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창9:1-17)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stevision 2012. 11. 24. 09:55

 

(2007년 2월 3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English
말씀: 창9:1-17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니라. 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성경은 진리입니다. 성경에 여러 기적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적을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도 진리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큰 홍수를 내서 이 땅의 모든 산들을 다 물로 덮을 수 있으십니다. 또한 그 물들이 썩 물러나게 하시어 요즘의 세상과 같이 되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물이야 없던 것에서 있도록 만드시면 될 것이고, 그 많던 물이 대부분 다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믿어야 바른 믿음입니다.

(하지만 노아 홍수 이야기가 소설처럼 느껴져서 그것을 믿을 수 없겠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그러면 이렇게 한 번 믿어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수천 년 전 옛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떤 경건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 자는 세상에 만연한 죄와 악에 마음이 상해 사는 자였습니다. 이 자가 어느 날 산기도 하러 높은 산에 오르는데 정상에서 기절초풍할 사실을 발견합니다. 글쎄 그 높은 산꼭대기에 조개껍질이 있는 거였습니다. 요즘이야 지각변동에 의해 바다 밑에 있던 땅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도 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에 그런 사실을 모르던 자는 정말 충격적으로 그 사실이 다가왔겠지요. 이 자는 세상 여러 곳을 다니며 높은 산들을 다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자는 자신의 신앙에 기초하여 생각합니다. ‘전 세계를 다 둘러보아도 높은 산 꼭대기에 조개껍질이 있구나. 이는 분명 온 세상이 큰 홍수 때문에 다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다 잠길 정도의 홍수라면 분명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이고, 이는 분명 과거에 하나님께서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조개들의 크기를 보니 한 150일 정도 물에 잠겼던 것 같군. 그럼에도 지금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분명 의로운 자를 택하시어 큰 방주를 짓게 하셔서 그리로 피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동물들도 그곳에서 보존하셨음이 분명하다.’ 이런 신앙과 세상 체험을 한 자가 노아 홍수 이야기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전능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후대에 이르도록 계속 전해져서 성경편집자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역사책이나 과학책이 아니라 신앙경전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러한 경로로 노아홍수 이야기가 성경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내용이 전하는 신앙적 의미와 교훈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의 믿음도 귀한 믿음입니다. 어쨌든 성경 내용의 역사적 사실성에 회의적인 분들께서는 성경이 여러 문학 장르를 통해 기록된 것을 고려하여 노아 홍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진리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논리로 성경을 판단하고 신앙진리를 거부하다 정작 중요한 영생을 잃는 것은 비논리의 극치입니다. 돌아가든 곧장 가든 신앙의 진리에 도달해 믿는 게 중요합니다.)

노아 홍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죄와 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준엄한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이겠지요. 또한 노아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에서 멀리하고 온 가족이 경건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되게 하시어 심판을 면하고 온 땅을 다 차지하게 해주신다는 거겠지요.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1절과 7절에서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을 내리십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생명들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 결코 멸망시켜 싹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동물을 창조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너무 지어서 땅이 너무 더러워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물의 씨만 남기고 다 죽이셨습니다. 이제 그 무서운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인간과 동물은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면을 체험하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물에게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여러 번 강조하여 말합니다. 노아의 홍수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오래 오래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여 창대케 되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믿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홍수로 다 몰살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당신께서 괴로우시지만 세상 종말까지 꾹 참으시겠다는 거지요. 그 때까지 인간들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 후에 최후 심판 때에는 영생과 영벌로 판결을 내리시겠지요.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진짜 있을 영원한 심판을 인간들에게 미리 보여주시어 바르게 살아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부득이 내리신 것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존재함을 인간들이 마음속 깊이 명심하라고 그런 벌을 내리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을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의 생육과 번성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 가족, 모든 짐승들, 노아의 후손들 이 모두와 언약(계약)을 세우십니다. 그 계약에 보니 인간과 짐승들의 관계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짐승들은 인간의 음식(식물, 食物)이 됩니다. 에덴 동산 시절 이후 노아 홍수 이전까지 인간과 짐승들의 음식은 식물(植物)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짐승들의 고기를 인간의 양식으로 주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든 짐승들은 의로운 사람 노아의 땀과 노력으로 지은 방주에 몸을 피해 살아남았습니다. 짐승들은 인간에게 자신들의 생명을 빚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짐승들을 노아와 그의 후손에게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어차피 한 번 죽을 동물들입니다. 그냥 썩어 없어질 몸이지만 어떤 가치 있는 일에 소용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짐승들의 고기를 인간의 음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여 방주를 지어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들의 종을 지켰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하여 짐승들의 고기를 인간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지요. 말하자면 동물들의 생명의 주인은 인간들이 된 셈이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들의 절대적 주인이시지만 그래도 노아 홍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동물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마땅히 갚아야 하는 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짐승은 죽어 인간의 음식이 되어 인간에게 은혜를 갚아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은혜를 많이 입어서 효도로써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온전히 자신들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돼지고기, 쇠고기, 낙지볶음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그분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남편에게 많은 사랑과 은혜를 받아 금가락지 금목걸이 모피 걸치고 다니는 부인들은 남편을 공경하고 순종하시오! 그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를 뽑아내지 않고 그냥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생명이 피에 있으니, 고기와 함께 피까지 먹으면 생명을 범하는 것이고, 이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피를 먹는 자에게 벌을 내리시겠다고 합니다. 고기는 먹어도 좋으나 피까지는 먹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첫째로 이는 생명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짐승을 죽여 인간이 그 고기를 먹는 것은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것이므로 생명 자체를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피는 생명 자체이므로 그것까지 먹어치우는 것은 생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니 짐승을 잡으면 피는 먹지말고 땅에 쏟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명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생명을 범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범하는 여러 가지 죄가 있습니다. 강간하는 것도 생명을 범하는 죄이고, 재미는 실컷 보고 임신하면 가차없이 낙태시키는 것도 생명을 범하는 죄입니다. 인간의 성(性)은 생명 자체와 관련되어 있어서 일반적으로 성범죄는 다 생명을 범하는 죄입니다. 이런 중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을 물으십니다. 고기는 먹되 생명이 있는 피를 먹으면 안 됩니다. 성(性)은 부부관계 안에서 합법적으로 즐기시되 성에 담겨진 생명은 함부로 해하지 마십시오. 큰일납니다! 피를 먹지 마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는 두 번 째 교훈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먹는 것은 축제의 시간입니다. 생명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도 이 잔치에 좀 참여하자고 하십니다. 이 때 하나님 몫은 피라는 거지요. 인간은 짐승을 잡아먹으며 항상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몫으로 남기라고 엄명하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바로 짐승의 피입니다. 인간은 짐승을 잡아먹으며 맛있는 음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감사기도 드립니다. 맛있는 축제의 시간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까지 곁들이니 참으로 복이 넘쳐나고 은혜가 넘쳐나는 자리가 되겠군요! 그게 더 좋아 보여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몫으로 조금 떼어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이 제일 맛없는 부분입니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랑하여 맛없는 부분은 자기가 먹고 맛있고 건강에 좋은 부분은 다 자식에게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군요. 일반적 상식으로 볼 때 짐승의 머리에 생명이 있다고 해야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제일 맛없는 부분에 생명이 있다고 하시네요. 옛날 고기가 귀하던 시절 우리 부모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지요. ‘난 고기는 싫어, 난 뼈다귀가 맛있어.’ 여러분, 조금이라도 기쁜 일이나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 생활 가운데 우리와 함께 사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삽시다. 그런데 신약시대 이후 요즘은 짐승의 피로 만든 음식을 먹으셔도 됩니다. 순대국 맛있게 드셔도 천국 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금하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살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의로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같은 육체적 형상을 가지신 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영생을 얻게 될 영적 존재이고, 인간이 인격을 가진 책임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거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시기 위해 인간이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옛날 로마 황제는 자신의 상을 만들어 신처럼 모시게 했습니다. 요즘도 북한 사람들은 죽은 김일성 동상 앞에서 절을 하지요. 이처럼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의 형상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형상은 그 형상이 지시하는 실제 인물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그 형상에 불미스런 짓을 하는 자는 가차없이 벌을 받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이라 선언하시어 지극히 높은 위치로 올려주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그들이 어느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직접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위로 인정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로마 황제나 김일성은 부당하게 자신들을 높이고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자신들의 형상을 만들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인간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당신의 형상이라는 지위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이렇게 높여주신 이유는 그렇게 높여진 인간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높여진 위치에서 짐승만도 못하게 산 자들을 준엄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는 법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그리고 동물과 맺으신 언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지정하셨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무지개가 있었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증표로 삼으신 것입니다. 약혼자가 금반지를 사랑의 증표로 삼은 것과 같은 것이지요. 금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절대 홍수로 생명체들을 다 멸하시지 않겠다 하시고, 동물의 고기를 인간의 음식으로 주시고, 대신 인간은 피를 먹어서는 안되고, 살인은 절대 범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에 덧붙여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동물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내리셨고, 이러한 계약의 증표로 무지개를 구름에다 두시겠다는 게 바로 노아 홍수 이후의 새로운 언약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날 때면 이러한 언약을 기억하시며 그 언약을 지키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력이 없으셔서 무지개를 봐야만 그 언약을 기억하게 되신다는 말이 아니지요. 무지개는 인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증표입니다. 무지개를 보며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무지개를 보며 인간은 하나님의 본심이 멸망시키는 것보다는 복 주시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를 지어 잠시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더라도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우리는 생명을 지키시려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멸망당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안심하라는 말입니다. 무지개를 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명대로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그분께서 정하신 즐김의 한계를 넘어서면 안됩니다. 이렇게 그분과의 계약을 성실히 지킨 자는 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절제와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시어 생육과 번성의 복을 받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