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11편) : 흔들림 없는 하나님의 법

stevision 2012. 11. 24. 11:47

 

(2007년 3월 10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흔들림 없는 하나님의 법                                                English
말씀: 시11편

  

 

 

>>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

다윗의 시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언제 하나님께 버림받은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사울이 첫 번째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불순종했을 때였습니다. 사울이 불레셋과의 전쟁에 나가기 전에 사무엘의 집례하에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려야 했는데, 사물엘의 도착이 늦어지고 불레셋의 위협이 강화되고 군사들이 대오를 벗어나 흩어지려는 기미를 보이자 사울이 급한 마음에 제사장이 아니었음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이 제사를 드린 직후에 사무엘이 도착하여 되어진 일을 보았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그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삼상13:13,14).” 단 한 번의 불순종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고, 사무엘의 선언 이후에 그 즉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택하시고 오랜 세월 다윗을 훈련시키셨고 때가 되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 다음에 솔로몬 왕이 있었고, 솔로몬 다음에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됩니다. 여러분,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언제 선언된 줄 아십니까?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 때에 이미 그 나라가 망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왕은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걸 하나님인 것처럼 여기고 섬기게 했습니다. 또 제멋대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명으로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열 지파의 왕이 될 것이라 예언했던 아히야라는 선지자는(왕상11:29-39) 저런 죄를 범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에게 그와 이스라엘이 패망할 것이라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하나님)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버릴지라(왕상14:1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북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밖(유프라데스 강 넘어, 즉 앗시리아(앗수르) 지역)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송아지 우상)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왕상14:15,16).”

여러분, 개인이나 나라를 불문하고 시작부터 삐딱하게 나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그때 이미 버리시고 그 자리에 합당한 다른 자들을 물색하십니다. 혹자는 저런 선언이 있은 후에 까마득히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일이 성취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이 꽤 지체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수 밖 지역의 나라가 북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갈만큼 큰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남쪽의 애굽(이집트)을 능가하는 국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앗수르 중간에 있어서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이집트 못지 않은 세력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 된 후에도 오랜 기간이 지나 그게 성취된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스라엘이 남북왕조로 갈린 후 북왕조가 초대왕부터 삐딱하게 나가자 하나님께서 즉시 북이스라엘의 패망을 선언하시고 그 즉시 북쪽 유프라데스 강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를 규합시키셔서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그 세력이 충분했을 때 즉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켜 포로로 잡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법은 지엄하고 정확하며, 그분의 심판은 의외로 신속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시11:3은 이렇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이 말씀은 곧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고 무너지면 의인이 의인답게 살 수 있겠나?”라는 말이고, 이는 “하나님께서 바른 법을 지엄하게 집행하지 않으시면 누가 죄 안 짓고 의인으로 살겠는가?”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보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딱 좋은 사항입니다. 악인들이 악행을 저지르며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고통을 받는 의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많이 외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시37:1). ...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37:9,10)”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악인들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사는 자였고,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는 약하고 네 대적들은 강하니 새처럼 산으로 피해 목숨을 부지하거라!” 다윗도 대적자들이 화살을 당겨놓고 곧바로 쏠려고 하는 그런 위기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약함과 대적자의 강함과 현 위기상황을 보지 않고 ‘불변하는 지엄한 법을 집행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흔들림 없는 큰 바위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시행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다윗이 봤을 때 하나님의 법은 천체들의 움직임보다도 더 정확하며 어긋남이 없었고, 국가의 법보다도 훨씬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처량한 새처럼 산으로 도망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피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어서 그런 지혜롭고도 확실한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새가 되어 항상 쫓기는 삶을 살기보다는 믿음의 용사가 되어 강한 대적을 이기는 자가 다윗처럼 믿음이 있는 자이고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나님의 터는 굳건하여 그리로 피하는 자는 좋은 피난처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성전에 계신 분이십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 마련한 장소입니다. 누구나 성전에 가면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전에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던 자라도 죄를 뉘우치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그분의 성전에 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받아주십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있는 곳에 아무나 못갑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신 지고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시고 누구든지 그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을 뵙고자 하면 그를 만나주십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성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에 가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께 피해 도움을 구하는 자를 반드시 도와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습니다. 땅은 낮고 하늘은 높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이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의인과 악인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보좌는 주권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별보다도 더 높으며 하나님의 심판의 권세는 최종판결을 가능케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판단이 항상 옳습니다. 나의 짧은 판단으로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시다느니, 악인에 대한 심판이 더디다느니, 그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죄인이다’라고 하시면 나는 죄인이고, ‘너는 의인이다’라고 하시면 나는 의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죄를 용서한다’라고 하시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죄인취급 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전에 죄를 지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힘입어 내가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을 때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내 문제를 놓고 재판을 걸 수 없습니다. 여러분, 높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행동을 주목해 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깨끗한 마음, 사랑이 넘치는 마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의로운 일에 목말라 하는 마음, 죄짓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하나님께 보입시다. 이웃의 소유에 대한 탐욕스런 마음, 다른 여자들에 대한 음란한 마음, 남을 속이려는 마음, 남을 무시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을 썩 물러나게 합시다. 더러운 옷을 벗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법! 두 마음을 품고 살려 하는 자는 자신이 악인보다 약간 더 나은 자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두 마음을 품고 살려는 자는 더러운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초대해 놓고 악취 풍기는 더러운 방에 가두어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더러운 욕망을 떨쳐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여 정결하신 성령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저절로 자신이 깨끗한 마음이 될 거라 생각하지 마시고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여 여러분 안에 임하시게 하십시오. 더러운 마음에는 마귀가 소유권을 꽉 쥐고 있습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도 미워하시는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십니다. 악인이야 누구나 다 아는 것이고, 강포함이란 폭력을 말합니다. 폭력은 하나님의 법을 신뢰하지 않고 제멋대로 린치(私刑)를 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칼폭력, 주먹폭력, 언어폭력, 성폭력 따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자는 한 마디로 머리가 비어있는 자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理性)을 폐기하고 저런 더러운 폭력으로 삶을 꾸려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폭력으로 타인을 괴롭히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갑절로 되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합법적 절차를 따라 원수를 응징하지 않고 자기법으로 원수갚는 것도 폭력에 해당됩니다. 이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에 대한 용서를 가르치면서도 한 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것은 “용서를 구할 때” 49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겸손히 용서를 구하지 않은 범법자를 용서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억지로 ‘기독교인의 사랑’을 이유로 용서하라고 강요하면 안됩니다. 죄를 범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에게 100% 잘못과 반목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를 일방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물론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런 자를 용서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그건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사항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에게 사적인 보복을 가하거나 적극적으로 증오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단지 겸손히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를 억지로 형제애를 가지고 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그런 완고한 자에게 피해를 봤으면 민·형사 소송을 걸 자유와 권리가 기독교인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원수를 사랑하고 그에게 도움을 주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이므로 하나님께 큰 상을 받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 대해 예수께서는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용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유죄판결을 유보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선고유예를 선언하신 것이지요. 이는 사랑 많으신 예수님의 자유에 속한 것입니다. 또 당시의 예수님께서는 유대정부 관원도 아니셨고, 그 간음한 여자에 의해 피해를 본 당사자도 아니셨습니다. 그래서 제3자의 입장에 계셨던 그분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신 게 당연한 처사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예수께서는 한 ‘평민 유대인’으로 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간음녀 문제는 제가 “두 여자 이야기”에서 소상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아무튼 폭력을 행사하며 죄용서 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심판을 하신다는 것은 흔들림 없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거부하는 악인들에게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으로 심판하십니다. 이게 바로 의인들을 그토록 시원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지엄한 법입니다. 회개와 용서 구하기를 거부한 악인들이 마침내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으로 매우 뜨거운 상황을 맞이할 그 때에 의인들은 후련함과 깊은 평화를 만끽하게 됩니다. 결국에 가서는 악인들에게는 화병(火病)을 주시고 의인들에게는 속시원함을 주시는 게 하나님의 지엄한 법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평소에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여 하나님께 여름날에 냉수와 같은 자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속시원하게 해주십니다. 매사에 게을러터지게 일해서 하나님께 화병이 생기게 하고, 독한 연기만 모락모락 피워 눈물만 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 속시원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뵈올꼬? 쯔쯔쯔...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시라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고 정직한 자에게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모든 문제 상황 끝, 해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좋아하시는군요. 여러분, 그렇게 사셔서 하나님을 뵙고 사는 자들이 되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속시원하게 해 드리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도움으로 매사를 속시원하게 해결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