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56편):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stevision 2012. 11. 29. 18:43

(2011. 1. 3. 인터넷에 공개)

 

제목: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 시56편 –                 English

 

 

>> 1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핍박합니다. 4.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니, 그 어느 것이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8 나의 불안함을 주께서 헤아리시고, 내가 흘린 눈물을 주의 가죽부대에 담아 두십시오. 이 사정이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13 주께서 내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가 생명의 빛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닐 수 있게, 내 발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

 

  삼상21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지역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옛날에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때 큰 전공을 세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라는 노래를 불렀다며 다윗을 조심하라 간했습니다. 이에 아기스가 다윗을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하자 다윗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친 척 합니다. 그러자 아기스가 다윗을 쫓아냈고, 다윗은 구사일생 생명을 지키게 됩니다. 이 어려운 시련을 겪은 후에 다윗이 이 시편 56편을 지었습니다.

 

  살다보면 위험한 것들을 만나는 수가 있습니다. 위험한 인물을 만나는 수도 있고, 깊은 함정에 빠지는 수도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김정일이 위험인물로 낙인찍혔으나, 사실 개인적으로 보면 김정일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을 건성으로 믿는 음란한 예쁜(?) 여자들입니다. 힘센 조폭 행동대원이 칼을 들고 공격하려 한다면 반사적으로 우리 몸이 그 자의 공격을 막으려는 태세를 취합니다. 그러나 예쁜 여자가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 살며시 미소지으며 접근하면 대개는 남자들이 마음과 몸이 무장해제가 되고 보는 사람이 없을 때 그 여자에게 정복당하게 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남자가 여자를 정복하는 상황이지만,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정복당한 것이지요. 하나님께 큰 죄를 지은 자들은 마귀가 보낸 (힘없는!) 예쁜 여자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강도와 살인을 저지른 자도 결국은 이런 저런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재산, 명예, 가족 모두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눈물을 머금고 세상 하직하게 됩니다.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자들을 보고 싶으신가요? 지금 감옥에 있는 자들이 바로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죄짓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때론 임박한 위험을 미리 통고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에게 큰 시련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그 위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위험이 실제로 닥쳤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위험임을 알게 하셔서 믿음으로 이겨내게 하시는 것이지요. 때론 하나님께서 주의해야 할 인물을 미리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고, 교만한 자가 교회에 있을 경우 하나님께서 그런 자를 목회자에게 미리 알려주시어 그 자와의 마찰이 생기지 않는 방향으로 목회를 하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고 그런 자와 대판 다투다간 교회 옮겨야 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목회자에게 큰 손해이고, 교회에도 큰 손실이지요. 그런 자에게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엄히 가르치고 대해야 하나, 비본질적인 문제로 그런 자에게 트집잡힐 일은 안 하는 게 상책이겠지요. 때론 처음 여러분을 대하는 자가 이단사상을 가진 자일 수도 있는데, 그 자와 만나기 전 어떤 사악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하나님께 받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단호히 그런 자와의 영적 교제는 거절해야 하겠지요.

 

  큰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의 형벌로 깊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니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죄를 범치 않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여쭙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른 때에 다윗이 이스라엘 어느 마을로 들어갔는데 그는 “하나님, 이 마을 사람들이 저를 사울왕에게 넘겨줄 겁니까?” 여쭸고, 하나님께서는 “이 마을 사람들이 너를 사울에게 넘겨줄 것이다”라고 하셔서 그 마을을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방탕한 생활과 음란한 생각을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 드나들고, 예배 빼먹고, 기도 쉬고, 찬송가 대신 세상 노래 부르고 듣고 그러지 마십시오! 그런 세상적인 것들로 눈과 귀와 입을 채우면 마음에 잡념이 생기고 정신이 흐리멍텅해져 성령의 경고나 권고를 감지할 수 없습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고, 주님의 음성과 감화감동을 기대하고,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도와 찬송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그분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는 장래의 위험을 알려주시고 경고해 주십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급히 쫓겨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때론 우리가 얼떨결에 혹은 불가항력적으로 어쩔 수 없이 깊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이 너무 심각하여 “아, 머리 확 돌아버릴 지경이다!”라고 탄식을 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 했습니다. “아, 정말 미칠지경이다!” 이런 소리 하는 자들 요즘 적잖이 있습니다. 이런 때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1절). 두려움이 온통 나를 휩싸는 날에도, 나는 오히려 주님을 의지합니다(3절). 내가 흘린 눈물을 주의 가죽부대에 담아 주십시오(8절).” 또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도 우리에게 힘을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나에게 감히 어찌하겠습니까?” 이 말씀은 신실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인간들의 창과 칼이 두렵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나는 주의 말씀만을 찬양합니다(10절).” 이렇게 깊은 구렁텅이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조만간 그분의 응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아기스왕은 다윗을 무가치한 인간으로 여기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 미친 인간이 부족해서 이런 미친 녀석을 계속 있게 해야 하냐?”라고 아기스가 말합니다. 아기스의 마음이 당시에 매우 총명했더라면, 다윗이 미친 척 한 것을 알아챘을 것이고, 그 때 다윗을 죽였다면 후에 다윗이 왕이 되어 블레셋을 초토화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스왕은 다윗을 무가치한 미친 사람으로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도, 대통령의 마음도, 심지어 악인의 마음도, 판사의 마음도, 남편의 마음도, 아내의 마음도 움직이십니다. 단 여러분이 하나님과 한 통속(?)일 때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심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9절).”

 

  사랑하는 여러분, 때론 타인이 우리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길 때 우리에게 득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건축자가 버린 돌이 건물의 모퉁이 돌(기초석)이 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내 숨을 멎게 만들고, 내 정신을 쏙 빼놓은 그 인간(사람)에게 내가 퇴짜맞았더라도 너무 상심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길 더 좋은 사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문대학이 여러분을 무가치한 돌로 여겨 퇴짜놓더라도 식음을 전폐하며 슬퍼하지 마십시오. 뼈빠지게 회사를 위해 헌신했건만 사장이 여러분을 심지어 “미친 인간”이라 욕하며 해고했더라도, 즉 삶이 여러분을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버려진 돌 주워다가 위대한 건물 짓는 게 하나님의 주특기입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미친 인간 취급 당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방민족의 왕의 졸개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미친 사람 취급 당하며 쫓겨났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위와,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의 육체적 조상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아기스는 다윗을 쓸모없는 돌로 여겨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류 구원의 중요한 한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여겨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교회의 머리(기초석)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퉁이돌인 자를 무가치 하게 여겨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기도하지 않는 가운데 경솔하게 인사문제를 결정하는 자가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한두 번 실수 했다고 해서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개선과 발전의 가능성이 인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교육과 지도와 용서와 관용의 토양에서 인간은 무럭무럭 자라 모퉁이돌이 됩니다.

 

  한편 우리는 악인들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어떤 자는 “악인의 대궐에 (붙어) 사는 것보다 성전 문지기로 사는 게 낫다”고 고백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종교에서 제아무리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사이비 종교의 교주 밑에서 대접 받으며 살고 있더라도, 그것은 무가치한 삶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영광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타인을 구덩이에 처넣어 괴롭히면 안됩니다. 남을 해할 목적으로 함정을 파는 자는 그 함정에 자기가 빠질 것이 확실하니 그런 어리석은 짓 하면 안됩니다. 특히 고리대금으로 가정파괴 일삼는 자들,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실 것이다. (고리대금(연 30%이상의 고금리)으로 가난한 자들의 고혈로 배를 채우는 모든 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갖가지 형벌과 저주가 임할지어다! 아멘!) 반대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자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성경은 남을 도울 힘이 있을 때 꼭 도와주라 우리에게 명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행하는 자에게 이전보다 더 큰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담는 그릇이 깨끗해야 그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그 그릇이 커야 많은 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남을 도울수록 우리가 담는 복의 그릇이 더 커집니다.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속히 임하길 빕니다.

 

동토마햇빛교회 김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