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창38장) : 죄의 유혹을 극복함

stevision 2012. 11. 26. 07:57

 

(2007년 4월 28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죄의 유혹을 극복함                                            English
말씀: 창38장

  

 

 >> ...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 24 석달 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

옛날 이스라엘에는 좀 이상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형이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자식을 낳아 그 형의 대를 잇게 했습니다. 형수로부터 아들을 낳아 형의 대를 잇게 하고 형이 받은 유산을 그 아이가 차지하게 하고 그 후에 자기도 자식을 낳아 자기 후손을 삼았던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했는데 남편의 자식을 갖지 못한 채 남편이 죽으면 매우 불안정한 신분을 갖게 되어 그 여인에게 안정된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그 여인과 그 여인의 재산을 계속 가문 안에 머물러있게 하려고 그런 풍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상적으로 남편 만나 정상적으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큰 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그런 복을 누리는 자들은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 아들 엘과 오난과 셀라를 얻었습니다. 유다가 엘을 위해 가나안 여인 다말을 택하여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장자 엘이 하나님께 죄를 짓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십니다. 이에 유다는 맏며느리를 차남 오난에게 줍니다. 그러나 이 차남이 형수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정액은 땅에다 쏟는 거였습니다. 자기 자식이 죽은 형의 아들로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오난도 죽이십니다. 그러자 유다는 고민에 빠집니다. ‘저 며늘아기를 셋째에게 줬다가 또 ....어이쿠! 그러면 안되지.’ 유다는 며느리에게 친정에 가서 수절하고 살다가 셋째 아들이 장성하면 다시 불러 결혼시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에 다말은 친정에 가 있었고, 그 사이 유다의 아내는 죽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적적했던 유다가 육욕을 채워줄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고, 며느리 다말은 시동생이 다 컸는데도 유다가 자기를 다시 불러들여 결혼을 안시켜준 것에 불쾌해 하고 있었습니다. 다말이 시아버지가 가까운 곳에 와 있다는 말을 듣고 과부의 옷을 벗어버리고 창녀의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고 시아버지가 다니는 길가에 있었습니다. 유다가 그녀를 창녀로 알고 값을 흥정하고 성교를 했고, 후에 와서 값을 치르겠다는 증표를 줬습니다. 이 여자는 그 후에 과부 옷을 다시 걸치고 집에 와서 지냈습니다. 유다가 사람을 보내 값을 치르고 담보물을 되찾으려 했으나 이미 집에 가 있던 다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에 사람들이 유다의 며느리가 음행을 하여 애를 뱄다고 하니 유다가 며느리를 끌어내 불살라 죽이려 할 때 다말이 그 유다가 줬던 담보물을 유다에게 보이니 유다가 그녀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고 첫째 아들 베레스가 바로 다윗의 조상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여러분,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육체관계는 인류의 대표적 불륜에 속하는 죄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유다의 집안에 저런 끔찍한 불륜사건이 발생했는지 알아보고 미리 조심해서 그런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가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또 가나안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한 것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아버지 야곱의 집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한 아내를 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집안 여자들이 다 가까운 친척이니, 그리고 무엇보다 유다 자신의 세대에 자기 아버지 집안 안에서 아내를 구한다는 것은 좀 무리일 듯 싶습니다. 당시에 아무리 근친 결혼이 용인되었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방족속의 여인을 아내나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그것이 집안에 죄를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유다의 형편에서 볼 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고 가나안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한 것은 그리 큰 흠은 아닐 듯 싶습니다.

유다 집안의 죄의 출발은 유다의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유다는 첫째와 둘째 아들을 잃고 나서 셋째까지도 잃을 것이 겁이 나서 며느리와 셋째 아들의 결합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까지 친정에서 수치스런 과부 옷을 걸치고 있으란 말입니까? 늙어 죽을 때까지? 유다는 첫째와 둘째가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죽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며느리에게 재수없는 기운이 도사리고 있어서 자기 두 아들이 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죄없는 며느리를 은근히 죄인 취급한 것이 큰 잘못입니다. 유다가 두 아들의 죄를 인정했다면 며느리에게 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잘 대해줬을 것입니다. 자기 두 아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을 인정했다면 막내아들이 무조건 죽을 거란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막내가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기만 하면 그가 형수와 같이 살아도 장수하며 잘만 살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것을 망각하고 유다가 미신에 빠져 며느리에게 몹쓸 짓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되는 불행이 있었다고 미신에 빠지면 안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마귀가 거듭되는 불행이나 거듭되는 행운이 있게 하여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케 하여 미신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거듭되는 불행이 있다고 해서 그 불행에 마음을 굴복시켜도 안되고, 거듭되는 행운이 있다고 그 행운을 주는 자를 주인으로 섬기면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운이라면 더욱 그분께 감사드려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이라면 즉시 자신의 삶을 반성해야 하겠지요. 여러분, 미신에 빠져 죄없는 자를 죄인취급하고 죄없는 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 큰 죄입니다. 유다가 빠졌던 죄가 바로 이것입니다.

보복하려다 죄를 짓는 수가 있습니다. 다말은 자신이 친정으로 쫓겨나 과부 옷을 걸치고 사는 게 분했습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을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옛날 그쪽 지방에는 아들이 죽으면 아버지가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에는 그런 게 없었고 주위 미개한 종족들이 그런 짓을 했지요. 다말이 이방여자였기 때문에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짓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정말 불신앙적인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자들이 범하는 죄를 자기도 지며 애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기독교인은 빛과 소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 그들에게 참진리와 정의를 가르쳐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자가 세상의 죄에 참여하여 세상을 더 썩게 만들며 어쩌자는 겁니까? 세상 사람들이야 하나님의 법을 잘 모르고서 죄를 지었다지만 기독교인이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지으면 더 큰 벌을 받을 게 뻔한 것 아닙니까? 부자로 사는 세상 친구들이 애첩을 두고 산다고 당신도 덩달아 그러면 안되지요. 친구들이 부동산 투기해서 떼돈 벌었다고 당신도 그런 날강도짓에 합세하면 안되지요. 다말은 자라나며 배운 몹쓸 이방 풍속을 실행에 옮겨 이스라엘인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습니다. 작정을 하고 속여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정당방위까지는 가능하지만 죄를 지면서까지 보복을 하면 안됩니다. 대체로 현행범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해서 자신과 가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보복이라는 말은 생소한 것입니다. 현행범이 아닌 경우의 범법자에 대한 처벌은 국가의 공권력이나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말이 시아버지의 처사가 맘에 안들어 그를 속여 그와 관계를 맺은 것이 하나님께 큰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고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그분께서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억울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따라서 제멋대로 보복을 하는 자는 자기의 권리도 찾을 수 없고 죄만 쌓게 되니 믿음도 없고 어리석기도 한 자이지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면 죄를 짓기 쉽습니다.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어버리고 창녀의 옷을 입고 창녀답게 행동했습니다. 과부의 옷을 입고 창녀노릇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신분을 잊을 때, 우리가 이 신분을 사람들에게 감출 때 우리는 쉽게 죄에 빠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고 모든 악한 것들을 다 물리쳐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세상사람처럼 행동하면 성령께서도 떠나 계시고 자신의 마음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되어 쉽게 죄의 권세에 굴복하게 됩니다. 여러분, 항상 기독교인이라는 이름표를 꼭 달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유혹에 넘어가도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죄인이 안되었습니까? 어브 코스 노! 여러분, 유다가 며느리의 계략에 넘어가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고 죄인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한 큰 죄인입니다. 물론 이 경우 며느리의 죄가 2라면 유다는 1정도 되겠지요.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를 결코 경히 보시지 않습니다. 유다가 타인의 계략에 의해 죄를 짓지 않으려 맘먹었는데도 얼떨결에 결과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요. 예를 들어 롯의 두 딸이 아비에게 술을 잔뜩 먹여놓고 못된 짓을 했는데 이 경우 롯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유다는 술을 먹지도 않았고, 맨 정신으로 창녀(로 위장한 며느리)와 화대를 흥정하고 성교를 했습니다. 결혼 범위 밖의 모든 성행위는 범죄입니다.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그렇게 불법으로 성행위를 해서 에이즈에 걸리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고, 성병에 걸리면 병원신세를 져야 하고, 그 상대가 이웃집 아녀자라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유다의 경우 불법 성행위를 해서 결과적으로 며느리와 관계를 맺게 되었으므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불륜에 대한 죗값을 다 치러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반드시 죽으리라 한 하나님의 경고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그 벌을 다 받았습니다. 유다가 잠시 욕정을 채우려 창녀를 찾아가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것처럼 그냥 잠시 부담없이 즐겼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에 그의 비행을 다 기록하시어 거룩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의 행위를 다 알리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도 세상의 왕들이 다 하듯 남의 아내를 잠시 갖고 놀다가 그 또한 성경에 그 비행이 낱낱이 기록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거듭 말씀드립니다. 남이 한다고 따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세상에는 다말처럼 작심하고 남을 유혹하여 함께 죄를 지으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인은 한순간이라도 방심하여 그런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으면 안됩니다. 그 결과가 크든지 작든지 간에 자신이 다 책임져야 합니다. 요즘 얼마나 성적으로 유혹하는 자들이 많습니까? 여러분, 남이 한다고 따라하지 마십시오. 유혹한다고 대충 속아주는 척하면서 함께 즐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세상에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돌아다니고 있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혹한다고 넘어가주면 당신은 변명할 처지가 못됩니다.

정말로 웃기는 일은 유다가 자기 며느리가 바람피워 애를 뱄다는 소리를 듣고 당장 찾아가 끌어내 불사르려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이중잣대를 갖고 세상을 삽니다. 자기가 창녀들을 찾아다녔다면 똑같은 인간인 며느리도 바람을 피웠으려니 해야지요. 자기는 창녀 찾아다녀도 되고 며느리는 수절을 해야만 해? 혹시 조강지처 놔두고 바람을 피운 경험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혹시 아내가 홧김에 맞바람을 피웠더라도 너무 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흔쾌히 용서하시고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생 피차 참 불쌍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내나 남편이나 서로에 대해 신의를 지켜 절대 한눈 같은 것 팔면 안됩니다.

유다는 며느리가 자기를 속여 관계를 맺어 애를 밴 것을 알고 기절초풍합니다. 유다는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며느리를 죽이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낳은 자식이 쌍둥이였고 장남 베레스는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말이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고 해서 그녀와 시아버지의 죄를 절대 미화하면 안됩니다. 다말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사람이 존귀한 위치에 오를 때 반드시 자격 검증이 선행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자들은 인사청문회가 두려워 고위직을 사양하기도 합니다. 귀한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나 검증을 받을 때 애첩이나 사생아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면 정말 곤란하거든요. 성경에 이름이 나온 자들 중에 유다보다 더한 죄를 지은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비리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다윗의 조상이었고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의 조상이었으므로 성경은 공평하게 그의 실수를 기록해 놓았던 것입니다. 유다의 저런 실수를 눈감아주고 유다가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영광스런 사실만 기록해 놓았다면 성경이 얼마나 불공평한 책입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젊어서부터 몸과 마음을 잘 단속하여 실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정정당당하게 큰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중에 혹시 국무총리로 지명 받으시면 굳이 사양 마시고 인사청문회에 꼭 나가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이 남이 유혹한다고 거기에 넘어가 죄를 지으면 그 본래의 죗값에다 미련하게 유혹에 넘어간 죄까지 더해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어리석은 기독교인에게 절대 변명 같은 것을 허용 안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기독교인 모두는 항상 더러운 생각과 음란한 생각을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만족해하며 감사히 여기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고, 항상 기도에 힘쓰고 성령충만함을 받아 모든 유혹을 물리쳐 요셉과 같이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깨끗한 삶을 사시어 하나님께 사랑받으시고 사람들에게 존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