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9. 10. 동아 시사 발언대)
기독교와 성경
사람이 성경이 어떤 책인지 이해 못하면 하나님의 본질을 훼손하는 주장을 하게 되고 기독교를 파괴하는 이단이 되기 쉽다. 대개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간 이단들은 기특(?)하게도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 있으나 제멋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기독교 정통 교리와 배치되는 주장을 하여 마귀의 놀림감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지옥에 가게 된다. 문제는 무엇인가? 동일한 성경을 놓고 성경을 옳게 해석한 정통 기독교 교리와 한 개인의 경솔한 성경 해석이 대립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누가 옳은가? 당연히 필연적으로 정통이 옳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지상 사역과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그분의 부활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시고 자신의 삶 가운데 신성을 내보이셨다. 여기서 기독교와 구약성경이 연결된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성경은 70인역(Septuagint)이라 하는데, 이것은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세계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을 말함)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모국어를 모르게 되어 당시(BC 3세기 중엽)의 세계 공용어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유대인들의 성경을 번역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두 가지가 있다. 알렉산드리아 성경은 본래 구약성경(39권)과 후기 유대교 시대에 기록된 15 책들까지 포함하여 성경으로 삼은 것이고 이 성경이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읽혀진 경전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나와 구약성경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삼으려 하자 정통 유대교인들이 AD 90년 얌니야 회의에서 15권이 제외된 본래의 경전만을 성경으로 삼았다. 이를 팔레스타인 성경이라 한다. 종교개혁 당시 개신교는 이 본래의 구약성경(팔레스타인 성경, 39권)만을 경전으로 삼았고, 카톨릭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후기 유대교의 문헌들인 15 책들(외경)까지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이 구약은 이스라엘인들이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여러 문학 장르로 표현해 놓은 것이었고, 사람들에게 신적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으로 인정되어 경전으로 채택된 것이다. 영감을 받았다는 증거는 그 글들이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잘 드러내 주었고 읽는 사람에게 경건한 신앙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예수님을 직간접적으로 만났던 자들의 글을 교회가 경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대체로 서기 1세기 후반부에 기록된 것들이다. 현재 개신교와 카톨릭은 공히 27권의 신약경전들을 갖고 있다. 여러 신앙고백적인 문헌들이 많았으나 그 중에서 현재의 신약성경의 범위를 최초로 정했던 자는 아타나시우스로 그는 367년 부활절에 이집트의 여러 신앙 공동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재의 신약성경의 목록을 제시했다. 393년 힙포(Hippo)와 397년 카르타고(Carthage)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가 전에 제안했던 신약의 범위가 정식으로 채택되었고, 이 신약이 현재 개신교와 카톨릭에서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여러 문헌들 중에서 현재의 이 신약성경만을 경전으로 삼은 기준은 바로 그 문헌들이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에 일치하는 가의 여부였다. 그들이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은 현재의 “사도신경”에 나타나 있다.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이분께서는, 즉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따라서 기독교인의 신구약 성경은 이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위에 얹혀진 건물과도 같다. 적어도 성경 어느 구절이 정통신앙에 맞게 해석되었다는 평을 받으려면 그 해석이 이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범위를 벗어나는 신구약 성경의 해석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 하물며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 말씀 몇 구절을 들어서 기독교 정통 교리를 비판하는 행위는 정말 생똥스런 짓이 아닐 수 없다. ㅁㅅㅁ과 그 졸개들이 바로 이런 생똥스런 짓을 수십 년 간 했다! 최초로 기독교 신약성경의 범위를 정한 아타나시우스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기독교 정통 교리의 핵심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었던 자이다. 그 신조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격이신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이시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시다 라는 내용을 지닌다.
당신이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고 하자. 이 아내도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런데 이웃집 할아버지가 생똥스럽게 사람들에게 당신 아내가 사실은 자기 아내라고 주장하며 자기와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떠벌리고 다니면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유로 들자면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신부요 교회의 신부와도 같은 존재이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고백과 기독교 자체를 위해 존재하며 교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생똥스런 옆집 홀아비 영감 같은 ㅁㅅㅁ이 이 성경을 제멋대로 모욕하여 자기를 우상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주제넘고 웃기는 사이비 종교 교주가 또 있을까?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가 자신의 경전으로 삼은 책이다. 따라서 정통 기독교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사용할 권한을 가진다. 그 외의 사람들이 성경을 다른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 도적질이요 강도질이다.
>> 고귀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ㅌㅇ교(ㄱㅈ교회) 교주 ㅁㅅㅁ처럼 대변스런 짓을 하면 못쓴다. - ste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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