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12. 22. 동아 시사 발언대)
제목: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English
말씀: 시52편
>> 1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6 의인이 보고 무서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다가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갔습니다. 그 제사장은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보관하고 있던 골리앗의 칼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는 에돔 출신의 도엑이라는 사울의 신하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데로 갔고, 도엑은 사울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도엑이 사울에게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에게 한 일을 고해바쳤습니다. 사울은 아히멜렉과 그와 함께 했던 놉의 제사장들을 85명이나 죽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죽였습니다(삼상22:19). 다윗이 이 소식을 듣고 악한 혀를 놀려 많은 자들을 죽게 한 도엑을 규탄하는 시를 지었는데, 오늘 시편 52편이 바로 그 시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는 좋은 목자였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좋은 목자가 된 자를 말합니다. 아히멜렉은 쫓기는 의인을 영접하여 먹을 것을 준 자입니다. 양을 보호하는 자가 참된 목자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껄끄러운 관계를 알고 있던 아히멜렉이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여 다윗을 문전박대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지요. 그랬다면 그는 삯꾼 목자이지요. 좋은 목자는 자신의 형편을 고려하거나 국내 정치상황을 고려하여 양들을 대하지 않고 양들을 돌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항상 양들을 돌보고 힘을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입니다.
그는 평신도였던 다윗이 먹어서는 안된다는 진설병을 주어 먹게 했습니다. 이 일을 예수께서도 좋게 보셨습니다. 다윗이 먼저 진설병을 먹겠다고 우기면 그의 죄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이 먼 길을 와 기진맥진한 가운데 먹을 것을 달라 하니, 그 제사장에게 진설병 밖에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아 그는 다윗과 그의 친구들이 부정한 상태가 아니라면 그것을 먹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드려 그들에게 그것을 먹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그렇게 했겠지요. 사랑한다면 양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쓰고, 사랑한다면 그 양들을 돌보려 하나님께 중보기도 드리는 자가 좋은 목자입니다. ‘부정한 상태가 아니라면’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아히멜렉 제사장이 양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거룩을 침해하면서까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안됩니다. 그들이 부정한 몸이었다면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하나님께 바쳐진 진설병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정한 자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율법의 예외를 인정하면 안됩니다. 진설병을 먹은 다윗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를 빌미로 창녀나 동성애 정신병자들이 기독교로 기어들어와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게 하면 안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라는 말이 있지요. 부패한 권력을 두둔하지 않고 결연히 자신의 의로운 신념을 지키는 자들이 쓰는 말입니다. 아히멜렉 제사장은 사울의 신하 도엑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평신도인 다윗을 친절히 대하고 필요한 도움을 줬습니다. 그는 칼까지 다윗에게 주었는데, 그가 가는 길에 맹수나 강도가 나타날 경우 스스로를 보호하라는 의미에서 줬겠지요. 그의 참된 목자로서의 행동은 악인 도엑이 보고 있는데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악한 왕 사울이 죄를 추궁하자 원론적인 말만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다윗을 돌본 게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한 것이지요. 그는 사울의 칼 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부패한 권력 앞에 굴복하면 하나님을 욕보이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종이 악인을 칭찬하고 그에게 아부하는 것도 꼴볼견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종은 우상숭배하고 의인의 피를 흘린 정치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종은 약자의 편에 서서 그 약자를 괴롭히는 악한 권력자를 책망해야 합니다. 다음은 아히멜렉 제사장의 말입니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삼상22:14).” 악한 권력자 앞에서 의인을 변호하는 게 하나님의 종이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아히멜렉 제사장은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면류관을 쓴 것이지요.
다윗의 말입니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8절).” 먼저 다윗은 의롭고 신실한 하나님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생각하며 이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사울의 신하 도엑에 있었음에도 다윗을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아히멜렉은 진정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푸른 감람나무였습니다. 푸른 감람나무는 살아있는 감람나무라는 말이고, 이는 거룩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던 아히멜렉에게 꼭 맞는 비유입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의 거룩한 외유내강의 성품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의 순교를 보며 그는 정녕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라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 보기에 현재 권력을 잡고 전횡을 일삼는 사울과 그의 신하 도엑은 말라비틀어져 죽기 일보 직전인 썩은 나무였고,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무력하게 죽은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성전에 영원히 살아 있는 푸른 감람나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다윗은 사울과 도엑의 길을 가려 하지 않고 아히멜렉의 신앙정신을 본받아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를 자신의 심볼로 삼은 것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올바른 신앙의 눈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아 왕이 되어있다고 그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입니까? 그게 아니지요. 직분과 직책의 우상을 주의해야 합니다.
사울과 도엑에 대한 다윗의 평가는 그가 얼마나 현실을 신앙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여러 차례 다윗에게 거짓말하고 꾀를 내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도엑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행한 일을 사울에게 고자질하여 결국은 수십 명의 하나님의 종들을 죽게 했습니다. 이 두 악인들의 특징은 ‘악한 꾀’와 ‘삭도(削刀)와 같은 간사한 혀’입니다.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1절).” “네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2절).” 이 두 악인들의 특징은 선보다 악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악을 행하는 데 사용합니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3절).” 다윗은 도엑과 사울에게서 정권을 잡은 자의 생기를 발견한 게 아니라 영원히 저주받아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을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도엑의 저러한 악한 삶의 열매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7절).” 사사 시대 아비멜렉이 친척들로부터 돈을 모아 깡패들을 부하로 삼습니다. 그 악한 자는 자기 부하 깡패들을 데리고 가서 이복형제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왕노릇 합니다. 악인들은 악한 수단을 사용하여 돈을 모으고, 그 돈을 악한 정치하는 데 사용합니다. 또한 악인들은 악한 마음을 갖고 마음을 굳세게 해서 자신의 권력을 다져갑니다. 재물과 악한 마음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 바로 악인들이지요.
그러한 악한 뿌리로부터 무자비한 악행이 나와 많은 선량하고 의롭고 거룩한 자들을 해칩니다. 그러나 이런 악인들의 말로는 뻔한 것이지요. 다윗은 이런 악인들의 최후를 다음과 같이 예견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5절).” 이스라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골고루 배분하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남의 집안의 땅을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누구나 다 생존권을 보장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누구나 그 땅에서 생명의 보호를 받으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무리들이 그 복된 땅 안에서 의인을 핍박하고, 의인을 죽이고, 의인을 추방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이웃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사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귄익을 침해하는 것은 그들에게 살 복을 주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임을 잊지 마시고 경거망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땅에서 저렇게 악인들이 의인들의 삶을 황폐화시키자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셔서 그 악인들을 뿌리 채 뽑아버리시겠답니다. 남의 생명을 멸하고 남을 핍박하는 악인들이 영영히 하나님 앞에서 멸망당할 거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다윗의 말은 일종의 권위 있는 저주입니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의인들을 괴롭히다가 그들의 한숨 섞인 저런 저주의 말을 자주 들으면 사울처럼 그 저주를 직접 당하게 됩니다. 반대로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돕다가 그 자들로부터 ‘저 분은 하나님께 꼭 복을 받으셔야 하는데’ 라는 덕담을 자주 들으면 그 덕담은 권위 있는 축복이 되어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그 복이 그대로 임합니다. 여러분, 남의 눈에서 눈물 흘리지 않게 남을 배려하며 사십시오. 여러분, 남을 배려하여 자주 칭찬을 들으셔서 많은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쓸쓸히 지내는 자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웬만큼 살만 하면 그들 좀 도와주세요. 그들이 하나님께 ‘하나님 이런 것 저런 것 필요하니 꼭 주세요’라고 기도드릴 때 여러분이 나서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 하나님께서 만 배로 여러분에게 갚아주십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을 받은 자가 ‘하나님 기도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릴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넘치는 복을 주실 것이 아닙니까? 맨날 하나님께 복 달라고 기도만 드리지 마시고, 복 받을 구체적인 행동을 하세요. 남에게 먼저 베풀면 넘치도록 채워 안겨 주실 거라 예수께서 말씀 안 하셨나요? 가난한 분들도 자기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자들을 도우세요. 가난한 과부가 장기간 노숙생활(?)했던 엘리야를 돕다가 횡재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타인의 생명을 귀히 볼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귀히 보시고 돌봐주십니다.
다윗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로 규정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떠난 악한 사울와 도엑과 같은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삶과 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은 삶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입니까? 다윗은 8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언급합니다. 다윗은 영영히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자신의 악한 재물과, 자신의 힘과, 자신의 악한 마음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선함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다윗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살겠노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자가 교만할 수 없고, 그분의 사랑을 의지하여 사는 자가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타인들을 해할 수 없지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자는 타인의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사니 당연히 자기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게 되지요.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은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고 좋은 열매 맺는 감람나무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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