내일도 순종하며, 성령을 모시고 사는 자만이 타인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어떤 자들은 다른 삯꾼 목자의 말을 더 신뢰하다가 망하기도 합니다. 원래 자기가 따랐던 담임 목사님은 좋은 분이시고 진리의 복음을 말씀하셨는데도 어리석은 신도는 자기에게 접근한 악한 자의 사이비 교리에 빠져 이단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속히 그 마귀의 소굴에서 빠져나오라는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영원히 멸망당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불순종과 의심이 참으로 나 자신을 멸망시키는 악한 마음입니다. 성도들의 최대의 적이요 원수는 바로 불순종과 의심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따르고 있는 그 목회자가 외부로부터 사이비 목회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혹시 정통 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자가 여러분의 신앙을 지도하고 있습니까? 어서 그 자에게서 벗어나십시오. 보통의 목회자는 정통교단으로부터 그런 소리 절대 듣지 않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리 듣는 자가 여러분의 목회자라면 십중팔구 그 목회자가 잘못된 자이오니 어서 그 자를 떠나 정통교단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목회자가 올바른 목회자라면 그분의 가르치는 교훈을 순종하는 게 여러분이 살 길이고 복 받는 길이고 승리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을 여러분의 목자로 세우셨으므로 그 목자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서도 그분께 복 받길 바라나요? 어림도 없는 말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기를(5절)’ 권면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종교생활이 허사가 됩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행함은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종교생활은 위선일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 진실이 결여된 종교는 부패한 종교의 표본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상숭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만한 것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신다면 나는 기꺼이 그분께서 갖고자 하시는 것을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기꺼이 드리려 했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는 이웃도 사랑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주는 미쁘사(신실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3절).”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 사는 자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사는 자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의심에서 생깁니다. 그러한 의심은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면 의심하지 않고 신뢰합니다. 사랑과 마음의 평화는 동반자입니다. 사랑 없이 어찌 마음의 평화가 있길 바랍니까?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인내’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인내’로 해석함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고난을 견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셨듯이 우리 믿는 자들은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인내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이 십자가를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쁘사(신실하사) 우리를 굳게(강하게)하시어 십자가를 감당케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최후 승리를 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만왕의 왕 예수께서 여러분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젖먹이 새신자가 아니라 이미 성숙한 믿음의 용사들이니 오늘 성경 본문의 모든 바울의 말은 여러분에게 해주는 권면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대장 되신 예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승리케 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