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요21:15-23) : 내 양을 먹이라

stevision 2012. 11. 24. 09:41

 

(2007년 1월 20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내 양을 먹이라                                                      English
말씀: 요21:15-23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7, 18절)”

베드로라는 사람 참으로 기구한 생을 살았습니다. 장가는 일찍 가가지고 뼈빠지게 고기 잡으며 그럭저럭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수께서 나타나시어 다짜고짜 “고기 그만 잡거라. 나를 따르거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도대체 ‘사람 낚는 어부’라는 말이 뭐가 좋아서 베드로는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걸까요? 아마도 베드로는 당시에 예수께서 많은 자들을 몰고 다니시는 것을 보고 그 중에 예수님 다음 자리 정도의 유력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 같습니다.

3년의 공생애를 마치신 예수께서 십자가 사건 다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제자들은 각자 자기 생업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도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에게 또 찾아오셨습니다. 맨 처음에는 예수님께서는 어부 베드로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으나 지금은 그 제자 수업을 마친 베드로를 사도로 임명하시어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런데 파송식이 참 특이합니다. “시몬의 아들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어브 코스 예쓰.” “내 양을 먹이라.” 이런 대화가 세 번 오고갑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곧바로 사도로 세상에 파송 안 하시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옛날의 생업으로 되돌아갔을 때 다시 나타나시어 사명을 주시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내가 너희를 사도로 세워 세상에 파송한 것이 확실하니 절대로 옛사람으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옛날 사람들로 되돌아갔을 때 굳이 그 때를 기다리셨다가 그들을 다시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를 허용하시는 것은 나중에 그러한 상황이 재발되더라도 절대 그런 실수를 다시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시키기 위함입니다. 본격적으로 성직에 들어서고 나서 그런 경우를 처음 당하면 실수를 하게 되고 그러면 그 실수 때문에 성직 수행이 어렵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본격적인 때가 이르기 전에 여러 실수를 범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직이나 주님의 일에 들어서기 전에 음란과 같은 죄에 푹 빠져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 실수 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거룩한 직분을 맡기신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역에 들어서면 절대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쨌든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최종적으로 다시 부르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신 임무가 무엇입니까? 바로 “내 양을 먹이라”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께서 당신의 양들을 친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셨으나 이제 그분께서는 승천하시어 성부 하나님 우편에 좌정해 계셔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으뜸으로 베드로를 지명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이제 내 양을 영양가 있는 양식으로 먹여 토실토실 살이 찌게 하여라. 세계 곳곳에 다니며 내 양들을 불러모아 그들을 양육하거라. 베드로야 나는 너만 믿는다. 네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맡겠느냐. 배운 대로만 하거라.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무엇으로 예수님의 양들을 먹여야 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양들에게 먹일 양식은 바로 베드로 자신입니다. 그게 뭔 소리냐고요?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제자 중에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이 수제자 베드로가 당연히 예수 선생님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성찬예식을 통해 당신의 살과 피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의 희생과 봉사를 통해 제자들을 먹이셨다는 거지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자신의 희생과 신앙생활과 봉사를 통해, 즉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해 예수님의 양들을 먹여야 합니다. 제대로 된 사도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먼저 베드로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주인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예수님의 양들을 먹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인격이 파탄나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부모가 딴 여자나 남자와 바람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편 놔두고 이웃집 아저씨와 포옹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면 자식들의 인격이 파괴됩니다. 아내 놔두고 회사 여직원과 단둘이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면 자식들의 인격이 파괴됩니다. 성직자가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 성직자의 지도를 받고 있는 예수님의 양들이 올바르게 성장합니다. 성직자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보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 예수님의 양들은 신앙인격이 파괴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양들에게 가장 좋은 양식은 성직자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베드로처럼. 그래서 지혜로우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무슨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게 아니지요.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쳤으나 베드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 주위를 맴돌다가 얼떨결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자는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정확합니다. 성직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고, 예배를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지요. 예배 시간을 엄수해야하고, 설교는 아무렇게나 대충 준비했다가 시간에 쫓기듯 예배 시간 바로 직전까지 준비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안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종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아야 되겠지요. 또한 세상의 영광에 너무 곁눈질하면 보기 안 좋습니다. 이렇게 성직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고, 교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장로나 권사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일 때 예수님의 어린양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됩니다. 그렇게 기본을 갖춘 성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주님의 양들이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예수님의 양들을 먹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나중에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예언하십니다. 베드로는 실제로 로마 당국에 의해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그분께서 지워주시는 십자가를 져야 하겠지요. 십자가는 희생과 순종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성직자가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보며 그 고귀한 신앙을 본받게 됩니다. 때로는 성직자가 십자가를 지려는 모습을 안 보일 때 주님의 양들 중에서 그 십자가를 대신 지려고 해도 성직자보다 더 나은 신앙을 보일 것이 부담스러워 그만두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는 부끄러운 상황입니다. 주께서 주신 직분이 클수록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보여야 아랫사람들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신앙으로 잘 성장하게 됩니다. 다른 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평안을 누리며 90세까지 잘만 살아도 예수께서 어느 때이든 자기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시면 이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기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자기 교인들이 다 가난뱅이들이라 헌금이 적게 나온다고 인상을 쓰는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이는 것은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게 아니지요. 옆 교회가 아무리 부흥이 잘 되고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성도들에게 정말 영양가 있는 양식이지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십자가를 지는 모습은 정말로 귀한 성도의 양식입니다. 반대로 거짓 사랑과 거짓 희생은 영양가가 전혀 없습니다. 헛배만 부르게 하지요.

무엇보다도 베드로가 주님의 양들에게 먹일 매일의 양식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만큼 예수님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하신 모든 말씀을 베드로만큼 잘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는 언제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 제자들을 특히 더 가까이에 두시고 여러 가지 신비한 것들을 보이셨습니다. 이 셋 중에서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고통 당하는 모습까지 다 보았던 자였습니다. 따라서 여러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수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양들을 먹일 책임을 맡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양들에게 먹일 최후의 양식은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던 베드로에 의해 분배되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양들에게 그분의 십자가 사랑과 그분의 여러 교훈들을 가르쳐 그들을 천국에 들여보내야 할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직자는 예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항상 유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여 성도들에게 바른 복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양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수님의 양들을 먹일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며 어떻게 예수님의 양들을 먹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님의 양들을 양육할 수 있습니까? 또 예수님의 허락도 없이 어떻게 예수님의 양들을 양육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우리 모두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께서 “네!”라고 대답을 하시면 “그러면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부탁하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양육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돌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다가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놓치면 안 됩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잠시 들르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 잠시 들른 자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고맙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영생을 주신 예수님이 감사하다면 그분의 마지막 부탁을 꼭 들어드립시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드립시다. 우리가 가진 재산과 직업과 건강과 젊음을 사람들을 전도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사업에 투자합시다. 말로만 예수님 사랑한다고 하지말고 실천에 옮깁시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돈만 낚는 어부가 되지 마시고 천국에 갈 자들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무용지물이 될 세상 지식만 낚는 어부가 되지 맙시다. 높은 감투만 낚는 어부가 되지 맙시다. 불법적으로 육체의 쾌락을 충족시켜줄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지 맙시다. 영생을 얻고 천국에서도 큰 상을 받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양들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