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눅2:8-14) : 온 세상의 기쁨과 평화 예수

stevision 2012. 11. 29. 18:16

 

(07. 12. 19. 동아 시사 발언대)

 

제목: 온 세상의 기쁨과 평화 예수                                  English
말씀: 눅2:8-14

 

 

 

 >>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짝퉁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명품이 있다면 그 명품을 모방하여 만든 물건이 있고, 그것을 만든 자는 명품보다 싼 값으로 그것을 팔아먹습니다. 짝퉁인 줄 뻔히 알고 그것을 구입하는 자들도 있는데, 그들은 싼 값으로 그것을 구입한 후 실제 명품인양 자랑하며 그것을 갖고 다닙니다. 짝퉁은 주로 핸드백이나 시계에 많이 나타납니다. 만들기 쉬운 것을 명품이라고 비싸게 파니 짝퉁이 나와서 골치를 썩이는 거지요. 적정한 가격의 물건이라면 짝퉁이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가짜 예수도 많았습니다. 물건이 아님에도 이런 유의 가짜가 생기는 것은 미련한 사람들이 많아 속여먹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후 자칭 예수라 하는 자들이 몇 있었습니다. 순전히, 그야말로 100% 무식해서 그런 주장들을 하는 겁니다. 실제 예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의 한 위격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분께서는 인간이시기 전에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참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영과 육을 자신의 존재로 취하여 참 사람도 되신 분이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들이 판을 쳤습니다. 어떤 가짜는 나라를 위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자의 반 타의 반 가짜 구세주가 된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에 정치적 혼란기를 틈탄 자칭 그리스도들이 많이 나타난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가짜는 순전히 과대망상 정신병에 걸려 남이 추켜세우지도 않는데도 스스로 그리스도라 하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을 구원할 참된 구세주는 자칭도 타인이 칭해줌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입니다.

사람이 무식하고 과대망상 정신병에 걸리면 스스로를 구세주라 칭합니다. 어떤 자는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마귀를 만나 무슨 말을 듣고, 혹은 귀신이 주는 거짓 지혜와 능력을 받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기가 진짜 구세주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게 다 거짓의 아비 마귀의 농간에 휘둘린 어리석은 자들의 행태이지요. 이들은 자신과 남을 속인 죄 때문에 지옥에 갈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탄생 이전의 아무런 기억이 없다면, 특히 탄생 이전에 자신이 하나님이었다는 생생한 기억이 없다면 미련하고 건방지고 뻔뻔스럽게 스스로를 구세주로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이전, 창세 전에 당신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영원한 영광을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를 예수라 착각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많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의 인류의 구세주이심은 하나님께서 보증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할 마리아에게 그 잉태될 자가 구세주 그리스도라 하셨습니다. 이 일만 있었다면 마리아가 ‘내가 헛것을 본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거룩한 광채 가운데 나타나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으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 목자들은 그 천사 곁에 수많은 무리의 천사들이 거룩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 찬송 가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였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해들은 목자들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이를 보았습니다. 이 목자들이 예수의 모친 마리아에게 자신들이 천사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눅2:17-19).” 그러나 혹시 압니까? 만에 하나 마귀가 광명의 천사로 목자들에게 나타나 거짓말을 해서, 그것을 그 목자들이 마리아에게 말해주어 마리아로 하여금 헛된 꿈에 사로잡히게 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아직도 자기 아들 예수가 구세주인지 확신이 잘 서지 않는 마리아에게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율법에 규정된 대로 예수께 할례를 행하고, 아들 얻음을 인하여 주의 성전에 가서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반구 둘을 제물로 드리려 합니다(눅2:22-24). 그런데 예루살렘에 살던 시므온은 이전부터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있었습니다(눅2:26). 그는 ‘지금 성전에 가거라. 거기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전에 들어가자 때마침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와 율법의 규례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30-3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예수의 부모는 그제야 그 아이에 대한 뭔가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눅2:33).” 이에 더하여 안나라는 선지자도 그 부모에게 와서 그 아이에 대한 말을 해줬습니다(눅2:36-38). 즉 예수의 구세주이심은 어느 한 인간의 과대망상에 기인한 게 아니고, 다른 자들의 부추김에 의한 것도 아닌, 순전히 하나님으로부터 그 진실됨이 보증된 사실이었습니다. 모든 증거들을 다 거부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저렇게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그래도 난 저런 모든 게 다 마귀의 농간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지상생애의 헌신된 삶과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좇은 삶, 그리고 그의 신적 능력과 부활은 그의 탄생시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한 증언이 사실임을 말해줍니다. 예수의 생애와 그의 부활을 보고도 믿지 않겠다면 예수의 부활 이후에 그분께서 세우신 교회 즉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시고, 부활하신 그분을 구세주로 믿고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희망하며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살펴보십시오. 무거운 죄짐에 눌려 영생의 소망이 없이 어둠을 헤매다 영원한 죽음에 삼켜질 당신의 처량한 삶과 기독교인들의 행복하고도 확신에 찬 삶이 비교가 되거든 여러분 자신을 위해 예수께서 구세주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탄생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의(善意)를 말해줍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14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우정을 알고, 사랑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절대자에게 경배할 줄 아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어놓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총각이 옆 동네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무한한 연정을 품고 견딜 수 없어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그 아가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 듯, 하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설레는 맘으로 인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는 인간이 높여져서 하나님으로 된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되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되신 하나님,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의 모든 죄를 다 스스로 감당하여 해결해주시겠다는 하나님, 하나님을 보고싶어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신 하나님! 만남은 사랑과 선의와 호의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면 서로 만납니다.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만날 수 있음에도, 사랑하고 있는데도 만나지 않는 자는 바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므로 인간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하다면 인간의 마음도 중요합니다. 인간이 사랑을 위해 하나님께 다가가야 한다면 사랑을 위해 하나님께서도 인간에게 다가오셔야 합니다. 사랑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관계적입니다. 인간들에게 ‘내게 오라, 내게 기도하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도 인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두 당사자들을 동등한 자격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높으신 분이시더라도 인간을 강제로 자신의 사랑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이는 아무리 왕이라도 미천한 시골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여인의 마음의 동의를 얻어야 함과 같습니다. 인간을 확실히 만나시기 위해 그분께서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물론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그분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인간이 되심으로 그분께서는 인간들의 인간적 사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 친구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인간의 친구로 불릴 수 있습니까? 인간의 사랑을 얻으시려 그분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신 것이지요. 인간이 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셨고, 나사렛 동네 친구들에게는 고향 친구의 사랑을 받으셨고, 제자들로부터는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여인으로부터는 눈물로 발을 씻기는 섬김을 받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는데, 이는 그분께서 인간이 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사랑을 행하시기 위해서는 꼭 인간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안 되시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랑을 행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의 탄생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과 호감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여러분을 만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우리의 평화를 위함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평화롭지 못합니다. 모두 높아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왕이 되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자기 이익만 추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통령 선거로 얼마나 시끌벅적하고 국회에서 난투극이 벌어집니까? 왜 그렇습니까? 대통령 자리 타인에게 양보할 사람 있습니까? 세상에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기독교인조차도 현실의 정치에 몸담고 있으면 사랑으로 양보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집단 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가듯 세상적 길을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국가간의 대결은 전쟁을 수반합니다. 국력 좀 있으면 이웃 나라를 집어삼키는 게 당연한 거고, 수천 리 먼 곳에까지 원정군을 보내어 국가의 이익을 도모합니다. 그게 세상의 정치윤리입니다. 세상은 죄 때문에 평화롭지 못합니다. 죄에서 돌이키는 자도 없고 쉽사리 용서하는 자도 없습니다. 세상은 가난과 질병 때문에 평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은 죽음 때문에 평화가 없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면 갑자기 평화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죄짐과 서로간의 미움과 죽음을 없애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마음에 영접한 자는 이상하게 평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그가 들어가게 되어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께서 세상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생각만 해도 평화를 맛봅니다. 세상보다 무한히 더 크신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그분께서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왕이 되는 것보다 그분의 제자, 그분의 종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더 행복을 주고 평화를 줍니다. 그분 안에 우리의 영원한 만족과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분만 생각해도 우리는 평화롭습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모든 악한 세력들은 우리 구주 예수님의 막강한 권세 앞에 모두 다 무릎을 끓었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생각하며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용서와 위로와 평화를 내 것으로 삼으면 됩니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수천 년 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부터 “하나님 언제 구세주를 보내실 겁니까?”라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세주의 나타나심이 지연되자 무책임한 하나님, 무정한 하나님, 무능한 하나님이라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인간의 감사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인간의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고마운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용서와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은혜의 실행입니다. 인간이 행복해지고, 인간이 웃고, 인간이 흠이 없이 완전해질 때 인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의 불행과 눈물과 죄의 얼룩을 다 없애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되어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예수의 탄생은 죄와 죽음의 사망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탄생은 의(義)의 회복이고, 사망의 사망이고,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탄생은 인간을 향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 본래의 하나님이심을 말해줍니다. 여러분의 영광은 세상적 감투나 은행 잔고가 아니라 여러분의 죄씻음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예수님의 신부 됨에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과 여러분의 영광을 위한 날입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보십시오. 그분은 인간과 함께 하시고 계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기이시기 때문에 일어나 걷지도 못하고 계신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못지 않게 그분을 가족으로 맞아준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모든 수고와 인내 덕분에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분을 따뜻하게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해드려야 합니다. 또한 아직도 그분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에게 온 세상의 빛이신 그분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웃에게 이렇게 외칩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의 모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길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