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마27:3-8) : 가룟 유다

stevision 2012. 11. 24. 09:36

 

(2007년 1월 17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가룟 유다                                                            English
말씀: 마27:3-8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가룟 유다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혹자는 예정설에 근거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유다가 불쌍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뉘우치는 유다의 모습에서 왜 베드로는 죄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어 큰 일을 했는데 같은 사도였던 유다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쳤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영생으로 유다는 영벌로 정해져서 그렇다고 해야 하나요?

그러나 베드로와 유다는 죄질이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로서 예수를 사랑했던 자였습니다. 다만 막판에 가서 얼떨결에 사람들에게 위협을 느껴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긴 했어도 그것은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유다는 예수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유다가 도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사역에는 많은 자들이 함께 다녔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후원금을 받았는데, 유다가 이것을 곶감 빼먹듯이 착복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이를 눈치챌 정도로 뻔뻔하게 그 짓을 했습니다. 어느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몸에 부어드리자 ‘왜 그 비싼 것을 그런 쓸데없는 곳에 사용하나?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좋지 않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점점 예수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분이긴 한데... 전혀 결단력이 없고... 자진해서 죽는다는 소리나 하시고...’

사실 당시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이해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유력한 정치종교 세력들과 로마총독부는 예수의 종교운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예수의 제자들도 감시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무력하게 죽음의 길을 가겠다는 예수의 마음을 읽은 유다는 예수 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했습니다. ‘예수께서 무력하게 죽으시면 이 분을 따랐던 나도 잡혀가게 되어 내 정체도 발각되겠고 그러면 내 인생도 끝장나게 되겠지. 내가 이 위험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그렇다! 내가 선수를 쳐서 예수를 저들에게 넘겨주면 적어도 나는 예수 운동의 핵심 멤버가 절대로 아니었다고 산헤드린 당국이나 로마정부가 인정해 주겠지.’

유다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돈 얼마를 받고 예수를 넘기겠다고 합니다. 돈 한 푼도 안 받고 넘기겠다면 본심이 탄로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원래 예수의 추종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의 행적을 힘들게 추적해서 알아냈고 그래서 수고비는 조금 받아야겠다는 거지요.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유다는 예수의 목숨을 노리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은 30을 받고 예수께서 계신 곳을 알려주었고, 예수께서 유죄 판결을 받으시자 죄를 뉘우치고 그 받은 돈을 도로 종교지도자들에게 갖다 주었으나 그들이 받지 않자 그 돈을 성전에 던져놓고 자살을 합니다.

이처럼 유다는 예수를 진정 주님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평소에 그를 따라다니며 이익을 취하다가 막판에 가서 예수 운동에서 완전히 발을 빼었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유죄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아무리 받은 돈을 되돌려 주려 해도 이미 토사구팽 처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의리에 관한 결백을 주장하려 했지만 누가 알아줍니까?

왜 예수께서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줄 미리 아셨으면서도 제자로 삼으셨을까요? 그것은 장차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유다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부터 좀도둑과 배신에 정평이 나 있었던 유다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되었고, 잔꾀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고, 드디어 예수의 제자까지 되는 출세(?)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최선을 다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상세히 가르치셨습니다. 가까이에서 예수의 교훈을 받은 유다는 자신의 삶을 고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교훈을 마음으로 거부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나와 예수의 교훈을 배우며 사는 자라도 마음으로 그 교훈을 거부하고 계속 세상적 사고방식으로 살다가는 유다 짝이 난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예수의 교훈은 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 가라지와 같은 자들이 있어서 교회를 배반하며 교회를 환란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음을 후대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는 마치 적국의 스파이가 그 나라를 출발할 때부터 자국에 잠입하여 수작을 부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 꿰뚫어 보고 있는 정보기관장이 그 스파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관찰하여 기록까지 남겨 놓고 후배들에게 스파이가 어떤 식으로 침입하여 활동하는지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마귀의 도구였던 유다가 접근하는 것을 보셨고, 그가 하는 대로 그냥 놔두셨습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회에 잠입하여 교회와 예수님을 배반할 자들이 있으니 후대 기독교 지도자들이 방심하지 말고 교회를 잘 지켜야 함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야 능력 있으셔서 유다를 첫눈에 알아 보셨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그 정도의 능력이 없으니 항상 깨어 기도하여 가룟 유다와 같은 가라지가 교회에 깊이 뿌리박고 살지 못하게 색출하여 사전에 제거해야 합니다. 교회나 교단의 돈이 이상하게 새고 있으면 가룟 유다와 같은 가라지가 활동중이니 교회 지도자는 이를 즉시 색출하여 그 가라지를 뽑아야 함을 예수께서 교훈하고 계십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훼손하면서까지 자선사업이나 인권운동과 같은 사회 운동을 펼치는 자가 있다면 이는 필시 가룟 유다처럼 마귀의 종일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고 뒷조사를 철저히 하고 신앙사상조사를 철저히 해서 교회가 쓰러지지 않게 해야 함을 예수께서 교훈하고 계십니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겠다는 자들 중에도 가룟 유다와 같은 자가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성직에 있는 자라도 마귀의 도구가 있을 수 있으니 속지 말아야 한다고 예수께서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예수의 교훈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교회 내에서 활동을 해도 결국은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꼴을 면치 못하고, 최후 승리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꼭 믿으시고 교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 더 건강해지기 위해 백신이 꼭 필요한데 그 백신이 바로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환란과 시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말이지요. 신자들은 가룟 유다를 보며 교회 안에 그런 자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절대로 교회 내에서 한 사람에게 절대적 신뢰를 두지 말고 오직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만 신뢰를 두어야 함을 배웁니다. 초대 교회는 배반한 사도 유다 때문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다를 대신할 새로운 사도 맛디아를 세운 초대교회는 적극적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살길을 찾았습니다. 오늘날도 유다와 같은 가라지를 통해 교회가 더 성숙해지고 자생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모든 왕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니 우주의 황제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감히 이 예수님께 대적해서 이길 수 있습니까? 마귀에게 속해 있던 유다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꾀를 사용해서 예수를 죽이려 했으나 결국 자기네들끼리 머리싸움하다가 십자가에 예수를 달리게 하려는 성부 하나님의 뜻만 이루고 정작 자신들은 자살을 하거나 나중에 로마군의 침략과 성전파괴로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상실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이든 예수를 믿는 자이든 예수를 대적했다가는 반드시 패합니다.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면 안됩니다. 예수님 편에 서십시오. 진리 편에 서십시오. 자신의 모든 행동의 기준을 복음전파와 예수님께 영광이라는 방향에 맞추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매사에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선한 도구가 되니 여러분이 언제나 승리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미련할 정도로 순진하게 예수 믿으세요. 잔머리 굴리지 마시고. 매사에 정직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세요. 소금이 맛을 잃으면 버림받아 발로 밟힙니다. 기독교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면 예수께도 버림받고 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유다가 자신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버리니 떠나겠다는데도 예수께서 잡지 않으셨고, 후에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에게까지 버림받아 쓸쓸히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다른 제자들을 부활 이후에도 계속 찾아다니시며 그들을 붙잡으셨습니다. “가긴 어딜 가?” 사도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생각하는 마음이겠지요.

이 시대의 가룟 유다는 누구입니까? 유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탐욕과 배반을 좋아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예수를 믿고, 선하신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가 바로 유다입니다. 그렇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와 같이 탐욕스럽고 배반을 잘 하는 자들에게는 은 30 정도의 값싼 인물이셨군요. 반대로 욕심이 없고 신실함을 항상 목숨처럼 여기는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값싼 인물로 보시면 여러분이 가룟 유다와 같은 자입니다. 반대로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한없이 귀하신 분으로 보신다면 진정 그분의 제자이십니다. 아무리 귀한 보석이라도 돼지에게는 쓸모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발견한 자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들여서라도 그것을 삽니다. 가룟 유다는 진주를 짓밟은 돼지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면 마귀가 인간을 어떻게 농락하나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마음밭이 더러운 자를 자신의 도구로 삼습니다. 마귀는 존귀하신 분이나 존귀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죄를 다 짓게 한 다음에 스스로 절망하여 죽게 만듭니다. 자살이라! 요즘 많은 자들이 생활고로 자살을 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식들까지 다 죽인 다음에 자살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부끄럽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귀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다고요? 당신이 아직도 교만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인간이 뭐가 부끄럽습니까? 당신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자들도 잘만 살고 있습니다. 요즘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해외 근로자를 들여와야 겨우 공장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직장을 구해 떳떳하게 살지 않고 매춘이나 도둑질을 하며 살다가 스스로를 더럽힌 다음에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다가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하는 거지요. 유다처럼.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스스로를 천한 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미천한 직장이라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감사드리며 열심을 다합니다. 미래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신실하신 예수님을 배반하지만 않는다면 미래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세상에는 당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다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을 믿고 현재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희망찬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기어이 성공한 삶을 산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앞이 깜깜해서 도무지 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은 당신의 믿음이 유다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눈을 멀게 해서 신실하신 예수님을 못 보게 하기 때문에 당신이 희망을 못보고 절망에 제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 하는 것입니다. 절망이라는 암흑의 신(神)에게 당신의 귀중한 목숨을 바치지 마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 당신의 깨끗한 마음을 바치십시오. ‘예수님, 힘든 세상입니다. 저를 도와줄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 자신을 볼 때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뿐입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다 오라고 하시니 주께로 나갑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를 주님의 소유로 삼아주소서.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오니 저를 받아 주소서!’

여러분의 마음이 저렇게 깨끗해지면 그 순간 예수께서 여러분 안으로 들어오셔서 여러분에게 새 소망을 주십니다. 살 힘을 주십니다. 일할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눈을 여시어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하갈이 주인에게 쫓겨나 광야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울부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녀에게 나타나 눈을 여시어 우물을 발견하게 하시고 살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 많으시고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살길을 주십니다. 자살한 유다를 본받지 맙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결코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패배한 인생이라는 치욕을 더 추가시키는 것밖에 안됩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고, 이를 우리가 깨달으면 반드시 살 길이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어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유다를 본받지 말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재발견합시다. 그분께서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경배드리는 시간은 가장 귀한 시간이니 다른 세상일 때문에 그 시간을 달리 사용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맙시다. 그분의 몸인 교회를 팔아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맙시다. 그분의 지체인 교회 성도들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맙시다.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이것이 바로 가룟 유다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