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55편): 안식을 누림

stevision 2012. 11. 29. 18:40

(2010. 21. 31 인터넷에 공개)

 

제목: 안식을 누림 – 시55편 –                        English

 

 

>> 1 하나님,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가 간구하오니, 숨지 말아 주십시오. 3 저 원수들의 악담과 저 악인들의 억압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들은 나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나에게 원한 맺힌 마음으로 분노를 터뜨립니다. 6 나는 말하기를 “나에게 비둘기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련만. 7 내가 멀리멀리 날아가서, 광야에서 머무를 수도 있으련만. 13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과 어울려 드나들던 너라니! 22 너희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이 너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니, 주님은, 의로운 사람이 망하도록, 영영 그대로 버려 두지 않으신다. 23 하나님, 주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로 내려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

 

  적을 속여 전쟁에서 승리하면 대단한 지혜의 용사라 칭찬을 받지만 친구를 배반하면 치사한 인생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다윗은 치사한 친구 때문에 세상이 싫어 할 수만 있다면 광야로 날아가 혼자 있고 싶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세상이 싫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요. 자식이 아비의 권위에 도전하려 할 때 그 아비 된 자는 세상이 싫어 광야에 나가 혼자 살고 싶겠지요. 성경에 보니 다투기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 사느니 차라리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그 성경 말씀을 기록한 자가 실제로 그런 상황을 체험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글을 남겼겠습니까. 저는 성경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그 성경을 기록한 자가 한없이 측은해 보입니다. 자기 글이 성경말씀이 된 것은 영광스런 일이나 그가 당한 바가지는 무엇으로 보상을 받는단 말입니까! 바가지 긁기 전문 아내를 생각하면 세상이 싫어지는 자가 많을 겁니다. 아, 처녀시절 그렇게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왜 그 상냥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고 애교스런 성품은 광야로 달아나 자취를 감추고 저 억센 악처만 달랑 집에 남았단 말인가! 여자들이여, 제발 남편에게 안식을 주시오. 허영심 버리고 그저 밥 굶지 않은 것 감사하고 사시오.

 

  성경에 보니 남편들은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 하더군요. 아내에게 잔소리(바가지)가 있다면 남편에게는 폭언이 있습니다. 둘 다 언어폭력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면 해결될 문제이고, 부부가 하나님 바로 섬기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입니다. 사실 사랑스런 아내의 본 모습은 남편의 폭언 때문에 광야로 피해 달아났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수퍼박테리아가 나타나 사람들을 겁주고 있습니다. 그 어떤 항생제에도 끄떡없는 박테리아가 수퍼 박테리아입니다. 남편의 폭언에 길들여져 그 어떤 남편의 말도 우습게 아는 수퍼우먼이 종종 세상에 등장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부부 안에 예수께서 왕으로 계실 때 그 집안이 평화의 나라가 됩니다. 남편은 아내 때문에, 아내는 남편 때문에 세상이 아름답고 살맛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부 여러분, 서로에게 복된 안식처가 되십시오. (아내를 조심해서 대하고, 친절히 대하고, 사랑하고, 아껴주기로 결심한 남편들에게 승진의 기회가 있을지어다. 아멘!)

 

  다윗의 치사한 친구는 원래 다윗과 함께 신앙생활 잘 했던 자였습니다.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과 어울려 드나들던 너라니!” 이 자가 다윗 앞에서는 기름보다 더 매끄럽게 좋은 말만 해대더니 후에는 돌변하여 그 혀가 비수가 되어 다윗을 한없이 찔렀습니다. “내가 다윗을 잘 아는데, 그 녀석 인간이 못돼먹었어”라고 험담을 했겠지요. 다윗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주님, 저 녀석 혀를 잘라 주십시오. 주님, 저 녀석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립니다.

 

  내가 정말 혀를 작두로 싹 잘라버리고 싶은 사악한 인종이 있습니다. 그 사악한 인종이 바로 동성애자들입니다. 이 사악한 인간들은 “왜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적으로 살라고 강요하나?”라며 자신들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떼를 씁니다. 야 이 더럽고 사악한 정신병자들아, 그러는 너희들은 왜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너희들의 그 변태행위를 ‘정상’으로 인정해 달라고 강요하냐? 정상인들이 너희들의 그 행위를 사악한 변태행위로 규정하여 꺼리는 것을 왜 못마땅해 하냐? 왜 자꾸 TV나 영화에 그 구역질 나는 얼굴 내밀어 정상인들 구역질 나게 만드냐? 자녀들의 건전한 성정체성 형성을 위해 일반 국민들은 동성애 정신병자들이 TV에 얼굴 내미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할 수 없음을 똑바로 알거라. 사악한 동성애 정신병을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이는 지극히 정당한 권리입니다. 흑사병을 사회에서 용납할 수 있나요? 어림도 없는 소리!

 

  혀를 작두로 싹둑 잘라버려야 할 인종이 또 있으니, 바로 가정파괴범인 창녀들인데, 이 더러운 여자들은 자신들이 성근로자라며 매춘 합법화를 주장합니다. 어떤 창녀가 머리가 텅 빈 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자기가 임신 중에 그 남자가 다른 창녀와 잠자리 했다고 억울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며 그 남자에게 대들더군요. 자기가 한 짓은 생각 않고 다른 창녀가 제 서방이랑 잠자리 한 것은 억울하다는 그 혀를 작두로 그냥 …

 

  혀를 작두로 싹둑 잘라버려야 할 인종이 또 있으니, 바로 부적이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선전하여 사람들 농락하며 돈을 뜯어내는 무당과 중들입니다. 또 탐욕은 혼자 다 부리면서 성도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삽시다”라고 종교연설 하는 기독교 종교인들의 혀도 가증한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감독회장직을 놓고 대판 싸운 감리교 목사들의 가증스런 혀는 예수님의 날선 검에 가차없이 잘릴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되고 이기주의적인 생각을 담고 살면 안됩니다. 기회주의자의 삶도 살아서는 안됩니다. 특히 다윗의 치사한 친구들처럼 악인의 환심을 사려 친구를 배반하고 친구를 비방하면 안됩니다. 저렇게 거짓말만 하고 기회주의자로 살면 결국은 실컷 이용만 당하고 폐기처분 됩니다. 그 누가 거짓된 혀를 가진 자를 믿고 일을 맡기고, 소중한 재물을 맡기고, 귀한 자리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적군의 장수라도 인간 됨됨이가 바르면 그를 기용하는 왕이 있습니다. 전쟁 포로가 된 장수를 그냥 죽이지 않고 나라의 일꾼으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었지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쁜 맘으로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많이 들어주셨습니다. 거짓을 싫어하는 의인은 굳이 자기 혀로 스스로를 변호 안 해도 그 누명과 오해가 풀리고 그의 의(義)가 드러납니다. 심지어 죽은 자라도 의인이면 그 의가 드러납니다. 아벨은 죽었어도 그가 흘린 피가 하나님께 하소연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했는데, 입이 백 개이고 혀가 천 개인들 그 상황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주의 천사가 의인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마리아를 변호합니다. 예수께서 신성 모독죄와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셨으나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분의 의가 온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악인은 자기 불의가 드러날까, 자기 거짓말이 탄로날까 항상 두려워 평화가 없으나, 의인은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평화롭습니다. 예수께서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 하셨는데, 그 평화는 십자가의 죽음 너머에 있는 그분의 흠 없고 충만한 영광을 생각할 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가난, 병, 고생, 천직(賤職), 실패 따위로 부끄러워 마음에 평화가 사라진 분들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인생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셨다면 예수님의 평화를 여러분의 평화로 삼으십시오.

 

  다윗은 의인의 평화를 맛보고 사는 자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니, 주께서 나를 건져주실 것이다(16절).” 이 믿음과 확신이 있는 자에게 모진 세파 속에서도 평화가 임합니다. 그러나 간혹 하나님께서는 “내가 왜 너를 도와줘야 하니?”라고 반문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일꾼 없어 “너 이런 일 좀 해 줄 수 없니?” 하셨을 때, “주님, 저도 그 일을 하고싶으나 명문대 들어가 나중에 출세하려면 지금 공부 제쳐두고 그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라며 거절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자가 그분의 도움을 구할 때 “내가 왜 너를 도와야 하니?”라고 하시는 겁니다. 대학 기독교 서클에 가입하면 시간을 많이 뺏깁니다. 개중에 어떤 자는 ‘공부하여 장학금 타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될 것이니, 서클 활동 시간을 줄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별로 안좋더군요. 인생은 산 너머 산입니다. 살다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때가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께서 요청하신 도움을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하십니까? 앞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의 요청을 절대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평화가 될 것입니다. 남을 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사는 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수고라도 마다하지 않는 자가 큰 평화를 맛보고 삽니다.

 

  23절에 보니 ‘피 흘리기를 좋아하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요절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군요. 의인도 일찍 죽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죽음은 악하고 재수없는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일어난 복된 죽음입니다. 때론 의인의 이른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상 꼭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23절에 나오는 악인은 제 수명 못 채우고 벌받아 일찍 죽는 경우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이군요!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 생명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함부로 생명을 해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의 생명도 귀히 보고 보살펴야 합니다. 식물(食物)로 삼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재미 삼아 함부로 생명을 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합니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도 생명의 복을 주십니다. 강간, 낙태, 매춘, 변태 성행위, 간음은 생명을 짓밟고 모욕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극히 싫어하십니다. 남의 피 흘리기 좋아하고, 속이기 좋아하는 자는 결국 자기 생명을 싫어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배반하지 맙시다. 친구를 배반하지 맙시다. 부모를 배반하지 맙시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선생님들을 배반하지 맙시다. 교회 나가는 학생들은 절대 학교에서 문제학생이 되면 안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회 목사님을 배반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배반하지 맙시다. 배반 대신에 기쁨을 주는 자가 됩시다. 여러분들이 기쁨을 주는 자가 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도움과 은총과 복이 여러분에게 임합니다.

 

  “너의 짐을 주님께 맡겨라(22절).” 우리의 복된 안식처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동토마햇빛교회 김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