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

자부심이라는 것

stevision 2012. 12. 7. 20:10

(05. 3. 6. 동아 시사 발언대)

 

진짜 부자이고, 진짜 머리에 든 것이 많고, 진짜 높은 지위에 있고, 진짜로 건전한 인격을 가진 자는 굳이 "자부심"이라는 외투를 걸치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 자는 누가 자기를 뭐라고 해도 너그럽게 웃어 넘길 수 있다. 그 자는 자기를 얕보며 비하하는 자를 도리어 측은히 여기며 감싸주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자는 그렇게 시비를 거는 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의 행동이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어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가 얼마나 부자인가? 그런 그가 얼마나 보통사람처럼 행동하나?

예수께서 굳이 높은 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셨던 것도 바로 그렇게 높은 자들을 만나 자부심을 키울 이유가 그분 스스로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는 이미 그 자신 안에 온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한 신성을 가지신 분께서 천한 자들을 찾아다니셨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완전히 구겨진 그들을 친구처럼 대해주심으로 그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세워주시기 위함이었다.

자부심은 자신의 내부에 선한 것으로 가득 찰 때 저절로 채워진다. 따라서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이 제아무리 스스로 자부심을 키우려 혼신의 힘을 다해도 그것은 채워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창녀들이 제 아무리 스스로를 "성근로자"라고 칭해도 그 명칭 때문에 자부심이라는 것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동성애자들이 제아무리 "동성애는 한 개인의 성의 취향의 문제이다"라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그들이 아무리 언론매체를 통해 스스로의 자부심을 키우려고 노력해도, 자부심은 그렇게 해서 생겨지는 게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낳아주시고 기르신 부모님의 명예를 드높이고, 타인에게 많은 유익을 주면 명예와 존경과 자부심이 저절로 그렇게 사는 자를 감싸게 된다. 사람들의 존경이라는 씨가 뿌려지면 자부심이라는 새싹이 돋아난다.

트렌스젠더 댄스가수 셋이 연예활동을 하려하는가보다. 난 이들의 활동을 반대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연예활동이 청소년들에게 성정체성 혼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청소년 때에는 남녀구별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이 어느 정도 성장해야 남녀 성징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청소년들 중에는 환경의 영향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아니, 평소에 혼란을 겪지 않다가도 TV에 트렌스젠더가 나오면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의 기분에 따라 정할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이 큰 문제이다. 일부 청소년들이 환경에 의해서나 혹은 단순히 트렌스젠더들의 활동이 멋지게 보여서 자칫 그릇된 길로 들어서면 그들은 평생 저주받은 삶을 살게 된다. 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트렌스젠더들의 연예활동이 위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평소에 자기가 좋아하던 연예인이 죽으면 덩달아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만큼 그들이 연예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산다. 분명 트렌스젠더들이 연예활동을 하면 뭣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하는 청소년들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저주받은 동성애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다. 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여자로 성전환한 트렌스젠더 댄스그룹이 자신들과 같은 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떳떳하게 사회에서 삶을 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그 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한 마디로 동성애자들의 자부심을 고양하기 위한다는 말이다. (난 트렌스젠더들을 동성애자로 분류한다.) 그러나 정도를 벗어난 행동은 아무리 이유를 갖다 대도 건전한 자부심을 갖게 못한다.

정부와 방송국 관계자들은 트렌스젠더 댄스그룹의 연예활동을 금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기적인 자부심을 키워주기 위해 수많은 청소년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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