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신28:58-59) : 유태인들을 위한 설교

stevision 2012. 11. 23. 16:52

(2006년 10월 26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유태인의 역사를 생각하며

 

 

 

 성경말씀 : 신28: 58, 59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들 모두가 그 마음들이 부패해져서 그들의 죄가 죽음의 형벌만큼 차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시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들은 배가 고프면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지만 배가 부르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습니다. 배가 고프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나 일단 배가 부르고 등이 뜨뜻하면 기도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됩니다. 기도를 안 하니 그 심령이 무뎌져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소리도 못 듣습니다. 자기 통장에 금액이 커지면 옛날 배고픈 때로 다시는 되돌아가기 싫어서 자꾸만 자꾸만 돈을 모읍니다. 물론 이웃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합니다. 세상에는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짧은 세월 벌어놓은 돈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내가 죽으면 저것이 뉘 것이 되랴? 용케도 이와 비슷한 성경 말씀은 잘도 기억합니다. 이 자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을 믿으니 이미 천국은 떼어 논 당상입니다. 개중에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죄는 짓지 않으며 삶을 향유하며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성경에 무식하여 죄인 줄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어떤 자들은 알고도 죄를 짓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폭삭 망하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자도 있고, 일찍 세상 하직하는 자도 있고, 심판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되돌아오는 자도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 기억력이 남아 있어 그나마 한 번 혼나면 그 다음에 다시 혼날 경우가 적습니다. 우리나라 1980년대 1990년대 많은 집회의 신앙 간증자들이 이 것을 잘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국가나 민족의 경우 좋은 신앙이 후대에 전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며 그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신16: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이곳 말씀 외에도 신5:15, 신15:15, 신24:18, 22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같은 인간들을 부당하게 종으로 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당하게 애굽사람들의 종살이를 했던 그 맛이 어떠함을 알았거든 자유인이 되어서 타인을 종으로 만들어 그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 괴로워 울부짖으면 그 원통함을 풀어주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그를 괴롭힌 자를 벌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평화로운 신정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법을 주셨습니다. 타인의 땅을 영원히 돈주고 못 사며(때가 되면 원 주인에게 돌려 줘야 하며), 고리대금을 금하고, 개인의 뜻에 반하여 같은 이스라엘 사람을 노예로 삼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는 등의 법을 정하셨던 것입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가 당한 고통의 쓴맛을 기억하며 타인에게 같은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는 자기가 과거에 받은 고통을 그대로 제 3자에게 주며 자기의 권세를 과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리대금을 엄격히 금하셨습니다. 한 번 사람이 고리대금의 올무에 걸리면 집도 날리고, 토지도 날리고 자식도 종으로 팔고 자신도 종으로 팔게 됩니다. 물론 아내도 타인의 품에 안겨줘야겠지요. 이는 가정파괴 죄입니다. 고리대금업자들이 자식과 부인까지 노예로 팔아먹기 때문입니다. 높은 이자가 아무리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무죄로 여기시지 않습니다. 성경이 이를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채권자)같이 하지 말며 변리(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출22:25)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라.”(신15:1-2)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출22:26) 저는 이러한 성경 말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자비를 한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가난한 자가 있을 경우 그가 돈 좀 꿔달라고 하면 못 받을 것을 염려하여 거절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후하게 꿔 주고 7년 동안 그의 사정이 펴지지 못해 못 갚으면 면제해 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혹시 옷을 전당(담보물로) 잡았거든 해가 지면 그것을 돌려주라고 명합니다. 그자가 추워서 떨며 잠을 못 자면 그 다음날 어떻게 힘을 얻어 일을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가 혹시 감기들까 염려하시어 이렇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해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 주변에 가난한 자가 있거든 최소한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는 도와주거라. 이것이 너희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는 성경의 여러 구절을 종합하여 쉽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고리대금은 자신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부당하게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지극히 악한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금하는 파격적인 금융제도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음을 싫어하시는 것은 간음이 가정을 파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타인이 자기 아내를 범하는 것을 기뻐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는 일을 마다 안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안에 창녀 제도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도 엄금하셨습니다. 우상은 마음을 빼앗아가고 시간을 빼앗아갑니다. 헛된 것에 절하는 것이 얼마나 보기 싫은 일입니까? 우상숭배는 미련한 짓입니다. 전에 저는 컴퓨터 게임을 하나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Mr. Kim이 있습니다. 물론 제 분신이었죠. 저는 가끔 그 안의 Mr. Kim과 대결을 했습니다. 저는 그 안에 있는 Mr. Kim이 저를 이길 때마다 기뻤습니다. 이상하죠? 왜 제가 게임에 지고도 기뻤을까요? 반대로 제가 이기면 서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그 안의 Mr. Kim이 저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제가 그만큼 그 프로그램을 잘 짰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저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우상숭배를 제일 싫어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미련한 짓이고, 이 미련한 짓은 그대로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에 먹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지혜롭게 살아서 야곱처럼 하나님을 이기고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지혜로운 자에게 져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보통 신명기 28장은 축복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못됩니다. 축복을 약속한 말씀은 고작 1-14절이고 거의 대부분(15-68절)은 불순종에 대한 저주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어 서기 70년 이후부터 2000년 가까이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히 나라를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온갖 저주를 다 받았습니다. 왜 그런 저주를 받았나요? 먼저 많은 자들이 부당하게 부를 독점하여 이웃을 종으로 만들어서 하늘로 향한 원성이 이스라엘 땅에서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간음하는 자들이 설쳤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그 역겨운 동성애에도 빠져 있음을 여러 곳에서 보여줍니다. 우상숭배도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우상에게 불살라 바친 왕도 있었습니다. 성직자들까지 타락한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실낱같은 가망성조차 없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히틀러는 분명 마귀의 화신입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히 이 마귀의 화신의 제물이 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600만이라는 유태인들을 마귀의 손에 넘겨주셨을까요? 이상한 것은 이 마귀의 화신인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까? 혹시 우리는 히틀러의 말 속에서 유태인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읽을 수는 없을까요?


히틀러가 유태인들에게 적개심을 품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태인들은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고 타민족과 마음을 터놓고 교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으나 독일 내에서 거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들의 돈벌이 수단이 정당하지 못했습니다. 유태인들은 금융을 장악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유태인에게 간다는 말이 곧 고리대금업자에게 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또 그들은 상권을 장악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무기거래를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이 사람 죽이는 기계 장사를 합니까? 지금은 그 장사에서 손을 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사업을 했습니다. 바로 매춘업입니다. 매춘업은 간음을 조장하여 가정을 파괴시키고 많은 자들을 지옥으로 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하고 악한 그런 짓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언론을 장악했습니다. 모든 사건들마다 유태인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여 기사화했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물론 거짓말도 했겠지요. 요즘도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언론에 의해 패가망신 당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는 자들이 어디에 다 모여 있습니까? 언론계가 아닙니까? 그들은 많이 배운 자들입니다. 현대판 서기관들이지요. 그들은 온 국민을 지식으로 속이고 논리로 속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일에 집단적으로 동참하게 만듭니다. 전국에 음풍이 일게 하는 자들이 바로 누구입니까? 언론과 예술계 사람들이 아닙니까? 고리대금과 매춘과 무기거래업을 했던 유태인들이 언론과 문화계까지 장악했으니 그 언론이 유태인들의 그러한 행태를 두둔하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후진국이라 생각하는 동남아 어떤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은 수가 이민해 와서 자기들의 신을 굳게 믿으며 자기들만이 선민이라 생각하고 이곳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눈으로 봅니다. 이들이 고리대금으로 폭리를 취하고 매춘업을 하여 가정을 파괴시키고 성병이 난무하게 하고 돈을 긁어 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돈으로 언론사를 다 장악하여 자기들 잘난 것만 선전한다면, 그들을 눈뜨고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며 선민의식을 가지고 타민족을 이방인 취급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고리대금, 매춘을 하여 돈을 벌고, 사람 죽이는 기계를 팔고, 이런 사실들을 은폐하여 자기민족의 우월성(소수이나 엘리트이고 부자라는)을 언론을 통해 선전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창피하셨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그런 육적인 유태인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해 죽음의 사자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마치 애굽의 장자를 쳤던 죽음의 사자를 보내셨던 것처럼...
히틀러는 유태인들이 자신들이 열등한 민족임을 타인들에게 보이도록 유태인을 상징하는 별을 가슴에 달고 다니게 했습니다.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면 죄지으면서 주제넘게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언론을 장악하여 스스로의 죄를 가리려 해도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만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적 유대인들의 자화상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해 사람들 앞에 자기가 열등한 유태인임을 알리도록 유태인의 상징인 별을 달고 길거리에 다니게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600만의 유태인들은 먼저 가스실에 가기 전에 목욕을 했습니다. 독이 피부에 쉽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씻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스실에서 죽어 나온 자들 중에 금니가 있으면 뽑혔습니다. 이를 심판으로 해석하면,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어 금을 샀으니 그 금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시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재활용할 가치가 없는 시체는 불에 태워졌고, 그 재는 독일 농부들에게 거름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면, 더러운 매춘업을 하여 돈을 벌어 살이 쪘으니 그 살을 태워 그들 때문에 가난해진 자들의 배를 불리시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해석하는 저에게 ‘감히 하나님의 선민을 비방해?’라며 언짢아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보다 더 큰 형벌도 있습니다. 간음하는 자들은 돌로 쳐죽임 당합니다. 전문 매춘업자는 더 큰 벌을 받겠지요. 그리고 우상숭배로 범죄한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없어 자식도 삶아 먹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가장 먼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 계명을 어기면 가장 가혹하게 벌을 받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유태인들은 가난했습니다. 대부분은 착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유태인들은 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태인들 전체에게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엄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가 세상 경험은 부족하나, 그래도 지난 과거를 뒤돌아보면 하나님과 세상에 범죄했던 자들이 죽기 전에 이 땅에서 지엄한 심판을 많이 받고 있더군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멀리하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하시면서도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아십니다. 그리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 살려고 하는 자는 언제나 받아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교회 안에 핍절한 자가 있거든 자존심에 상처를 내며 돈을 꿔달라고 하기 전에 충분한 돈을 자원하여 꿔주며, ‘7년간 열심히 벌어서 갚아보세요. 그때까지 못 갚으면 그냥 없던 걸로 해요.’ 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런 일을 불신자인 이웃에게 행하면 그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았던 저주가 우리들의 삶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합시다. 유태인들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분이심을 깨닫고 공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합시다. 그리하여 성경에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복을 다 누립시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