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53편) : 하나님을 찾는 삶

stevision 2012. 11. 29. 18:23

 

(07. 12. 29. 동아 시사 발언대)

 

제목: 하나님을 찾는 삶                                      English
말씀: 시53편

  

 

>>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

세상에는 하나님을 모른 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무신론자 내지 비기독교인은 기독교인 못지 않게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단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악한 행위라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 경건한 신학자들이 그들의 착한 행위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이므로 본질상 악한 행위이다’ 라고 규정함으로 오늘 성경의 본문 말씀이 진리임을 말하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찌 모든 비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선행을 한다고 단정지을 수 있습니까? 개중에는 정말로 남이 모르게 겸손한 맘으로 선행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선(善)’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겠지요. 자식이 아무리 세상 사람들의 눈에 선을 행하고 있을지라도 그 자가 자기 부모를 부모로 여기지 않고 산다면 그 자의 모든 선행(善行)은 가치를 잃겠지요. 남의 돈을 가지고 선행을 하며 자기 것으로 선심(善心) 쓴다고 선전하고 다니면 악한 사기꾼이겠지요.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적 판단으로 선행을 한다는 자들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복을 자신의 업적으로 이해하는 한 그들은 종교적 관점에서 악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심각한 악인들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때로는 겸손한 선행을 하며 삽니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선(善)이란 먼저 자기 자신이 받은 것을 생각하여 자기에게 은혜를 준 분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근본적 선입니다. 또한 선이란 자신이 받은 것과 자신이 일해 얻은 것으로 자기보다 못한 자를 돕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타인에게 선을 행하는 비기독교인은 근본적 선을 행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진 게 없어서 타인을 돕지 못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사는 자는 악을 행치 않고 사는 것 자체가 선(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고,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주는 자가 어찌 악인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쁨을 주는 자를 하나님께서 ‘너는 선한 존재다’ 인정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3편 말씀에 나오는 악인은 하나님을 자기 생명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마음이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도둑놈, 강도, 사기꾼,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동성애 정신병자, 불효자, 마약 중독자, 도박 중독자, 부부 스와핑 하는 자, 간음하는 자들이 다 마음이 부패한 악인들입니다. 이런 악인들은 어리석고 마음이 부패하여 평생 악을 행하다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저런 더럽고 저주받은 삶을 살면 안됩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 우리의 과거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이 예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다시는 더러운 죄를 가까이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저런 악한 짓을 계속하면 두 번 다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저런 죄에 빠져 살면 절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런 자는 죽어 최후 심판 받는 순간까지 자기가 기독교인인 줄 착각하다가 졸지에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자신의 더러운 행위로 예수님의 보혈의 은총을 욕되게 했으니 죽을 때까지 자기가 용서받은 줄로 착각하다가 나중에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요.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시어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2절). 죄악을 행하는 자가 무지한 자입니다(4절). 지각이 있는 자는 죄를 멀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직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는 자들이 있나 살펴보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고 하는 자들이 있나 살펴보십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자였습니다. 그는 악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자신의 손을 죄악으로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정직하여 거짓을 싫어했고 타인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서 순종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자가 세상에 있나 살펴보십니다. 왜요? 그런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지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됩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자격부터 갖추는 게 필요합니다.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찾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더러운 마음과 더러운 가정과 더러운 집단에서 멀리 떠나 계십니다. 더러운 자들이 제아무리 하나님을 찾으려 해도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위로와 그분의 도움을 구하려 해도 그분께서는 침묵만 하십니다. 눈길을 돌리십니다. 얼굴이 더러우면 비누로 씻어야지요. 비누로 씻고 깨끗한 얼굴로 사랑하는 님을 구해야 님의 얼굴이 자기에게로 향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모든 더러운 죄를 씻을 수 있는 만능비누를 주셨습니다. 그 비누가 바로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자기가 불의해서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씻음이 하나님을 만날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하며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얼른 회개기도 하여 죄를 씻어야지요. 죄가 뭔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십계명 조항을 어긴 거야 물론 분명한 죄이지요. 그런데 요즘 분명 죄인데도 기독교인들이 죄로 여기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일날 개인 영업 차원의 장사를 하는 것 분명 죄입니다. 고의로 부동산 투기해서 남의 돈 거저 챙기는 것도 분명 죄입니다. 그거 도둑질이나 강도질과 비슷한 죄입니다. 제멋대로 성직에 들어서는 것도 죄입니다. 성직은 하나님께서 반대 안 하신다고 들어서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음에 들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더러운 죄를 계속 짓는 자들을 성전에 들어오게 허락하여 성전을 더럽히는 것도 죄입니다. 정직하게 세금 내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사회에 침투하는 더러운 문화를 용인하는 것도 죄입니다. 적어도 기독교인은 반기독교적 퇴폐문화 추방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이외의 타종교 가르침을 기독교 사상에 끌어들이는 것도 죄입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자칭 성직자들(불교와 교류하는 목사와 신부)을 출교조치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기독교 성직자가 정치 운동을 하는 것도 죄입니다. 장로교에서 장로가 노회장 되어 목사 안수를 집례하는 것도 죄입니다. 반대와 지탄 가운데 제 자식에게 교회 세습시키는 것도 죄입니다. 목사가 은퇴 후에도 계속 교회 실권을 쥐는 것도 죄입니다. 교회 지하실을 성도들을 위한 공동묘지로 사용하는 것은 극악한 죄입니다. 경솔하게 신학교 세우고 경솔하게 목사안수 해주는 교단도 죄를 범한 것입니다. 자격미달의 신학교가 난립하여 부름 받지도 않은 자격미달의 평신도들이 제멋대로 신학을 공부하여 제멋대로 목사 안수를 받아 기독교 성직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무작정 교인 늘리기에 혈안인 것도 죄입니다. 적정 수준 이상의 교인이 있으면 교회를 둘로 나눠야 정상 아닙니까? 가까운 이웃 교회가 텅 비어 있는데도 주일 낮 대예배 4부 드리는 것 죄입니다. 주일 낮 대예배는 한 번 드리는 게 정상입니다. 교인이 많아지면 지역을 나눠 교회를 더 세워야지 왜 한 교회에서 4부까지 예배를 드리고 교인 수를 늘인 담임 목사는 황제 목회를 합니까? 목회자들이 파벌을 형성하여 교단 정치를 하는 것도 죄입니다. 교인을 제 소유로 생각하고 탐욕의 목회를 하는 것 죄입니다. 가까운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에서 봉사하다 봉사가 귀찮고 힘들다고 큰 교회로 가는 것 양심불량입니다. 가까운 교회 놔두고 4부 예배드리는 먼 곳의 큰 교회로 가는 것 양심불량입니다. 전도사 사례비 너무 적게 주는 것도 양심불량입니다. 목사들 여행 너무 자주 하는 것도 양심불량입니다. 목회자가 학위 욕심 너무 부리는 것도 양심불량입니다. 성도들에게 헌금 너무 강요하는 것도 양심불량입니다. 자원하는 맘으로 기쁜 맘으로 헌금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돈 너무 쌓아놓기만 좋아하는 것도 죄입니다. 시간 남아돌아가는데도 교회 직분자 생활을 하지 않는 것 죄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이러한 죄가 붙어 있으면 안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는 환난 중에 그분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죄를 멀리 하는 자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이럴 때 죄를 멀리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방법으로 자신의 환난을 극복하려 하고, 때론 다른 자에게 도움을 구하나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삼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을 견고하고도 높은 산성(山城)으로 여깁니다. 제가 남자이기 때문에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도와주세요’라고 제게 부탁하면 제가 도와줄 힘과 능력이 있을 경우 만사 제쳐두고 그 아가씨를 도와줄 것입니다. 이건 제 진심입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가씨를 도와주고 ‘고마워요’라는 소리를 듣는 게 남자의 최대의 기쁨이 아닙니까? 불완전하고도 무능한 저의 마음이 그러한데 선하시고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가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며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심히 기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살 때에 그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면 그분께서 죄인들의 후원자가 되시므로 그러실 수 없다는 거지요. 여러분, 지금 환난 중에 계십니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죄문제부터 끝내 놓으시고, 세상을 향해 손을 벌리지 마시고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손을 벌리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잡아 일으키실 것입니다. 환난 중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굉장히 서운해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가장 적절한 시기와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이 작은 당사자에게 굉장히 답답한 응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인내만 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 환난 때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됩니다. 세상의 윤리와 법은 때론 하나님의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과감히 하나님의 법과 원칙을 따르는 자가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요즘 결혼하기 직전 시기에 생물학적 처녀나 총각인 자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그 엄중한 순결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삶이 아니지요. 혼전순결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그것을 고의로 범하는 것은 그분을 경시하는 행위입니다. 옛날에는 인간을 무자비하게 죽이길 좋아했던 정치권력이 어느 샌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면을 쓴 망령의 가르침을 좇아 사형제 폐지를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런 게 세계적 추세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은 사형제가 있다고 훼손되는 게 아닙니다. 사형제가 있다고 민주주의가 아닙니까? 사형제가 있다고 인권이 침해된 것입니까? 참으로 무식하고도 어리석은 논리이지요. 오히려 사형제 폐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하는 겁니다. 기독교인이 이러한 때에 유행하는 세상의 어리석은 사상을 단호히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형제 존속을 주장해야 하나님을 찾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나의 욕심을 버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그 대표적 예이지요. 우리는 악한 영들이 세력을 쥐고 있는 세상을 등지고 진리와 영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이 곧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만과 독선과 교만이지요. 한 마디로 성경에 무식해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설교하는 자들은 특히 그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이 제시한 선악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인 지지설교가 그러한 오만과 독선과 교만의 표본입니다. 설교 때 정치인 지지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설교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그러한 삶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고, 죄 용서를 받아 마음이 깨끗한 자이고, 하나님의 돌봄을 받으며 사는 자이고,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그분을 찾는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는 삶을 살 때 창조목적에 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도 허락하십니다. 물론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부족함 없는 복된 삶도 살도록 허락하시지요. 사랑하는 자들이여, 흑암과 저주의 삶을 떠나 여러분의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길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 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