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7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예수의 몸 English
말씀: 요2:13-22
>> ...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
왜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성전을 허는 것으로 표현하셨을까요?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오셨는데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당신이 뭔데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는 거야? 그 사람들이 장사가 목적이어서 이곳에서 장사하는 줄 아나? 그 사람들도 다 성전의 일꾼들이야. 먼 데에서 온 자들에게 제물로 쓸 가축을 파는 것도 잘못인가? 또 하나님께 드릴 헌금은 로마 돈으로 내면 안되잖아? 거룩한 헌금을 로마 황제 얼굴이 새겨진 돈으로 내야겠어? 그러면 안되지? 그래서 성전에서 쓸 돈을 바꿔주는 거야. 뭐가 잘못되었어? 그건 그렇고 대제사장께서도 다 허락한 일인데 당신이 뭔데 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거야? 당신 무슨 권한으로 이 짓을 하는지 그 허가증 좀 보여줘봐. 하나님께 받은 허가증 없으면 당신이 이래도 되는 사람인지 무슨 기적(표적) 좀 보여줘봐. 그러면 우리가 믿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요구에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였고 예수께서는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당신께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 일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합법적인 행동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기에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성전을 헐고 있었습니다. 성전에는 올바른 성직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성전에는 올바른 성직자가 없었습니다. 올바른 성직자는 성전을 성전답게 만드는 자입니다. 성전을 세상 것들로 채우면 안됩니다. 제사장은 털실로 만든 옷을 입고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고운 베옷이라는 말이지요. 따뜻한 털실 옷을 입으면 땀이 나서 땀냄새를 풍기게 되어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전은 인간의 냄새를 풍기면 안 되는 곳입니다. 돈 냄새, 권력 냄새, 이권 다툼 냄새, 싸움에서 나오는 피 냄새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인간의 땀냄새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땀냄새는 예배드리러 성전에 오는 자들의 귀와 눈을 빼앗고, 성전을 세상적 삶의 연장이 되게 합니다. 세상에서 살며 지은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리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땀냄새가 배어 있는 성전은 인간들에게 죄를 덧입혀 줄뿐입니다.
그러니까 성직 쟁탈을 벌이거나, 돈으로 성직을 사고 팔거나, 성직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거나, 성직자가 정치권력에 아부하여 안정적인 일신의 영달을 꾀하거나 하면 이런 성직자는 성전을 헐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직자들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유가 그럴 듯 해도 성전 안에서 제물장사나 환전업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사 드리려는 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성전을 시장터로 만드는 것은 성전을 허는 행위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로서 성전을 정화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종일 뿐입니다. 종이 직무를 유기하여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고 성전을 망가뜨려 놨으니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사람들을 올바로 가르치신 것이지요. 예수께서는 성전이 바로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도 기도하는 곳이고 일반 백성도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성전다워야 그곳에서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성직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앙에 모범을 보이고 예수님의 종으로서 양들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보살피는 곳, 그리고 그윽한 사랑의 향기 외에는 다른 일체의 인간들의 땀냄새가 풍기지 않는 곳이 바로 하나님과 인간들이 보기에 좋은 성전입니다. 지나가며 성전을 볼 때 탐욕스런 목회자 대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치는 청렴하고 고매한 인품의 성직자가 생각나는 성전, 시장터의 소란함 대신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찬송과 감사의 기도 소리만 들리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문제는 성직자입니다. 성직자들은 하나님께서 제사드릴 때 털옷을 입지말고 세마포 옷을 입으라 하신 뜻을 잘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직자의 첫째 덕목은 바로 “청렴”입니다. 성직자는 청렴을 입고 사는 자입니다. 제사장의 옷은 바로 청렴입니다. 성직자가 이 청렴이라는 제복을 잃어버리면 그 때부터 성전을 파괴하는 자가 됩니다. 천막으로 된 예배장소라도 그 곳에 청렴한 성직자가 있으면 거기에 바로 거룩한 성전이 세워져 있는 것이고, 아무리 금으로 덧씌워 놓은 휘황찬란한 솔로몬 성전과 같은 성전이 있더라도 그 안에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성직자가 자리잡고 있으면 그 곳에는 마귀의 처소가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제복에 있는 귀한 보석 장식은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을 향한 그분의 은총과 자비 그리고 사랑을 나타내줍니다. 그것은 결코 성직자의 탐욕스런 사치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성직자는 위로부터 임하는 영광으로 덧입어야지 땅의 산물로 치장하려 하면 안됩니다. 지금 대궐에 살고 있는 왕과 경쟁하자는 겁니까? 물론 지금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성직자들께서는 세마포를 입고 계십니다. 세마포를 벗고 양털로 짠 옷을 입으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마음을 모질게 고쳐먹어도, 시작할 때 아무리 선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주위 환경이 그 자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완전한 성직자는 없습니다. 완전한 성전은 없습니다. 인간들이 성직을 맡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성전을 허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왕권까지 가지신 대제사장으로 등극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거룩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5:5-6).” 성경은 예수의 죽음을 인간의 죄사함을 위한 속죄제물로서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3-14).”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인간은 연약하여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어 성직자라 할지라도 많은 위험과 시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사이래 많은 자들에 의해 성전이 헐렸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지금까지 더럽혀진 옛 성전을 다 허시고 새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옛 성전에서는 유대교 성직자인 제사장이 있었으나 새 성전에는 영원한 대제사장인 예수께서 계십니다. 어떻게 옛 성전이 헐리게 되었습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임으로 옛 성전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간판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주인을 죽인 종이 이전처럼 주인의 종입니까? 그럴 수 없지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했던 자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 하나님을 죽이고 나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도록 임명된 제사장들이 자기들이 섬기고 있던 하나님을 죽여놓고(그들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인성을 죽였다는 말이지요) 여전히 하나님의 성직자입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그들이 예수를 죽인 이상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직자가 아니었고, 그들이 성직을 박탈당한 이상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었던 것이고, 이로써 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게 한 이상 그들의 성전은 허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유대인들의 성전이 바로 예수의 몸은 아닌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예수를 시기하여 죽였고, 그 결과로 그들의 성전이 헐린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오염되고 무너진 옛 성전을 폐하시고 본래의 취지에 맞는 새 성전을 세우신 것입니다. 즉 본래의 하나님 종교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성전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지 3일째 되던 날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졌습니다. 이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신 거룩한 자들의 거룩한 모임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6:15).”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4:25).”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5:23).”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각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교회의) 머리이시라고 말합니다. 유대교를 폐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옛 몸을 허무신 것이고, 그분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과 함께 자신의 새 몸을 세우신 것입니다. 교회의 탄생일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입니다. 따라서 부활절이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날에 교회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유대교 성전을 기웃거렸던 예수의 제자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부활주일과 함께 기독교인이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중단없는 교회 갱신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잠자고,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부활절 전야에 채찍을 들고 계신 예수님을 대하는 수가 있습니다. “너는 왜 내 몸(성전, 교회)을 헐고 있느냐?” “너는 왜 내 몸을 허는 자들을 방치하고 있느냐?” “너의 무관심과 직무유기가 십자가의 대못보다 더 나를 아프게 찌르는구나!”
예수께서 우리를 그분의 지체로 세우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보통 인간들과 똑같은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의 지체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서 겪는 각자의 십자가를 견뎌내야 합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8).” 이 십자가는 결단코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큰 상을 주시기 위해 부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예수와 함께 지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십자가 없이 부활과 영생을 누리려는 자는 예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자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 대한 그분의 진정한 사랑을 우리가 확인했다면 우리도 그분을 위해 작은 십자가를 지는 것도 과히 나쁜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한 작은 십자가를 질 때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오시어 우리와 함께 그 십자가를 져 주십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허용하시는 십자가라면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하신 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질 능력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다 죽은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까지 주시어 영원히 살게 해주십니다. 이 영생의 능력은 이미 예수 자신께서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도 그분처럼 부활하여 그분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다음에 부활이라는 영원한 승리가 있습니다. 옛 성전을 허문 다음에야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님으로 믿어 옛날의 부끄러운 삶을 다 버리고 새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영생을 누릴 자들로 변화됩니다. 부활과 영생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옛 사람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시어 성전의 기둥과 같은 자들이 되시고 영생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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