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창50:22-26) : 요셉의 유언

stevision 2012. 11. 25. 13:38

 

(2007년 3월 17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요셉의 유언                                                           English
말씀: 창50:22-26

  

 

 >> 22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 여기에 언급된 자들은 이곳 인간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육체적으로는 죽은 자들이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죽음과 결부시키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신이 아니라 모든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고 생명을 필요로 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생명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들에게 죽음을 이기게 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사는 자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에 이르러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폐하신 이유도 바로 성전에서는 동물일지라도 죽음을 맛보는 것보다는 생명을 누리는 것이 더 보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가급적 죽은 자들의 자취를 남겨놓으면 안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에 죽은 자의 큰 독사진 따위를 걸어놓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전 안이나 성전 뜰에 죽은 자의 기념관도 세우면 안됩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의 뼈를 성전 지하실에 안치해 놓거나 성전 뜰에다 묻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극히 큰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자기 무덤으로 삼겠다고? 이는 교만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 보니 요셉은 죽기 전에 애굽에서 살고 있던 자기 형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맹세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실 때 내 뼈도 함께 가지고 나가라.” 물론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하던 애굽땅에서 해방시키실 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살이 썩게 되고 뼈만 남는데 요셉은 사람들이 자신의 뼈를 공경해주기를 바래서 그런 유언을 했을까요? 아니면 자기 뼈가 애굽땅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면 죽은 다음에 자기에게 무슨 고통이 있을 거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그런 유언을 했을까요? 그게 아닙니다. 요셉이 먼 훗날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자기 뼈를 갖고 애굽땅을 빠져나가라고 다짐을 시킨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지 자기 뼈가 애굽땅에 있기를 원치 않았다면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처럼 죽자마자 바로 자기 조상들이 묻혀 있던 가나안 땅에 자기 뼈를 묻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후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유언하며 그런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빠져나갈 영광스런 그 날에 자기 뼈도 영광스럽게 동참(?)하게 하려고 그런 부탁을 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요셉의 위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까지 지냈던 자였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와 모든 형제들을 애굽으로 모셔와 살 길을 열어준 자였습니다. 요셉 이후에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다시는 요셉과 같은 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야말로 애굽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에게 전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습니다. 요셉이 죽은 다음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 조상 요셉이 애굽에서 어떤 자였는지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제가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인 갑봉 김우항의 후손인데 저는 그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인들도 애굽에서 큰 인물이었던 자기 조상 요셉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위치와 이스라엘인들의 장래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에 영원히 눌러 살면 안 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스라엘인들은 자리를 박차고 애굽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굽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후손이 자신들이 애굽에서 떠나야 할 자들임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남아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너희들이 이 나라를 떠날 때 내 뼈도 갖고 나가라’고 맹세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맹세는 자손 대대로 전해졌습니다. 애굽에서 태어난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전설적인 요셉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들었고, 또 요셉의 흔적도 보았습니다. 또한 부모로부터 자기 조상 요셉이 ‘너희들 이스라엘인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실 것이다. 그 때 내 뼈도 함께 갖고 나가라’고 당부했던 사실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자기네들이 애굽을 떠나야 할 자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죽은 지 거의 300년이 지난 후에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요셉의 유언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맹세가 없었다면 요셉 이후 몇 대가 못되어 이스라엘인들은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애굽인이 되었을 것이고, 300년이 지난 다음에는 완전히 애굽인들이 다 돼서 절대로 그렇게 살기 좋은 나라를 떠날 맘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비록 종으로 살았지만 당시 애굽은 풍요로운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인들의 종이 되었던 것은 아마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똘똘 뭉쳐 살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아버지 야곱처럼 죽자마자 자기 뼈를 곧바로 가나안에다 묻지 말고 나중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갈 때 그 때 비로소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달라 부탁을 합니다. 맹세를 하게 합니다. 결국 요셉은 자기 뼈를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인들에게 정말로 그들이 포기해서는 안될 사명을 어깨에 지워준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 넘겨줄 영적 유산이 뭔지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후손들에게 정말 꼭 가르쳐야 할 것이 뭔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예수님의 양들은 이 땅을 떠나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인들은 반드시 애굽을 떠나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야할 자들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아무리 풍요롭게 살았다 할지라도, 애굽에서 혹시 요셉처럼 높은 관직에 있었던 자라도 예외 없이 다 애굽을 떠나야한다는 게 요셉의 당부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이 땅은 재미있고 때로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도 하고, 때론 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내가 영원히 살 곳이 못됩니다. 사실상 우리의 수명 문제도 있고,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이런 불확실하고도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확실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사실 요셉처럼 타국에서 총리로 지내며 오랜 세월 호강하며 산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바른 신앙을 가진 자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뼈조차도 애굽에 남아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애굽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나라였고, 어리석은 우상숭배와 더러운 귀신들이 들끓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호강하며 산 요셉도 애굽을 떠나겠다는데 애굽인들에게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자손이 떠나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요셉의 신앙과 이스라엘 자손의 신앙이 같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여러분께서 요셉과 같이 바른 신앙을 가지셨다면 마음에 사무치도록 천국을 소망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요셉과 같은 신앙을 가지셨다면 이 세상의 향락에 푹 빠져 살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에게 이 세상에 과도한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십시오. 우리의 참소망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자식들의 손이 예수님의 손에 잡히게 하십시오. 예수를 만나 그분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자는 어둔 밤바다에서 등대를 만난 자와 같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다가 애굽에 와서 총리까지 지냈던 요셉은 이스라엘인들의 등불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꼭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고 엄명합니다. 천국에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셨던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등불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려주셨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께서 하늘나라에 다시 가셔서 우리들이 거할 처소를 마련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구세주로 믿고 따르면 우리는 다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바로 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들에게 참소망이 생깁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자신들이 가야할 곳을 압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허망한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게 되고 필요하다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버려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요셉은 자기의 뼈로써 이스라엘 자손에게 포기해서는 안될 소망을 가르쳐줬고,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빈 무덤으로써 우리에게 확실한 소망을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남긴 게 뭡니까? 요셉은 자식들을 남겼고, 또한 귀한 신앙을 가르침으로 남겼고, 그 나머지는 자신의 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물론 재산도 얼마 남기긴 했겠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생은 이 땅에서 죽어 뼈만 남기고,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 그 뼈도 다 삭아버려 이 땅은 내 것이라곤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자식도 이미 남이고, 요셉이 자식에게 물려준 재산은 이미 자식들 것입니다. 죽어 천국에 가 있을 요셉이 이 땅에 남겨 놓은 자기 것은 아무도 갖기를 원치 않는 요셉의 뼈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우리가 아무리 귀중한 존재가 되려 해도 이 세상은 우리의 것을 소중히 담아두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죽어 시체가 되면 세상은 그 시체조차 귀히 여기지 않고 가급적 빨리 치워버리려고 합니다. 세상은 나의 소중한 것들을 보관하려 하지 않습니다. 생전에 쌓은 명성과 명예조차 후대 사람들이 시기하여 먹칠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소망을 두며 세상에다 나의 존재 의미를 새겨놓고 세상에다 나의 재물을 쌓는 것이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 계신 영원한 천국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나의 존재의미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고, 나의 보화는 예수님의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써서 천국은행 계좌에 기록해 놓아 천국에다 쌓아 놓았습니다. 이게 바로 바른 소망을 가진 자의 이 땅에서의 삶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요셉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다시금 정말 귀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요셉은 유언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때가 되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먼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마시고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십시오. 또한 그 영원한 천국의 영원한 상속자이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섬기십시오. 그분의 눈에 들어야 여러분께서 천국에 가실 수 있습니다. 또한 천국에 소망을 둔 자답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그리고 자손들에게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심어주십시오. 생을 마감할 때 유언도 좀 멋진 것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천국에 보화를 많이 쌓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