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1. 5. 동아 시사 발언대)
과거 신학의 거장들의 글을 읽으면 진한 감동을 준다. 자신의 삶과 영성이 재료가 되고 수려한 문장과 날카로운 논리로 작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글들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싫증나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학서적을 내놓는다는 의식을 갖고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주 훌륭한 신학서적을 남기었다.
그러나 요즘 신학서적은 정말 너무 지겹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고문보다 더한 고통을 준다. 도저히 기억에 남지 않는 글들 뿐이다. 현대 신학은 신학 자체를 위한 신학이 되어버렸다. 신학을 전공한 나에게도 그렇게 재미없는 책이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얼마나 더 재미 없을까? 부피는 왜 또 그렇게 큰 책들이 많은지...
내가 접했던 것 중에 가장 재미없는 신학은 바로 과정신학이었다. 이는 신학도 아니고 과학도 아닌 웃기는 문학작품밖에 안된다. 바르트 신학은 나름대로 감동을 주고 재미도 있었다. 불트만의 신학사상까지도 좀 괜찮았다. 그런데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인데, 난 독일 신학자 몰트만의 글을 읽다가 그냥 질려버려서 책을 덮고 말았다. 부피도 크고, 내용도 공중에 붕~ 떠있는 신학이어서 도저히 내 맘에 와 닿지 않는 신학이었기 때문이다. 난 학부 때 물리를 공부해서 현실에 뿌리박고 있지 않는 것에는 관심을 거의 못느낀다. "미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이라..." 이런 신학명제는 나의 관심을 전혀 못끈다.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공중에 붕~ 떠버린 신학적 사색들뿐인 몰트만의 신학은 다른 전문 신학자들에게라면 몰라도 나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정말 따분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몰트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른다. 잘 모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한국에 토착화 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이 몇분 계시다. 좋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옛날 구닥다리 동양철학과 우상숭배에 물든 동양종교를 가지고 기독교 진리를 풀어 설명하려는 시도는 정말 나의 마음에 감동을 못준다. 이미 지나가버린 사상과 종교를 가지고 또 무슨 말을 하면 사람들 귀에 들어오겠는가?
미래의 신학은 과거의 사상으로 기존의 기독교 진리를 재구성하는 데에 있지 않다. 미래의 신학은 과학을 초월하는 신학이다. 즉 존재문제를 해결한 신학이란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미래 신학의 과제가 뭔지 직시할 수 있다. 미래신학은 분명 과거의 세계관으로 지어진 사상체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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