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3편) : 성도의 대적자들

stevision 2012. 11. 24. 09:38

 

(2007년 1월 20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성도의 대적자들                                                English
말씀: 시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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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시니라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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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편은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자기 친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이에 생명에 위협을 느껴 도망치며 지은 시입니다. 얼마나 인생이 허무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는지 그 경황에도 시를 한 수 짓는군요. 다윗은 부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중에는 서로에 대해 이복형제들이 많았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친동생이지요. 그런데 다윗의 장남 암논이 이 이복 여동생을 마음에 두고 사랑하다 강간을 하고는 걷어 차버렸습니다. 젊은 시절 근신하여 조금만 조심스럽게 살았다면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를 수도 있던 인물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순간의 쾌락을 위해 남의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마침내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의 원한을 갚으려 맘논을 죽입니다. 그리고 이웃나라 자기 외갓집으로 도망갑니다. 자기 어머니가 이웃나라 사람이었거든요. 세월이 흘러 다윗의 마음이 누그러졌을 때 압살롬은 다시 아버지 나라로 되돌아왔고, 꾀를 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두 번째로 아버지에게 대적합니다. 저번에는 아버지의 장남을 죽이더니 이번에는 아예 아버지까지 죽이려고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왜 다윗에게 대적자들이 저렇게 갑자기 많이 생겨난 것입니까? 그것은 다윗이 공개적으로 죄를 범해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다윗의 죄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전쟁 중에 자기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궁으로 끌어들여 동침을 했습니다. 왕궁 바로 옆에 사는 어느 부인이 다윗의 초청으로 왕궁에 들어왔는데, 다음날 새벽에 왕궁을 나갔고, 한 달인가 얼마 후에 그녀의 남편이 전쟁 중에 왕에게 잠시 소환되었는데 집에 들르지도 않고 전쟁터로 즉시 가서 죽었더라. 그런데 하여튼 이상한 것은 그 남편이 죽은 다음 여덟 달이나 아홉 달이 지난 다음에 그 왕궁 옆에 사는 여자가 다윗의 부인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 이것 참 이상하다?? 이런 이상한 소문은 왕궁을 몰래 빠져나가 이스라엘 전역에 퍼졌고, 급기야 군사들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인격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많이 했더라도 저런 굵직한 비리가 하나라도 있으면 아무리 다윗같은 성군이라도 구멍 뚫린 자신의 체면을 세상 그 무엇으로도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충성스런 우리야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목숨을 걸고 다윗 왕조를 위해 싸우는 것이 허무한 일일뿐입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똘똘 뭉친 이스라엘에 하나님만을 위해 한 평생 살았다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자랑 그 자체였으나 이제 다윗의 비열한 짓을 목격한 자들에게 다윗은 부끄러운 왕일 뿐입니다. 다윗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다윗의 인격을 전혀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어휴, 저 위선자!’

일단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되면 일난 것입니다. 도대체 대책이 없습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걸린 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 아내 믿을 만 합니까?” “어브 코스 노!” “당신 남편 믿을 만 합니까?” “오 노!” 상대방이 아무리 진실되게 행동해도 그 진실된 행동 자체를 연막작전으로 보기 때문에 의처증이나 의부증이라는 정신병에 걸리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병은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의심과 거짓의 영을 몰아낼 때만이 치료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계획했을 때 이미 이스라엘인들은 심각한 의왕증(疑王症)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이스라엘의 왕 다윗에게 대적자들이 많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요. 다윗은 이런 불미스런 일이 우리야 살인사건 때문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마음이 악한 철저한 정치꾼이었다면 우리야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밧세바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눈총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야의 미망인을 자기 부인으로 삼았고,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타인이 고통을 당했다면 하나님께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 당사자에게 철저한 배려와 보상을 해야 합니다. 저런 다윗의 회개의 모습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이웃에게 눈물 흘릴 일을 저질러놓고 하나님께 나와 회개헌금을 드리고 용서해달라고 기도 드린 다음에 입 싹 닦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한다면,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의 아니라 뇌물 받아먹는 재판관일 뿐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하나님께 예물 드리러 성전에 왔다가 이웃에게 못할 짓 한 것이 생각나거든 그 이웃에게 먼저 가서 화해하고 나서 성전에 와서 그 예물을 드려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얼떨결에 자기 부하 우리야를 죽이고 난 후 양심에 가책을 받아 자기 정치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할 수도 있는 그의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의 본심을 읽으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셔서 그의 죄를 책망한 다음에 그 벌로 다윗의 집안에 칼로 죽을 자가 많을 것이라 선언 하셨으나 다윗의 죄는 용서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이고, 다윗 집안에 칼바람이 있을 거라는 말씀은 죄에 대한 책임은 물어 형벌은 내려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용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천국에 가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겠다는 말이지요. 그런 형벌도 안 내리면 아내까지 빼앗기고 일찍 죽은 우리야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께는 우리야나 다윗이나 다 같은 그분의 백성입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죄는 용서해주시되 책임은 묻는 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를 지어 용서받았어도 어떤 징벌이 내리면 그것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로 오해하여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책임을 물으시는 동안에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은 여러분이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개는 죄에 대한 책임을 다 물으신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형벌의 갑절이 되는 복을 내리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이래저래 사랑의 하나님이시지요. 할렐루야!

목숨이 위태한 이러한 급박한 시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해냅니다. 그리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 사람들이 제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주님께 버림받아 이제 끝장난 인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주시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저의 방패시요 저의 영광이시요 저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십니다. 저의 대적이 저렇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 원수의 뺨을 치시고 그들의 이빨을 부러뜨릴 수 있으십니다. 제 원수가 천만명이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나서시면 저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발 제발 저를 도와주소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셨습니다. 군사 수로 봐서는 게임이 되지 않았지만 다윗의 군대가 대적자들의 군대를 쳐서 이겼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아, 다윗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하나님께서 정말로 다윗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는가보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용서하신 다윗을 우리가 대적해봤자 백전백패지! 다윗이 예전의 정직한 다윗으로 돌아왔는가보다.’ 여러분, 드디어 이스라엘인들에게 임하였던 의왕증이 사라졌습니다. 기적 같은 다윗의 승리를 통해 이스라엘인들은 다윗을 여전히 하나님께 인정받고 있는 쓸만한 왕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다시 왕으로 삼아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추앙받는 왕으로 살다가 평안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문제는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입니다. 압살롬이 자기 친동생 다말을 강간한 이복형 암논을 죽인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정상을 참작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비에 반역하여 아비까지 죽이려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패륜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다윗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자들이 이 패륜아에 빌붙어 다윗을 몰아내고 다윗의 신하들까지 몰아내서 한 자리들 해먹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자기와 직접적 원한관계가 없는 다윗을 해치려 한 자들은 다 다윗의 대적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어 주시던 날 여럿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이웃에 해를 끼치려는 자들을 좋게 안보십니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께서 보시기에 어떤 자가 과거에 죄를 좀 지었더라도 여러분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면 그의 대적자가 되지 마십시오. 물론 직접적 관련이 있더라도 주님의 말씀대로 용서해야 하겠지요. 다윗처럼 이미 그 자도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일 수 있으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에게 함부로 대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그에게 형벌을 가하는 자는 될 수 있으나 대적자가 되면 안되지요. 대적자는 불법 냄새가 나는 말이지요.

여러분! 다윗은 살인과 간음과 가정파괴 죄를 범한 자였습니다.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받아 죽는 날까지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리며 왕노릇 해먹고 평안히 생을 마쳤습니다. 부러우십니까? 착하게만 살아오신 자신이 약간(?) 억울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도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지십시오. 죄를 지었으면 철저히 회개하고,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 하고, 동일한 죄는 두 번 다시 짓지 마시고, 환란 때에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꼭 용서해 주시고, 꼭 도와주시고, 꼭 승리케 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이 있을 수 있으나 여러분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만 회복하고 있다면 그들의 수가 찬만이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여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윗같은 중죄인도 용서하시고 풍성한 삶을 허락하셨는데 하물며 착하게만 살아오신 여러분은 얼마나 더 하나님께서 잘 도와주실까요? 믿음을 가지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대적자들을 다 물리쳐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