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12. 23. 동아 시사 발언대)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뒤에 오실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했다. 즉 예수께서 주시는 세례가 바로 성령세례라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친히 세례를 베풀지 않으셨다. 그분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요4:2). 이 때에는 예수님의 성령세례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례를 베푸셨던 때는 마가의 다락방 성령 강림 때였다(참고: 행1:5 , 행2:1-4). 이 때에 처음으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예수님의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행2:38).
지금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더 자세히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즉 우리가 받는 세례는 요한이 주는 세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한이 주는 세례는 성령세례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받는 세례는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 사건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마가 다락방 사건은 주체가 예수님이시고,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셨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말을 기억해 보시라. "그분(예수님)께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권위 있는 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엄연한 성경적 사실을 간과하고 자신의 영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 목사님들이 자신이 안수 할 때 성령을 받는다고 착각하며 사람들에게 성령받기 안수를 해주고 있다. 또 성령 받은 증거가 '방언'이므로 방언을 못받은 자는 성령을 아직까지도 받지 못했다고 심히 그릇된 교훈을 퍼트리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러면 신학대학 교수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성령도 못받았다는 말 아닌가?
이러한 주장들을 하는 자들은 성령과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혼동하고 있다.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와 동시에 성령을 받는다. 하지만 아직 초신자라 성령의 능력에 적응하지 못해서 어린애와 같은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가 계속 성경 말씀도 읽고 예배도 참석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기도도 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그 자를 귀히 쓰실 목적으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다. 따라서 은사를 받아야만 성령 받은 표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가 바로 성령세례이다.
이렇게 세례받은 모든 기독교인들을 성령세례로 받은 자로 인정할 때 그들이 하는 일이 귀해 보인다. 성령세례를 잘못 이해한 담임 목사님이 방언 못하는 전도사를 성령도 못받은 풋내기로 간주하면, 그 담임 목사님은 전도사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 스스로의 생각으로 하는 것처럼 보여 전도사를 이리 들볶고 저리 들볶게 된다. 하지만 성령세례를 바로 이해한 담임 목사님은 휘하의 모든 부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하는 일이 성령의 감동하에 한 것으로 보게 되어 그분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분들이 하는 일이 귀해 보인다. 그리하여 교회에 평화와 기쁨이 넘쳐난다.
특정 은사 받을 것을 강요하면 심각한 고문이다. 방언 못받은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횡포이다. 이러한 풍토는 신앙생활이 기쁨이 되지 못하게 하고 교회 내의 부당한 서열화와 불필요한 열등감을 조장하게 된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이렇게 방언 은사 받은 무리가 말썽을 일으켰다. 어쩌면 그렇게 역사가 반복되는지 참으로 감탄할 일이다!
예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물은 죄의 회개를 말한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성령께서 자신의 인격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결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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