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15편) : 하나님의 백성의 삶

stevision 2012. 11. 25. 13:52

 

(2007년 4월 7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의 백성의 삶                                               English
말씀: 시15편

  

 

 >>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하지 아니하며 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 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

구약은 신약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약의 “예수님을 믿어야만 영생을 얻는다”라는 말씀에 의거하여 예수님 오시기 전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다 죽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면 맞는 말일까요?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하는 분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지요.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의로운 자로 인정해주시면 거기에 구원과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에 근거하여 죄용서와 의롭다 인정받는 제도와 절차가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복음에 근거하여, 즉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와 우리의 믿음에 근거하여 죄용서와 의인(義認)이 있게 됩니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 한 개인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선물입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어느 한 사람이 율법 하나를 어기고 미처 그 문제에 대한 죄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그때까지의 모든 친밀한 관계를 싹 무시하고 그 자를 지옥에 던지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수보다 인간의 사랑스러운 면을 더 보시고, 인간의 사소한 죄보다 인간이 그분께 드린 찬송과 감사를 더 마음속 깊이 새기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에도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령과 함께 공동으로 인간들을 대하고 계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매우 가혹하셨던 성자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갑자기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지요. 성자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만큼이나 구약시대에도 자비로우신 분이셨습니다. 또 성부께서는 엄하신 하나님이시고 성자께서는 무한히 자비로우신 분이실까요? 그게 아니지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동일한 신적 본성을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부께서는 인간들을 사랑하시어 독생자 성자 하나님을 인간들에게 속죄제물로 주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삼위의 사랑과 자비는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구약 시대의 죄사함 교리는 신약 시대의 복음에 비해 가혹할 정도로 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약시대의 구원이 개인적 차원이 강해 각자의 믿음과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해 구원받지만, 구약시대의 구원은 공동체적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 번 속죄일을 두어 온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여 온 이스라엘이 죄에서 씻음받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가장이 가족들의 서원기도에 대해 가부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극악한 죄인이 아닌 이상 구약시대 이스라엘 나라 안에서 신앙공동체 생활을 하거나 이스라엘 안에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 하나님을 믿는 가장과 함께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 안에서 사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를 버리시지 않으셨거나 한 가족 전체를 버리시지 않으신 이상 그 안에 사는 자들은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 기억력이 부족하여 미처 고백하지 못해 사함받지 못한 죄가 있었더라도 영생을 얻은 자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안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영생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행위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은혜의 시대인 지금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신앙덕목입니다. “주의 장막에 유하고 주의 성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지 다윗은 우리에게 간략하고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 거짓을 멀리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2절).” 거짓말은 마귀의 자녀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거짓말을 잘 하면 정말로 사람이 가벼워 보이고, 여자가 거짓말을 잘 하면 욕심이 많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정직한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신자들이 정직할 때에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십니다. 신자들이 거짓말을 잘 할 때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와 하나님을 얕잡아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송을 정직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거짓말을 멀리하는 자는 양심이 깨끗해져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을 갖고 삽니다. 거짓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거짓된 혀는 온 몸을 더럽게 만듭니다. 거짓된 혀는 양심을 항상 찌르며, 인격에 불명예를 가져다 줍니다. 거짓된 혀로 사는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송을 무효로 만듭니다. 하나님을 역겨우시게 만듭니다.

2.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하지 아니하며(3절).” 거짓된 혀로 남을 비방하며 돌아다니면 못씁니다. 다른 자가 신앙적으로 그릇된 길을 가고 있다면 먼저 그 자에게 개인적으로 권면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회나 신앙 공동체에 해로운 일을 하는 자들을 다뤄야 하겠지요. 거짓이 아닌 사실에 관한 말이라도 가급적 동네방네 소문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덮어주며 행동을 고치도록 지도를 해야하겠지요. 하물며 거짓말을 꾸며 타인을 비방하고 돌아다니면 정말 큰 죄입니다. 힘 좀 있다고 이웃을 해치거나 이웃에게 심각한 명예훼손을 끼치는 것은 하나님 백성이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이런 은혜롭지 못한 행위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13:4, 5).”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에게 해로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 분을 믿음의 눈으로 분명히 보며 대면하고 있는 자는 거짓이 싫고 이웃을 해치려는 짓 따위가 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는 거짓의 부스러기조차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가 정말로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게 바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을 마음에 모신 자는 새빨간 거짓말은 물론이고 새하얀 거짓말에도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이웃도 사랑하며 이웃에게 해로운 짓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남이 잘 되고 남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을 보며 잔잔한 기쁨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지나가는 개를 보면서도 그것에게 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공경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마땅히 이런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고 우리에게 축복하는 자를 복주시기” 때문입니다. “너(아브라함)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남편에게 욕하는 자를 경멸하고 남편에게 잘 대해주는 자를 존경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 보면 남편이 뼈빠지게 벌어온 돈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면서도 남들 앞에서 자기 남편 헐뜯는 이상한 여자들이 있습니다. 배은망덕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비하하고 하나님을 향해 더러운 소리 내뱉는 자들을 마음속 깊이 공경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특히 하나님의 종들에게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마십시오. 이 점에 있어서는 성직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전에 저는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서 자기 친구 장로님의 머리카락을 쥐고 장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안되지요. 평신도 고위직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직입니다. 존중해 줘야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으로부터 영생의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 대해주는 자에게 잘 대해주시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자를 벌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를 경멸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경솔한 언행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한 언행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솔한 언행 중에는 경솔한 맹세도 포함됩니다. “하나님 제가 앞으로 ...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앞으로 ....한 일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만약 저의 이 소원을 이뤄주신다면 제가 앞으로 ...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지도 않으셨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맹세를 하고 나 몰라라 하며 입을 싹 닦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바른 신앙은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오늘 말씀은 “그 마음에 서원(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4절)”라고 엄히 말합니다. 보통 요즘의 경우 하나님께 하는 맹세는 집단적인 헌신이 필요할 때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교회 건축 때 그런 경우가 발생하겠지요. 그런데 많은 경우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분에 넘치는 헌신을 맹세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자도 잘못이고 분에 넘치는 거짓 맹세를 한 자도 잘못입니다. 교회 건축하기 위해 교회 빚보증 섰다가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리하게 교회를 크게 짓고 확장시키려는 욕심을 이제는 정말 버려야 합니다.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자취를 감출 때 만용과 조급함과 욕심이 나와서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좋은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나 나쁜 열매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단 한 맹세는 자기에게 해가 될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 경제가 파탄나고 가정이 깨져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낳는 약속 이행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사사 입다의 경우 자기 딸을 번제로 드리긴 했지만,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 이후의 사람들이 경솔하게 하나님께 맹세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런 약속을 이행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저는 경솔한 맹세를 불이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용서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급적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맹세하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고, 혹시 정말 사정이 안되어 이행을 못하면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맹세와 관련하여 덧붙여 말하자면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맹세대로 번제물이 되어 죽을 의무가 없었습니다. 입다가 자신의 호기로 건방지게 타인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한 맹세는 원천무효입니다. 왜냐하면 입다의 딸은 타인의 일방적인 맹세에 의해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입다의 딸이 효녀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하나님께 경솔한 맹세를 한 것으로 큰 벌을 받을까봐,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경솔한 맹세의 폐해를 후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입다처럼 망령된 맹세를 하면 하나님께 죄없다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하면 벌받을 걱정이 없습니다.

4. 하나님의 백성은 성실히 일해 벌어먹고 삽니다.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5절).”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끼리 돈이자 놀이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뇌물을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곧 성실히 일해 거기서 나온 것을 감사히 여기며 분수껏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고리대금은 도적질과 같고, 이는 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에 횡행하는 사악한 경제행위가 바로 부동산 투기와 주가 조작 그리고 공수표 남발입니다. 이런 더러운 도둑질을 기독교인들도 거들고 있으니 한탄할 일입니다. 그렇게 도둑질해서 번 돈으로 교회 세우고 교역자들에게 사례비 주면 보기 좋습니까? 마귀가 얼마나 박장대소하겠습니까? 얼떨결에 사놓은 땅이 값이 급등하는 거야 크게 나무랄 바는 못되지요. 그러나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 근래 하나님의 종들이 정말 바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 이 성실히 일해 벌어먹는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끼리 돈 이자를 받지 말고, 뇌물을 주거나 받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가진 자의 경제윤리를 강조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가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요즘은 정당하게 적정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고리대금은 정말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 왕이 여러 사람들을 대하며 느낀 바를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이 위와 같은 신앙덕목을 가진 자였기에 쓸 수 있는 글이지요. 왕의 입장에서 다윗은 간사한 인격과 남을 잘 해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정말 보기 싫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보기에 하나님은 온 세상의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위와 같이 바르게 행동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 자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르고 정직한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받으시고 여러분께 풍성한 복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