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요7:14-24) :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

stevision 2012. 11. 24. 09:52

 

(2007년 1월 31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                                                          English
말씀: 요7:14-24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23, 24절)”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지긋지긋한 육체의 질병으로부터 해방된 이 자는 평소에 자기가 누워있던 돗자리를 들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걸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골수분자들이 ‘왜 안식일에 물건을 나르고 야단이냐?’라고 따졌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자가 ‘저를 고쳐주신 분께서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해서 그랬는데요’라고 하니, 유대교 골수분자들은 이번에는 그 병을 고쳐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줄 알고는 안식일에 병자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 트집을 잡고 ‘안식일에 병이나 고쳐주며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하여 모세의 율법을 범하고 돌아다니는 그 예수라는 자를 죽여버리겠다’고 공공연히 엄포를 놓았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7장에 보니 명절 중간쯤 될 때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니 사람들이 ‘이 사람(예수)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하며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무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증오심과 적대감을 보시고 ‘모세가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하시니, 유대인들이 ‘당신 귀신들렸소!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한단 말이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율법에 정해진 할례를 안식일에도 하지 않느냐? 내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 가지고 왜 분해하며 나를 죽이려 하느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지적하신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유대인들은 당시에 공인된 종교 지도자가 아니셨던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공인된 종교 지도자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 정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보다도 성직의 권위를 더 높이 두는 자들이 성직우상숭배자들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권위임을 다시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요즘 기독교의 최고의 권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이 성경 말씀은 이미 수천 년 간 지내오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다 기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선포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누구도 여기에 시비를 걸면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하에 허락을 받고 말씀을 선포해야 되겠지요.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직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100% 하나님의 말씀이니 괜히 자존심 상한다고 저항하다가는 하나님 말씀에 저항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제일 심각한 폐해는 바로 성직을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그런 폐해가 있어서 그런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경말씀을 거의 대부분을 제도화된 성직자를 통해서 기록하지 않으시고 제도권 밖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성직자로 부르셔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기록했던 자들이나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를 보세요. 모세는 목자였었고, 다윗도 목자였었고, 솔로몬은 왕이었고, 구약의 예언자들은 거의 다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사도들 중에 제사장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도권 안의 성직자들은 좀 더 겸손하란 말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구세주 예수께서 제도권 성직자인 제사장이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실이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도권 안의 성직을 보자면, 하나님께 부름 받지도 못하고 제 멋대로 성직에 들어서서 안수 받은 자들도 있을 것이고, 개중에는 성직매매를 통해 성직자 행세를 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직을 존중하고 성직의 위계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농사꾼이나 어부이면서 하나님께 비정규 성직자로 부름 받은 자들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고 누가 선포하든 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두어야 성직우상숭배를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외모로 판단하는 행위는 소위 학벌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궁이 있었던 예루살렘 선비들은 이스라엘의 촌구석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괄시했습니다. ‘저런 촌뜨기 양반이 도대체 뭘 가르치겠다는 거야? 중졸(中卒, ?) 출신이라며?’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예수)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7:15).”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거의 100%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제(Z^_stevision) 짧은 경험상 한 말씀드리자면,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배운 지식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샘에서 맑은 물이 나와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듯, 하나님의 종들의 경우 그 마음에 성령께서 계셔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계속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시어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정치와 세상 감투에만 정신이 팔렸던 당시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한 적이 없어서 할 일없이 예수님의 학력(?)에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그들의 종교적 영성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계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잔꾀를 내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자들은 논리의 달인이신 예수께 처절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그(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3).” 예수께서는 굳이 학위가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힘써 예수에 대해 알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 성경을 기록했고, 그 제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위대한 신학자들이 연구하여 교리를 만들었고, 많은 현대의 지식인들이 그러한 위대한 신학자들의 신학사상을 열심히 연구하여 그 위대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요즘도 하바드나 옥스퍼드 교수들 중에 예수님 사상 연구해서 밥벌어 먹는 자들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굳이 학위가 필요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당시에 유명했던 종교 지도자의 제자가 되어 박사(?)학위를 받으셨다면, 이거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굳이 그분께 학위가 필요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교회에 똑똑하신 박사님들이 많으셔서 시시한 신학대학 학사나 석사 출신 목회자를 그다지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것 나쁜 버릇입니다. 속히 고치도록 하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학벌이 좀 달리는 당신의 종들의 말에 힘을 실어 주시기 위해 그분들께서 하신 말씀을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대로 다 이뤄 주십니다. 지혜로운 성도여, 큰 교회 목사님이나 초라한 교회 목사님 가릴 것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갖고 그분들을 대하시오. 특히 초라한 교회 목사님을 만나뵐 기회가 있으시면 극진히 한 번 잘 대접해 주시오. 옆 교회 개척교회 목사님 계시면 그 교회 나갈 처지가 못되면 물심양면으로라도 도와드리시오. 하나님께서 봉사할 기회를 그렇게 주시는데도 다 놓쳐버리시니 참으로 안타깝소!

예수께서는 성경 해석의 문자주의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안식일날 일하지 마라는 율법 조항을 근거로 안식일 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마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매 안식일마다 의료행위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잘못된 것이나, 응급 환자를 그 날에 고쳐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또 무료로 안식일에 사람들 병을 고쳐주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에 무료급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행위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죄이나 엄동설한에 누추한 노숙자를 성전에서 재우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대행하는 거룩한 일이라는 말이지요. 성경 해석의 문자주의 못지 않게 해로운 것이 바로 교리수호주의입니다. 장로교나 감리교 기타 교단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지키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좋으나 함부로 타교단을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선언하면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방언을 하느니 못하느니, 성령을 받았나 못 받았나 하며 너무 그렇게 싸우면 안됩니다. 자신의 신앙경건의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며 그대로 본받으라(?)고 강요하면 안됩니다. 전에 어떤 분이 제게 성령받아 방언받으라고 억지로 기도를 시키는 바람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목이 팍 쉬도록 기도를 하라고 강요하는데 정말 그 비위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남의 강요에 의해서 어떻게 되는 그런 신앙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성령이야 예수님 믿고 세례 받으면 이미 당연히 받은 것이고, 방언을 안 해도 그럭저럭 신앙생활 건전하게 하고 있으니 문제될 것은 없죠. 제가 볼 때 방언은 주로 교회의 기도사역자들이 받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의식을 갖춘 채 기도하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니 성령께서 주시는 언어로 깊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 필요하여 하나님께서 방언 은사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기도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이 방언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Z^_stevision)야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는 오랜 시간 책을 읽는 편이어서 방언 은사를 받았더라도 별로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길게 방언 기도 안 해도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니 건전하게 신앙생활 하는 데 별로 불편함을 못 느낀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심에도 그것을 망각한 무식한 성도들이나 교만한 목회자들이 자신들이 세운 신앙경건의 기준에 따라 타인을 정죄하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무식하고 교만한 짓이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이참에 정말 중요한 은사가 뭔지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명심하십시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은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은사입니다. 성경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시대 상황에 맞게 선포하는 은사가 제일 중요한 은사입니다. 병고치는 은사는 병 나은 자가 죽기 전까지 유효한 은사이고, 방언 은사는 맨정신으로 기도하는 은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고, 예언 은사도 성경 읽는 은사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서 선포하는 은사는 교회의 존재를 지키는 은사이고 영생에 관한 은사이니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은사라는 말입니다. 아시겠소? 그래서 하나님 말씀 바르게 선포하시는 목사님께서 제일 귀한 분이라는 말입니다. 방언도 못하시고 병고치는 은사도 없으셔도 사실은 그분들이 가장 귀한 은사를 받은 분들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7:24)고 하십니다. 왜 함부로 남을 판단합니까? 당신이 그 자에게 은혜를 준 적 있습니까? 당신이 천국과 영생을 나눠주는 자요? 왜 당신의 입맛을 세계 표준으로 삼으려 하시오? 여태까지 남을 부당하게 외모로 판단했던 자들은 다 회개기도 하시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기까지 남을 외모로 판단했다면 용서를 구하시오. 그리고 제발 겸손한 목사님들 밑에서 성경 좀 제대로 배우시오. 열심과 교만만 있고 성경과 신학지식이 텅 빈 자들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남을 외모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평신도들과 대화를 해보면 얼마나 편협하고도 무식한 신앙지식으로 정상적인 신앙인을 가르치려 하는지 정말 눈뜨고 못 봐줄 지경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못 봐줄 자들이 바로 교회 안에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기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교만이지요! 겸손하십시오. 당신이 빼내어야 할 대들보가 아직도 많이 박혀 있습니다. 평소에 성경 좀 많이 읽으시고,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타인의 신앙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은혜는 눈에 쉽게 띄는 거창한 목록들도 있지만 타인의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귀한 은사도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성경 지식, 남을 존경하는 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이 정말 중요한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남을 무조건 사랑하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게 됩니다. 그러면 절대 외모로 타인을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됩니다. 그게 바로 공의로 판단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고, 사실 또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를 낮게 만드셨고 모든 ‘너’를 높게 만드셨습니다. 좀 손해보시는 것 같다고요? 아니지요. 타인에게 여러분은 높으신 ‘너’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겸손과 분별력 있는 마음을 주시어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여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덕을 끼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