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창15:1-6) : 채워주시는 하나님

stevision 2012. 11. 23. 17:05

 

(2007년 1월 3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채워주시는 하나님                                                         English
성경말씀: 창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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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당신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후에 아브라함이 받을 복 전체를 미리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하나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복을 받을 처지나 시기가 아직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시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을 거듭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원래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습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잊지 않도록 다시금 약속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두려움에 약합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자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가 이미 늙어 아이를 낳을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인생 마감하면 자신의 모든 재산은 남의 것이 되고 맙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1대를 못 넘기고 이 땅에서 사라질 판입니다. 그런데도 장래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도 이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는 해야겠는데 자신의 형편을 보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자기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두렴움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평소에 사람들에게 하나님 좋으신 분이라 선전 많이 했는데, 그런데도 자신이 사는 꼴을 보니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믿는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신가?’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약해진 믿음, 치밀어 오르는 서운함과 분노, 이런 속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아브라함은 두렵겠지요. 자신의 속마음을 훤히 다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이시니 어찌 아니 그렇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송구한 일을 저지른 자에게 ‘(벌 받을까봐)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말씀으로 천지까지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시면 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불신앙보다 훨씬 더 큽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이고, 아브라함의 불신앙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는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이 얼마나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아브라함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이를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믿음과 의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이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더디더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지 않으셔도 하나님께서 선한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자를 의롭다 여겨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어떤 것인지 후세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자가 어떻게 복을 받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상대방이 나를 믿어줬을 때 그 자의 허물까지도 다 용서해 주고 그 자에게 좋은 것이라면 다 해주고 싶어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모든 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어줬을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십니다. 의롭다고 여겨주신다는 것은 천국까지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고 여겨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믿을 때 하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들을 선한 인간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앞이 깜깜하고 세상 살기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지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선한 분으로 우리가 인정해 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죄가 더덕더덕 붙어 꼴사나운 우리를 선한 인간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세상 살기 힘들다고 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들에 비하면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믿는 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인간들의 말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뭐 이런 x의 세상이 다 있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선했지만 인간이 꾀를 내어 험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해드리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는 믿음입니다.

영생도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상적인 약속도 하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꼭 필요한 것, 즉 아들과 많은 자손을 허락해 주십니다. 종을 비롯한 많은 재산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히 일해 얻은 것이었습니다. 예쁜 아내도 열심히 구애 작전을 펼쳐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낳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이었으나 아들만큼은 장래에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맘대로 아들을 못 얻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래의 복을 약속하시며 이뤄주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다른 재산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없는 것,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약속하시며 믿음을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의 자손에게 약속의 복을 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산 자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복과 약속을 계속 이어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자유인입니다. 종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받을 복은 그의 종 엘리에셀이나 그의 종 하갈에게서 나온 이스마엘이 이어받지 못합니다. 자유인이었고 적법한 부부관계였던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나온 적법한 아들인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복을 계속 이어받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가정과 하나님 앞에 신실한 부부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과 약속을 담는 그릇입니다. 수십대에 걸쳐 바르게 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집안에게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복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봅니다. ‘아, 저 집안을 보니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눈에 들어오는구나! 하나님께서 바로 저 집안에 계시는구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집안 내력에서 그 집안을 창대케 해주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 저 집안은 귀신 안 섬기고, 점 안보고, 도둑질 안 하고, 남의 등쳐먹지 않아도 저런 복을 받네. 저 집안은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지. 나도 저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고 사람답게 살며 복을 받자. 사실 이 방법 외에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저렇게 귀한 집안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큰 손해가 될 것입니다. 세상 힘들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이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이 영광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으시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도 허락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주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일은 없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분께서 방패가 되신다는 확신을 갖고 담대히 세상의 죄를 규탄하고,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게 담대히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의 권익이 훼손될 것 같으나 그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인간 관계나 명예가 훼손될까 기독교인이 두려움에 떨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늘의 별을 보십시오. 깜깜한 가운데에서도 더욱 빛나는 것이 바로 별들입니다. 세상의 위대한 자들을 스타(별)라고 합니다. 군대에서도 장군은 별을 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한 아브라함에게 별과 같은 자손들을 주셨습니다. 인간 세상은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잡다한 자들을 사로잡아 어둠에 싸여있으나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어둠 속에서도 더욱 빛을 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스타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걸출한 자손보다 더 귀한 복이 어디 있습니까? 반대로 부모님 얼굴에 똥칠하고 사회의 낙오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자손들보다 더 저주스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과 복을 믿고 철저히 인내하며 계명을 지킨 자들은 별과 같은 자손을 얻는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도무지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늙은 나이에 약속을 받고도 몇 십년이 지나도록 성취가 안된 것을 보며 그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어떤 맘을 갖고 계신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받을 복이 뭔지도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별들을 다 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장차 자기가 받을 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전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입니다. 그런 영광을 아브라함이 꿈이라도 꿨겠습니까? 이래저래 세상 공평한 것입니다. 인내가 크면 믿음이 큰 것이고 믿음이 크면 상급도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늘그막에 하나님께 부름받아 길을 나섰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종을 첩 삼아 이스마엘을 낳고, 99세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제 정말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니 약간 속으로 웃었습니다. 물론 입으로야 믿는다고 했지요. 이게 약 30년 정도의 기간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큰 것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무한하고 영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은 한 60년 정도 더 아브라함이 기다려도 서운하지 않았을 복이었습니다. 혹시 아브라함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성하신 축복문서에 우리가 우리의 도장을 찍어 효력을 발생시킵니다. 이것 참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이렇게 좋은 일이! 이 도장이 바로 우리의 감사입니다. 여러분, 하나만 물어봅시다. 장래에 확실히 주실 복을 미리 감사한다고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조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약간 기분 나쁘다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는 그 기분 나쁜 형편을 다 날려버릴 큰 복을 발로 차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특히 자기의 본심을 알아주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두신 분들께서는 남을 믿어주는 것이 큰 덕임을 아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꼭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범사에 믿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복과 영생을 주시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이에 맞게 우리도 사는 날 동안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드려서 우리의 믿음에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좋은 것이었든 힘든 것이었든 다 감사할 줄 압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감사드립니다’라고 잘도 말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나 힘든 현재의 일에는 감사드리기를 주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 모두 다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게 정말 감사하는 믿음생활입니다. 10년이나 지난 옛날 TV드라마 보다 오늘 처음 방영되는 TV드라마 보기 더 좋아하시는 아줌마들은 다 현재의 모든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줄 아는 아줌마들은 왠지 세련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우리의 상급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을 믿었고 마침내 세상적 복도 받고 하나님까지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자들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바드대 학생이다’라고 하면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아는 자들은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영광스런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도 좋지만 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가치 있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세상도 얻었고 창조주 하나님도 얻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얻으면 살기에 좀 편하지만, 하나님을 얻은 자는 거룩하고 고귀하고 권능 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마귀가 감히 손찌검을 못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를 본받읍시다. 무조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읍시다. 무조건 감사드립시다. 무조건 기다립시다. 절대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맙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 끼어 있는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은 불순물일뿐입니다. 성령의 불로써 이 불순물과 찌꺼기를 태워버립시다. 인내로써 우리의 믿음의 크기를 넓힙시다. 사랑으로써 우리의 믿음의 불을 계속 지핍시다. 감사로써 우리의 믿음에 도장을 찍읍시다. 믿음으로 우리의 몸과 우리의 뜻과 우리의 사랑과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다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읍시다.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처럼!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