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마14:13-21) : 떡 다섯 물고기 둘(오병이어 기적)

stevision 2012. 11. 24. 11:17

 

(2007년 2월 7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떡 다섯 물고기 둘(오병이어 기적)                                                English
말씀: 마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14 에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것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 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예수 자신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의인이 됩니다. 마귀의 종으로 살았던 자들이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물은 사람들에게 갈증을 해소시켜줄 뿐이지만 포도주는 갈증을 해소시킬 뿐만 아니라 기쁨까지 주고 새로운 힘도 줍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힘도 얻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와서 값없이(공짜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께 나오면 세상 사람들이 맛 좋은 포도주를 양껏 마시고 기분 좋은 상태가 되는 것보다 이상하게 더 기분이 좋아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예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도 무의미한 기적이 아닙니다. 오늘의 이 기적은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심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여러분! 인간 석가모니나 마호멧이 전해준 교훈 따위로 여러분께서 영원한 배부름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떡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영생의 양식은 없습니다. 다른 교훈은 없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안의 한 위격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영생이시고 그분께서 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나 마호멧은 죽어 무덤에 묻혀 한줌의 흙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영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른 보통 사람과 동일하게 죽어 썩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후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시어 당신 자신이 부활이시고 영생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을 구세주로 믿어야 영생을 얻고 영원히 배부른 만족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포도주 같은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병이어로 수천 명이 먹고도 남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갈증과 배고픔을 영원히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무 때나 이런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오해할까봐 그러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마귀가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예수께 나타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덩이들이 변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창조주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껏 시장하실 때 돌덩이를 둔갑시켜 떡이나 만들어 잡수시고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러 오셨습니까? ‘어브 코스 노!’ 그게 아니지요. 마귀의 시험은 유치원 어린이들이나 걸려들 차원 낮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수준 낮은 시험에 걸려들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세상적으로 먹고 살만하게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확실하니 절대 평균 이하로 가난하시더라도 기도 때마다 불평 좀 늘어놓지 마십시오! 기독교인이면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게 무슨 저주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마음은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 주문한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인 기독교인이면 마땅히 건강하고 부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마귀생각.’ 성경은 먹을 양식이 있고 입을 옷이 있으면 족하지 않냐고 우리에게 감사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6-8).” 여러분, 이 땅에서 아파트 없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파트 구입하는 데 모든 힘을 다 쓰고 60세 넘어 하나님의 일을 하시겠다고요? 천국에 가시면 100평짜리 호화 아파트 널렸으니 먼저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예수께서는 굳이 40일 금식 기도 안 하셔도 성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다 하실 수 있으셨음에도 그런 힘든 고통을 겪으신 이유는 이 땅의 배고프고 가난한 자들의 삶에 동참하시어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대통령이 전쟁터에 있는 군사들을 전격 방문하여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과 같은 거지요. 여러분, 좀 배고프고 가난하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읍시다. 우리 구주 예수께서 우리들이 영원히 거할 천국처소를 예비하러 천국에 미리 가계십니다. 어쩌면 예수께서 40일 금식기도 하신 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만큼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네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언제 예수께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베푸십니까? 예수께서는 절대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드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돌덩이를 깎아 사람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영생이나 복을 받을 생각을 마십시오. 이건 정말 유치한 미신행위입니다. 예수께서는 맹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드신 적은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맹물이 ‘먹는 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못 먹는 돌’을 둔갑시켜 먹는 떡이 되게 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사기입니다. 차라리 전혀 아무 것도 없던 무(無)에서 떡이 나오게 하는 것은 그나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 하면 이 세상에 있는 떡들의 가치가 하락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더 좋고 더 새로운 것을 만드십니다. 세례 요한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3:8,9)” 세례요한의 이 말은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나 할례받고 하나님의 자녀 행세하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마귀의 자녀들에게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돌이 변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다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들입니다. 생명의 전달과정은 시간적 단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멩이를 둔갑시켜 말 잘 듣는 인간들을 만드셔서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좀 부족해도 아브라함의 몸으로부터 나온 후손들을 잘 교육시켜 그들을 변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어 영생을 주십니다. 돌멩이를 둔갑시켜 말 잘 듣는 인간을 만들어 그자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홍해 바다로 향하게 하시어’ 홍해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여리고 성을 돌게’ 하신 다음에 그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인간으로부터 받으셔서’ 수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겨자씨와 같은 것을 자라게 하시어 큰 나무가 되게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대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있는 ‘최선 최대의 것’을 받으셔서 인간에게 필요한 ‘최선의 것’을 만드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조그만 것이라도 헌신적으로 하나님께 바친 자에게 큰 영광과 칭찬을 안겨 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바친 자의 아름다운 믿음과 헌신을 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헌신입니까? 자기도 배고플텐데 수천 명이 있는데도 나눠먹겠다고 그 보잘것없는 것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이게 바로 겨자씨와 같은 믿음입니다. 1에다가 만을 곱하면 만이 됩니다. 그러나 0에다가 무한대를 곱해도 0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기적을 베푸실 겨자씨 같은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기적을 베푸시겠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좋으니 꼭 믿음을 가지라 하셨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담임 목사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세요. 힘이 닿는 대로 여러분의 것을 선하게 그런 곳에 사용하세요. 물질로 봉사할 여력이 없으면 기도로라도 하세요. 물질로 봉사할 여력이 없으면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로라도 하세요. 그런 식으로라도 여러분의 겨자씨를 만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어 교회도 잘 되고 여러분 가정도 잘 되게 해주십니다. 제발 교회의 온갖 은혜와 힘을 다 소진시키는 블랙홀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힘을 내는 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식사문제를 각자 해결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제자들의 제안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십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문제 해결의 능력을 많이 주셨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식량은 먹고도 남을 정도로 생산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전쟁을 없앨 방법과 수단을 인간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온갖 더러운 정신병문화와 퇴폐문화와 마약문화를 다 쓸어버릴 지혜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지혜와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집 옷장에 몇 년 째 입지 않고 있는 옷이 쌓였어도 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며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 집 강아지는 비만에 걸려 있고, 많은 자들이 비만에 걸려 있으면서도 굶어죽어가는 자들이 수억입니다. 한국 교회를 보더라도 교회를 좀 더 정화시키고 교회 질서를 바로 잡고 은혜로운 기독교 분위기가 되게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한국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그런 부패를 방관합니다. 예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교회가 그냥 썩게 만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에게 있는 문제는 너희들에게 준 지혜와 능력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니 너희 지혜를 짜서 문제를 해결하라.” 여러분, 사회와 직장과 교회와 가정 문제를 방관하지 마십시오. 기도만 하며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만 바라지 마시고 행동에 옮기세요!

예수께서는 배만 채우는 떡보다는 당신 자신을 인간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예수님)의 살을 먹지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3,54).” 기독교인이 아니신 분들께서는 이 성경말씀이 굉장히 이상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고난을 나를 위한 고난으로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직접 임하기 위해 우리에게 겨자씨와 같고 오병이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제시하신 영생을 갈망하는 마음이 겨자씨와 같은 것이라면,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인간적 지식과 논리를 내세우지 않고 예수님의 영생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게 오병이어와 같은 믿음이 되겠네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어 꼭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께서 여러분의 모든 선한 믿음과 헌신에 복을 내려주시어 풍성한 열매가 맺게 해 주시고, 여러분에게 매사에 자족하는 마음을 주시어 풍성한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