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5. 인터넷에 공개)
제목: 소망(희망), 그 마르지 않는 샘 – 시62편 – English
>> 1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림은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2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7 내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 11 하나님께서 한 마디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12 ‘한결 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
제 고향 시골 마을 중앙에는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이 샘은 사시사철 변함 없이 맑고 시원한 물을 내었습니다. 이 샘은 가뭄이나 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 샘에 가면 언제나 좋은 물이 있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물을 길어다 먹었습니다. 적어도 먹는 물에 관해서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식수에 관해서라면 우린 동네 사람들은 마음이 평안했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게 없어지거나 공급이 끊길 때 불안해집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사망했을 때 불안하고 슬퍼지겠지요. 직장에서 다음 달에 정년퇴직 하게 되면 불안해지겠지요. 돈줄이 끊기게 되어 그럴 겁니다. 사람들은 장래의 소망이 희미해질 때 불안에 떱니다. 우울해지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자들은 소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그러는 겁니다. 우리의 생명은 소망을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샘처럼, 강수량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사시사철 시원하고 맑은 물을 내는 저 샘처럼 우리에게 우리의 처지와 환경에 전혀 상관없이 소망이 샘물처럼 솟아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에게 시원한 소망을 공급하는 샘은 과연 있을까요? 우리가 그 소망의 샘을 발견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그 소망의 샘을 발견해서 절망에 빠진 가족이나 이웃이나 친구에게 알려준다면 얼마나 귀한 선물인가요.
본문 시62편은 다윗의 시이고 다윗은 그가 발견한 소망의 샘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그 소망의 샘가로 우리를 부릅니다. 예수께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요7:37-38)”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죽도록 목마르게 한 절망이라는 갈증을 단숨에 영원히 떨쳐버리고 소망의 샘에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야겠지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사55:1-2)?”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소망의 샘물을 다윗이 발견한 듯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에게 ‘거짓 샘’을 주의하라 말합니다. 다윗은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않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한다” 말합니다(9절). 즉 부유하든 가난하든, 무식하든 유식하든, 양반이든 평민이든 모든 인간은 다른 자에게 ‘소망의 샘’이 될 수 없다 말합니다. 거짓 샘인 인간을 의지했다가는 반드시 실망하고 절망이 더 깊어질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자들에게 자신의 소망을 두려 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물론 직장 상사를 존경해서 그 자에게 인정을 받아 앞길이 잘 열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윗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사가 자신의 존경의 대상일 뿐이지 소망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상사가 나를 도와줄 힘도 없을 뿐더러, 요즘은 회사에서 회사에 꼭 필요한 인물을 선호하기 때문에, 상사에 대한 지나친 존경(?)은 무능력한 자의 아부로 비쳐질 수 있어 맘껏(?) 상사에게 아부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코가 석자 인데 누구에게 소망의 샘이 되어준단 말입니까? 타인을 마음으로 존경은 하되 그로부터 큰 도움을 바라지는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지하는 마음을 비웃으십니다. 그런 마음을 어리석게 보십니다. ‘그렇게 약해빠진 인간을 믿어 뭐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라십니다. 그 분께서는 그분을 의지하는 자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제아무리 선한 자가 되어 남에게 소망의 샘이 되어준다 할지라도, 자기 권세와 재물과 육체적 힘이 바닥나고, 결정적으로 이 자가 죽는다면, 그 샘은 영원히 말라버린 샘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때론 타인을 의지하지는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도움은 미심쩍은 것이나, 자신에게 확실히 있는 것은 확실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도 ‘거짓 샘’이라 말합니다.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10절).” 사람들은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을 맘껏 휘두르며 인생을 즐기고, 그 권력이 자신과 자기 집안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큰 권력을 손에 쥐면 인간적인 만족과 일종의 평안함을 느낍니다. 권력을 손에 쥔 자가 강도나 깡패들에게 시달릴 걱정은 안 하지요.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자기 손에 돈이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여유만만해집니다. 괜히 친구도 만나고 싶고, 거지들 돌아다니면 인심 팍팍 쓰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손에 돈이 두둑히 있으면 빚쟁이들 만나 소스라치게 놀랄 일은 없겠지요. 그래서 돈 좀 있으면 일종의 평안함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왕도 되어보고, 많은 재물도 가져본 다윗은 권력과 재물에 자신의 소망을 두지 마라 말합니다. 이 둘이 영원할 것 같아도 생각보다 훨씬 일찍 눈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사울이 당한 것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자기 권력을 믿고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날뛴 사울과 그 집안을 보면서도 권력의 허무함을 배우지 못한다면 바보천치지요. 사람이 자신의 권력과 재물에 소망을 둘 때 반드시 부패하고 망합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우리가 타인을 의지할 때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못 받게 역사하시며, 우리가 자신의 힘과 재물을 의지하려 할 때 그것들을 빼앗아 버리시기도 합니다. 더 확실하고 더 좋은 영원한 샘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지요.
다윗은 담대히 말합니다. “내 희망(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5절)!” 다윗은 자신의 소망의 근원, 곧 자신의 소망의 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그 근거를 세 가지 듭니다. 첫째, 권세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의 소망의 샘이 되십니다(11절).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한 창조주이시기에 그분의 권세는 무한히 크고 땅끝까지 미칩니다. 그 분께서는 왕의 왕이십니다. 그 분께서는 왕을 세우시기도, 폐하시기도 하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뜻이 영원히 효력을 발생합니다. 우리 개인과 나라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시면 그 소망은 한 나라의 헌법보다 더 확실한 법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에 대한 소망을 주시면 그 소망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둘째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한결같으므로 그 분께서 나의 소망의 샘이 되십니다(12절). 나에 대한 타인의 사랑과 신뢰는 가변적이고, 내 자신의 마음조차 변덕이 심하고, 내 지위와 권력과 재물도 다 가변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약속하십니다. “네 어미가 너를 잊을지언정 나는 결코 너를 잊거나 버리지 않겠다!” 우리가 부모님을 너무 의지하면 마마보이란 말을 듣지만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면 믿음이 좋은 자로 인정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절대 여러분을 이용해먹거나 여러분을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께서는 정직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선한 인격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악한 부모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아는데, 하물며 신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실 수도 있으심에도 그것을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두지 않고 불안해 하는 자들에게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침이 없기에,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소망의 샘이 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내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기에 그 분께서 나의 소망의 샘이 되십니다(12절). 사람이 직장에 나가 일하는 이유는 월급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악덕업주들이 임금을 떼어먹는 일이 빈번한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기꾼과는 다른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냉수 한 잔을 대접했더라도 그것을 갚아주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우리는 이미 영생을 확보해놓았습니다. 우리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는 우리가 이제 예수님 안에서 한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 영생은 영생이고 상은 상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의 소망과 상 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그 상은 이 땅에서도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큰 권세를 가지시고 한결 같은 사랑을 베푸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그 분께서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소망의 샘’이 되어주십니다.
저렇게 마르지 않는 소망의 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소망이 부어지면 “우리의 영혼은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리게 됩니다(1절).” 내 처지와 환경이 제아무리 나를 메마르게 만들려 할지라도 내 안에서 샘솟는 저 소망의 샘물이 나의 모든 갈증을 풀어줍니다. 다윗이 이 소망의 샘물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소망의 샘을 발견해야 합니다.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소망은 어둔 밤의 한 빛처럼 우리에게 갈 길을 비춰주고 인도합니다.
전에 제가 앞날이 너무 캄캄하고 절망적이어서 “하나님 제게 소망을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날 잠이 들었고, 다음날 잠이 깨기 직전에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 되시니...(오래 전 일이라 기억을 다시 잘 더듬어 생각하니 이 찬송곡이 맞음)”라는 가사의 찬송이 들렸고, 잠이 확 깼습니다. 아, 그렇구나! 예수께서 내 소망이시구나! 저는 그 이후로 더욱더 예수님만 바라보며,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의 소망이십니다. 그 분께서 여러분의 마르지 않는 소망의 샘이십니다. 그 분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주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그 분께 여러분의 소원도 아뢰십시오.
할렐루야!
동토마햇빛교회 김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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