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54편): 하나님의 이름과 권세

stevision 2012. 11. 29. 18:37

(2010. 12. 29 인터넷에 공개)

 

제목: 하나님의 이름과 권세 - 54 -                             English

 

 

>> 1 하나님,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권세로 나의 정당함을 변호하여 주십시오. 2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입으로 아뢰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3 무법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며, 폭력배들이 내 목숨을 노립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자들입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시며, 주님은 내 목숨을 붙들어 주는 분이시다. 5 원수가 나에게 악한 짓을 하였으니, 주님이 내 원수를 갚아주실 것이다. 주님의 진실하심으로 그들을 전멸시켜 주시기를 빈다. 6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주님, 내가 주의 선하신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 7 주님이 나를 모든 재난에서 건져 주셨으며, 나의 이 눈으로, 원수들의 멸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표준새번역성경- <<

 

  이 시편 54편은 십 사람 몇이 사울왕에게로 가서 다윗이 자기들에게로 와서 숨어 있다고 밀고하였을 때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당장 먹을 끼니가 없는 자는 먹여주시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며 이 자는 저 새도 먹여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오늘 시편 54편을 다윗이 지으며 어떤 하나님을 생각했을까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고, 이 자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해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그의 왕권이 다른 자에게 갈 것이라는 통고를 받습니다. 후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다윗을 이스라엘 왕이 될 자로 지목하여 기름붓습니다. 어떤 계기로 다윗이 사울의 사위요 부하 장군이 되었고,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께 왕으로 지목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 저 상황에서 사울이 살 길은? 사울 집안이 살 길은? 자존심 상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왕위를 다윗에게 순순히 물려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발언을 이상한 선지자의 정치적 발언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울이 사위가 된 다윗에게 왕위를 물려줬더라면 사울 집안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유없이 괜히 트집잡아 장인 집안 몰살시킬 다윗이 아니거든요. 자기 친자식이 왕이 못되었어도 유능한 사위가 왕이 되니 그나마 사울 집안에게 좋은 일 아닌가요? 그러나 사울은 또 한 번 하나님의 뜻에 대항합니다. 사울은 집요하게 다윗을 핍박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 결과는? 멸문지화 당했습니다. 아비가 악인이어도 자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다윗을 돕는 자가 되었고, 그는 명예롭게 죽었으며, 그의 친구 다윗왕은 그를 의인으로 추켜세웁니다. 반면 요나단의 아비 사울은 성경 곳곳에 추악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글에 능한 다윗이 사울에게 당한 억울한 일들을 후세에 자세히 남겼습니다. 요나단은 아비 사울과 달라 제 분수를 알고, 왕이 될 다윗의 신실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분량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제 분수를 바로 알고 순순히 양보하는 것이 참으로 귀한 태도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을 생각하며 나는 한국 교회의 병폐, 즉 대형교회 세습 문제가 생각나는군요. 아비 목사가 좀 이상한 신앙행태를 보인다고 자식이 그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하면 안되겠지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세습을 자행한 대한민국의 아비 목사와 자식 목사는 둘 다 사울처럼 기독교 역사에 오명을 남길 것입니다. 성경에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도둑놈이 있는데 이 도둑놈은 용케도 꼬리가 밟히지도 않고 재주껏 도둑질을 계속 합니다. 그런데 뭔 복(?)인지 이 도둑놈의 집안은 겹경사 뿐입니다. 자식들 건강하지, 자식들 출세길 확 열리지, 마누라 복권도 당첨하지, . 이럴 때 이 도둑놈은 하나님께서 세상 일에 신경 안 쓰신다고 생각하고 더욱 담대하게 도둑질 해서 도둑질한 물건을 집에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산더미 같은 장물 자체가 그 도둑놈에게 치명적인 저주입니다! 어느 순간 그 도둑놈은 발각되어 사람들은 그 도둑놈이 훔쳐 쌓아 놓은 산더미 같은 장물을 보며 그 도둑놈의 인생 전체를 평가합니다. 어휴 저 지독한 도둑놈! 악인의 형통은 죄악의 형통을 의미하고 이는 절대적으로 공허한 성공이며, 영원한 상실과 파멸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에게 공허한 형통이 있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무덤을 파게 하십니다. 악인들의 공허한 형통은 결국은 그들의 얼굴에 던져질 오물로 변합니다.

 

  한국에 대형교회가 하나 둘 생겨날 즈음 의식 있는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저건 잘못된 목회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묵살하고 탐욕의 목회를 계속하기로 작정했을 때 공허한 형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목회철학을 가진 목사에게 설교 영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도 일어나고, 사람들이 그 교회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수만 명, 수십만 명의 교인을 둔 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결과는? 저 탐욕을 보라!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왕의 권세로 의인 다윗을 핍박했을 때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졌고, 자신의 권세도 잃었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탐욕의 목회를 하고, 더러는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줬을 때 그들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탐욕에 찌든 사이비 목사로 바뀌었고, 그들이 받았어야 할 존경은 경멸로 바뀌었으며, 그들이 선포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그 힘을 잃어 하나님 말씀의 권세를 상실하였습니다. 그 설교가 제아무리 그럴 듯 해도 결국은 사이비 목사의 종교연설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비기독교인이라도 탐욕을 부리지 않는 천주교 신부들은 존경하더군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비기독교인들에게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을 존경하는지 물어보십시오. 존경한다고 하는 자들이 거의 없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탐욕과 종교는 상극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합시다! 비기독교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대형교회를 싸잡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가 커도 정도껏 커야지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규모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적당해야 적당한 규모의 교회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인 천 명 정도의 교회까지는 건전한 교회로 볼 것 같습니다.

 

  다윗에게 태산처럼 다가온 것이 바로 사울 왕의 권세였습니다. 다윗이 자기 목숨을 노리는 사울을 피해 이라는 동네로 숨었을 때 그 동네 사람들이 사울왕의 명령 다윗을 본 자는 내게 신고하라에 따라 몰래 사울에게 다윗이 자기 동네에 숨어있다고 고자질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라는 이름과 사울의 왕권 때문에 숨도 못 쉴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권세로 나의 정당함을 변호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과 주의 권세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장 확실하고도 든든한 후원입니다.

 

  다윗은 책임져야 할 가족과 부하를 둔 자입니다. 다윗이 죽으면 수백명의 생명도 위태롭습니다. 다윗은 죽으면 안 되는 자였습니다. 세상에는 꼭 죽어야만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죽으면 절대 안 되는 자도 있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자입니다. 이 다윗을 사울이 기어코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윗이 왕이시여 저는 왕의 충신입니다.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할 뜻이 제게 절대 없습니다라고 사울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사울을 죽일 기회를 잡았어도 그를 살려주어 자기 본심도 내보였건만 사울은 기어코 다윗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다윗과 사울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나는 상황입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권세를 바라보며 기도드립니다. 원수가 나에게 악한 짓을 하였으니, 주님이 내 원수를 갚아주소서. 주님의 진실하심으로 저 무법자들을 진멸하여 주십시오. 나의 이 눈으로 원수들의 멸망을 보게 하소서. 이 기도가 원수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기도인가요? 사울이라는 원수가 더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입니다. 사울의 생명이 연장되어 봤자 의인 다윗을 죽이기만 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을 저지르기로 작심한 악인의 생명이 길수록 그의 죄는 커만 갑니다. 악인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익이고, 의인들에게 은총이고, 악인 그 자신에게도 이익입니다. 사울에게 선한 길을 가라 간언(諫言)을 했지만 그가 듣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은 저런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가족과 부하를 위해, 죽어서는 절대 안 되는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정당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원수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랑이 결여된 기도라기보다는, 의인의 최후의 정당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름(명예)과 권세를 사울처럼 남용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자기 것인 양 착각하면 안됩니다. 자기의 명예와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정치적 권세, 경제적 권세, 종교적 권세, 학문적 권세를 남용하면 명예와 권세 다 잃고 망하게 됩니다. 사울처럼. 다윗은 선한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백성을 섬겼습니다. 그의 권세는 이웃 나라 왕들조차 인정해줬고, 그의 이름은 길이길이 위대한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최후의 의로운 변호자이신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권세를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혹은 세상 사람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권세를 의지하여 사는 자는 다윗처럼 악인들의 모든 핍박을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시며(4). 할렐루야!

 

 

동토마햇빛교회 김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