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4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의 숨바꼭질 English
말씀: 시13편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
사람은 미래의 일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1년 후에 벼락부자가 될 가난뱅이는 1년 동안 맘고생을 하며 지냅니다. 1년 후에 폭삭 망할 회사 사장은 1년 동안 맘 편히 살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 다 이와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지 우리 인간들은 과거의 일은 비교적 소상히 압니다. 누가 과거에 착한 일을 많이 했고 정직한 일을 많이 했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통해 그 자의 과거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자의 과거행적을 볼 때 미래의 모습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을 누가 압니까? 여전히 미래는 우리의 눈밖입니다.
인간의 눈은 과거의 사실은 그나마 볼 수 있지만 미래의 일은 깜깜합니다. 인간이 미래의 일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모든 인간들의 마음이 부패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돌멩이는 고지식하게 정직(?)하여 자연법칙을 철저히 따라서 공중에 던져진 돌멩이의 궤적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부패해서 윤리나 도덕이나 하나님의 법을 너무 자주 어기는 바람에 인간에 대한 미래를 예측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슈퍼컴퓨터로도 예측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을 가진 존재라도 항상 진리에 따라 산다면 그 자의 미래의 일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정말 알 수 없는 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그분의 심오한 섭리와 작정이지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진리 그 자체이시며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이 무한하시고 자비가 무한하시며 인자하시며, 죄를 미워하시고 정직한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의 진리의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변치 않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진리 안에서 그분의 미래와 나의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13편은 다윗의 시이고 다윗이 고난의 기간이 길어지자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 언제까지 얼굴을 숨기시고 계속 숨바꼭질하시렵니까?”라고 외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 안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다윗이 진리 가운데 살기만 하면 100% 모든 문제가 하나님 안에서 시원스럽게 해결됨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는, 사랑이 많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진리 안에 거하며 그분을 믿고 사는 자들에게 너무나도 투명한 분이시고 너무나도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듭하여 “의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자신의 믿음의 눈을 수건으로 가려놓고 일방적으로 ‘하나님 숨바꼭질하시는 겁니까?’라고 투덜거리면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섭해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살면 우리는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미래의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미래의 일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성숙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당장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후에 다윗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 봅시다.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5:4,5).” 사무엘하 7장에 보니, 왕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나단 선지자에게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아 그 자가 성전을 지을 것이라 하시며 다윗에게 확실한 복을 약속하십니다. “내(하나님)가 네(다윗)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다윗의 아들)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5,16).”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이웃 여러 나라를 쳐 속국으로 만들었고, 호강하며 장수하다 편히 생을 마쳤습니다. 참고로 사무엘하 22장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찬송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입니다.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 왕에게 말해준 진리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왕상2:3)”였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진리를 우리에게도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이 진리 안에 살 때 우리는 다윗과 같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3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눈을 밝혀달라고 하나님께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아람군대가 겹겹이 둘러쌌을 때 엘리사 선지자는 영의 눈이 떠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있어서 태연자약했지만 영의 눈이 어두운 종 게하시는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군대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5절에서 다윗은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환난 중에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무시무시한 원수를 보며 떨지 말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보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묶인 사자일 뿐입니다. 묶여있지 않는 사자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입을 봉하시어 사랑하시는 자들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시며, 여러분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승리를 주기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께서 이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천군천사를 보내시어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감기면 여러분은 사망의 잠을 자게 되어 절망에 빠지게 되고 원수들이 기뻐 날뛰며 더 삼키려 합니다. 대개는 고난의 기간이 길어지면 자포자기하여 믿음의 눈을 감아버리려 합니다. 여러분, 마귀의 전략 중에 아주 칭찬(?)할 만한 것이 지속적인 공격입니다. 이 전술에 속아넘어가면 안됩니다. 이런 마귀의 전략에 맞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방패는 바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이 신실한 약속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우리 구주 예수께 맡기고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손안에서 놀아날 뿐입니다. 예수께서 정하신 기간을 단 일초도 초과하여 여러분을 괴롭힐 수 없는 게 마귀와 마귀의 종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예수께 두고 우리의 원수에 대항할 때 그 의로운 싸움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승리는 더 큰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마귀에 맞서 결연한 투쟁을 할 것을 작심하면 여러분은 이미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었다 안 믿었다, 울었다 웃었다, 희망을 품다 절망하다를 반복하면 안됩니다. 내가 요동할 때, 내가 흔들릴 때 나의 대적들이 기뻐합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지 우리의 대적을 기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신앙인이 지금까지 잘 참아오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가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주시고 일도 잘 안 풀리지’라고 생각할 때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님께서 어떤 긍정적인 징조를 보여주시면 ‘아, 그럼 그렇지 난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용기를 내자!’라고 생각하며 또 희망에 들뜨게 됩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오래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기반을 확실히 잡고 있는 사울 왕이 있고, 많은 대적자들이 있습니다. 다윗이 대적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면 ‘역시 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들떠 있다가도 또 다른 위협 앞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어떻게 저 사울왕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단 말인가? 지금 내 처지를 봐라. 이런 꼴로 내가 어떻게 왕이 된단 말이냐? 사무엘 선지자가 잠시 착각하여 나를 왕으로 임명하여 기름부었을거야. 지금이라도 이 허황된 꿈을 버리고 이 땅을 멀리 떠나 광야에서 목동으로 사는 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또 절망에 빠집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다윗과 같이 울다 웃다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울왕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서 왕권을 빼앗아 다른 자에게 주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일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권을 약속하시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다윗에게 왕이 될 것을 취소한다고 말씀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시고 약속을 받은 자가 범죄하지도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취소하지도 않으시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에 하신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신 이상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이나 우리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제멋대로 의심하면 안됩니다. 특히 약속 이행이 늦어져도 울다 웃었다 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75세에 하나님께 부름 받아 25년 정도 지난 100세에 아들 이삭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흔들리지 마시고 울다 웃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세요. 여러분, 혹시 하나님께 어떤 복을 약속 받으신 후 실현이 지체되어 낙심 중에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복을 취소한다고 말씀 안 하신 이상 그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숨바꼭질’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숨바꼭질은 기독교인들과 마귀 사이의 게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교인의 눈을 가려 하나님을 못 보게 만듭니다. 마귀는 때론 거짓으로, 기만으로, 폭력으로, 위협으로, 지속적인 공격으로 기독교인의 마음과 눈을 혼란시켜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못 보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절망하여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 때가 바로 마귀가 게임에서 이기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마귀의 모든 궤계와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자하신 분이심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을 활짝 열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찬송’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6절).” 우리가 모든 힘든 상황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힘찬 찬송을 불러드리면, 우리가 만군의 하나님을 찬양하면 이것 자체가 승리의 함성이 됩니다. 이 승리의 함성에 놀라 마귀는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우리 자신에게 있었던 어두운 먹구름도 걷힙니다. 마귀도 자취를 감추고 내 마음에 드리웠던 먹구름도 사라지니 우리가 자비로운 하나님을 직접 뵙게 됩니다. 이제 우리 앞의 모든 문제는 나의 전리품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힘든 상황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께 찬양을 드리시어 약속된 복을 받고 최후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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