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론
[에라스무스는 자유 선택력에 반대하는 내 주장이 반박될 수 없음을 순순히 인정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더 논쟁을 진행시킬 준비가 되어있지만, 여기서 이 소책자를 마무리해야겠군요. 하지만 경건한 자들과 고집부리지 않고 기꺼이 진리를 인정하는 모든 자들을 만족시킬 정도로 아주 충분히 논증을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예지(豫知)하시고 예정하셨다는 것과, 그분께서 예지에 실수하실 수 없으시고 예정에 방해를 받지 않으시다는 것과, (이성 자체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듯) 모든 것이 그분께서 의지(意志)하시는 대로 발생한다는 것이 진리라고 우리가 인정한다면, 이성 자체의 증거에 의하여 인간이나 천사나 다른 어느 피조물이라도 그들 안에 그 어떤 자유 선택력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이 세상의 지배자이고, 그가 전력을 다해 그리스도의 왕국을 대적하여 영원히 음모하고 싸우며, 성령의 신적 능력에 의해 강제로 그가 사람들을 놓아주는 경우가 아닌 한 그가 사람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우리가 믿는다면, 재차 자유 선택력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 온 힘을 다해 의(義)를 좇았던 유대인들이 불의(不義)쪽으로 곤두박질한 반면, 불경건을 좇던 이방인들이 뜻밖에 거저 의(義)에 도달했다면, 재차 이 사실과 경험으로부터 인간이 은혜 없이는 오직 악(惡)만을 의지(意志)할 수 있을 뿐임이 분명합니다.
요약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혈로 인간들을 구속하셨음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온 인류가 파멸된 상태였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불필요한 분이나 오직 인간의 가장 낮은 부분의 구속자로 만들게 되며, 이는 불경스럽고 신성모독적인 짓입니다.
친애하는 에라스무스여, 마지막으로 제발 부탁이니 이제 당신이 약속한 대로 행하시지요. 더 좋은 방향으로 당신을 가르치는 자에게 당신이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 봐가며 행동하지 마십시오! 가장 고상한 하나님의 은사들, 즉 다른 것들은 물론이고 재능과 학식과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변을 풍성히 갖춘 당신이 위대한 인물인 반면,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할 수 없는 경우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인정합니다. 더욱이 나는 다음의 사실, 곧 다른 모든 자들과 달리 당신만이 실제 문제, 즉 현안의 문제의 핵심을 공격하고, 교황직, 연옥, 면죄부와 같은 시시한 것들(그것들은 근본적이라기보다는 시시한 문제들임)에 관한 엉뚱한 문제들을 가지고 나를 따분하게 하지 않은 것을 좋게 보고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저런 시시한 문제들을 가지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자들이 나를 사냥하려 했으나 실패했지요. 당신이 그리고 오직 당신만이 모든 문제들을 포괄하는 핵심 질문에 주목했고, 급소를 겨누었습니다. 이것을 나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과 여가가 허락하는 한 기꺼이 이 주제에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거든요. 지금까지 나를 공격했던 자들이 그와 같이 했다면, 그리고 현재 새로운 영(靈)들과 새로운 계시들을 자랑하는 자들이 그와 같이 한다면, 분열과 소종파들은 적어지고 평화와 일치는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은망덕을 사탄을 이용하시어 그같이 벌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비평」에서 했던 것과 달리 이 문제를 다룰 수 없는 한, 내 간절한 바램은 당신이 자신의 특별한 재능으로 만족하고, 당신이 지금까지 탁월함을 보이며 이익을 취하며 했던 것처럼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 방향으로도 당신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어 내가 당신에게 많이 빚지고 있고, 이 점에 있어서 분명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우러러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나 아직은 당신이 우리의 현재 논점을 해결할 능력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의지(意志)하셨거나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나는 이 말을 오만한 맘으로 하지 않고, 주께서 가급적 빨리 당신이 다른 모든 점에 있어서 나를 훨씬 능가한 것처럼 이 문제에 있어서도 나를 능가하게 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드로를 통해 모세를 훈계하시고 아나니아를 통해 바울을 가르치셨음을 고려하면 그건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했다면 과녁에서 멀리 벗어나 헤맨 것이라는 당신의 말에 한마디하자면, 내 생각에 당신 자신이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내려지는 결론이 ‘당신이나 내가 방황한다면 모든 자들이 방황할 것이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랄만한 분으로 그분의 성도들 안에 계신 분으로 설파되시어, 우리는 거룩과 거리가 아주 먼 자들도 성도들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인간이므로, 성경이나, 당신을 지도하여 당신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신앙의 원로들의 언설(言說)들을 바르게 이해했거나 주의하여 살펴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어렵잖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강연”만 했다는 당신의 말에서 그것에 대한 힌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논제를 완전히 통찰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자는 그렇게 글을 쓰지 않습니다. 내 자신의 경우 이 책에서 강연하지 않고 주장을 해왔고 또 확실히 주장하며, 나는 이 문제를 그 누구의 판단하에 두길 원치 않고, 모든 자들에게 (내 주장에) 동의하라 조언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당사자이신 주께서 당신을 깨닫게 하시어 당신을 명예와 영광을 담는 그릇이 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 역자 후기
역시 루터도 만만한 논객이 아니었습니다. 루터 역시 논리 전개에 치밀하고 예리하여 빈틈이 없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선한 면을 보고 더욱더 자유 선택력을 생각했고, 루터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신앙인들의 무기력(無氣力)과 죄를 보고 자유 선택력을 반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유 선택력’이 영원한 구원에 관련된 선택력, 즉 ‘구세주 예수님을 믿는 결단’임을 고려하면 성령의 내적 계시와 감화가 없다면 그 선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따라서 저는 루터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현재에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존재를 붙들지 않으시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음을 고려해도 선택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자일지라도,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는 자가 죄를 범하게 됨을 볼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구원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능력을 동시에 받아 그 능력을 스스로의 것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자라도 항상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야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게 루터의 소신인 것 같습니다. 또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끌어내기 위한 그 어떤 인간의 공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유 선택력은 자유의지보다 더 협소한 개념입니다. 자유 선택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루터 말대로 인간의 자유의지의 중간지대는 없을까요? 자유의지로 인간이 선도 행하고 악도 행하고, 밥도 먹고, 놀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밥 먹고 노는 것까지 악한 행위이고 사탄의 노예가 된 의지의 행동일까요?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의 선행이 과연 속으로는 다 악한 것일까요? 루터가 자기 논리를 전개하며 경험을 자주 언급하던데 과연 경험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가 다 악할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따라서 루터의 주장의 복음적인 면을 우리가 받아들이되, 극단적인 주장은 경험상 맞지 않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때론 악인에게도 선한 의지와 감정을 주시는 게 하나님의 은혜요, 그분의 자유의지가 아닐까요? 따라서 우리는 루터도 에라스무스도 다 옳다고 봐야 합니다. 둘 다 논증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졸고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본의 아니게 번역에서 누락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오역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용이 이상한 부분에 가끔은 각주로 라틴어 원문이 있어서 참고를 했으나, 그런 각주도 없는 부분은 정말 난감했습니다. 대담한 상상력과 느슨한 번역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지요. 그래도 여러 단계를 거쳐 한국어로 된 루터의 글을 대충이라도 뜻이 통하게 해서 여러분에게 보여드린 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루터가 라틴어로 글을 쓴 것을 어떤 자가 영어로 번역해 놓았는데, 그것을 제가 한국어로 번역을 한 것이니, 어찌 500년 전의 루터의 머릿속 생각이 그대로 한국어로 되었겠습니까. 특히 영어에서 한국어로 바뀌려면 여러 번 재주를 넘는, 즉 어순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영어 문장의 뜻을 이해했더라도 언어 구조가 정반대인 한국어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지요. 오역이 있었다면 대단히 정당한 오역임을 굳이 변명으로 늘어놓습니다.
인터넷 시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도 좋은 책들을 번역하여 인터넷에 올리면 다른 분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번역은 정년퇴임이 없습니다. 자기가 번역한 것이 책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올리면 반드시 도움을 받을 자들이 있습니다. 번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일감이 무궁무진하니 열심히 봉사하십시오. 특히 신학자가 될 분들은 번역으로 자신의 학자적 자질을 1차적으로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번역서 하나 내고 신학대학 교수 하는 게 자신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번역하다보면 덩달아 자신의 여러 재능들이 심도 있게 발전하고, 영적 삶에 있어서도 성령께서 자신 안에 계셔서 도우시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번역은 순전히 정신작업인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정신에 임하셔서 지도하시니 하나님을 현실감 있게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주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Conclusion
That the Case Against Free Choice Is Unanswerable Let Erasmus Be Willing to Admit
I will here bring this little book to an end, though I am prepared if need be to carry the debate farther. However, I think quite enough has been done here to satisfy the godly and anyone who is willing to admit the truth without being obstinate. For if we believe it to be true that God foreknows and predestines all things, that he can neither be mistaken in his foreknowledge nor hindered in his predestination, and that nothing takes place but as he wills it (as reason itself is forced to admit), then on the testimony of reason itself there cannot be any free choice in man or angel or any creature.
Similarly, if we believe that Satan is the ruler of this world, who is forever plotting and fighting against the Kingdom of Christ with all his powers, and that he will not let men go who are his captives unless he is forced to do so by the divine power of the Spirit, then again it is evident that there can be no such thing as free choice.
Again, if the Jews, who pursued righteousness to the utmost of their powers, rather ran headlong into unrighteousness, while the Gentiles, who pursued ungodliness, attained righteousness freely and unexpectedly, then it is also manifest from this very fact and experience that man without grace can will nothing but evil.
To sum up: If we believe that Christ has redeemed men by his blood, we are bound to confess that the whole man was lost; otherwise, we should make Christ either superfluous or the redeemer of only the lowest part of man, which would be blasphemy and sacrilege.
My dear Erasmus, I beg you now for Christ's sake to do at last as you promised; for you promised you would willingly yield to anyone who taught you better. Have done with respecting of persons! I recognize that you are a great man, richly endowed with the noblest gifts of God - with talent and learning, with eloquence bordering on the miraculous, to mention no others - while I have and am nothing, unless I may venture to boast that I am a Christian. Moreover, I praise and commend you highly for this also, that unlike all the rest you alone have attacked the real issue, the essence of the matter in dispute, and have not wearied me with irrelevancies about the papacy, purgatory, indulgences, and such like trifles (for trifles they are rather than basic issues), with which almost everyone hitherto has gone hunting for me without success. You and you alone have seen the question on which everything hinges, and have aimed at the vital spot; for which I sincerely thank you, since I am only too glad to give as much attention to this subject as time and leisure permit. If those who have attacked me hitherto had done the same, and if those who now boast of new spirits and new revelations would still do it, we should have less of sedition and sects and more of peace and concord. But God has in this way through Satan punished our ingratitude.
Unless, however, you can conduct this case differently from the way you have in this Diatribe, I could very much wish that you would be content with your own special gift, and would study, adorn, and promote languages and literature as you have hitherto done with great profit and distinction. I must confess that in this direction you have done no small service to me too, so that I am considerably indebted to you, and in this regard I certainly respect and admire you most sincerely. But God has not yet willed or granted that you should be equal to the matter at present at issue between us. I say this, as I beg you to believe, in no spirit of arrogance, but I pray that the Lord may every soon make you as much superior to me in this matter as you are in all others. There is no novelty in it, if God instructs Moses through Jethro and teaches Paul through Ananias. For as to your saying that you have wandered very far from the mark if you are ignorant of Christ, I think you yourself see what it implies. For it does not follow that everybody will go astray if you or I do. God is preached as being marvelous in his saints, so that we may regard as saints those who are very far from sanctity. And it is not difficult to suppose that you, since you are human, may not have rightly understood or observed with due care the Scriptures or the sayings of the Fathers under whose guidance you think you are attaining your goal; and of this there is more than a hint in your statement that you are asserting nothing, but have only “discoursed.” No one writes like that who has a thorough insight into the subject and rightly understands it. I for my part in this book have not discoursed, but have asserted and do assert, and I am unwilling to submit the matter to anyone's judgment, but advise everyone to yield assent. But may the Lord, whose cause this is, enlighten you and make you a vessel for honor and glor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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