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9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림 English
말씀: 살전4:1-8
>> 1 ...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을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정말 하나님의 영(靈)이 인간에게 임하지 않으면 인간은 남이 안보는 데에서는 지능지수 높은 짐승과도 같은 짓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나이와 학식에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소위 인텔리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스와핑을 즐긴 것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설명합니까? 지능지수 높은 짐승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말로 귀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자신도 좋고 이웃도 좋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함의 선물을 가장 빨리 훼손시킬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바로 음란함입니다. 사도 바울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이 바로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말한 즉시 ‘곧 음란을 버리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거룩과 음란은 상호 배타적입니다. 여러분, 음란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특히 마음의 음란도 나쁜 것이지만 육체를 음란하게 사용하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사악한 마음을 갖고 있던 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쳐 거룩한 마음을 가지면 그 자는 실제로 거룩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음행을 했던 자는 존재적으로 거룩성을 잃은 자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그 더러움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음행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악을 끼칩니다. 처녀성을 잃은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다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 다른 남자가 뼈빠지게 일해 그 여자를 먹여살리며 그 더럽혀진 여자의 육체를 사랑해줘야 한다는 게 슬픈 일이지 않습니까? 이 여자가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다고 합시다. 그 아이는 다른 아저씨에게 더럽혀진 엄마의 유방을 빨게되니 참으로 원통하고도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이 여자가 시집가서 아무리 정신수양을 하고 예수님 믿어 교회에 나가서 경건하게 기도하며 마음 수양을 한들 자신의 더러움이 씻겨지나요? (물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죄 용서 받으면 음행의 죄는 말끔히 씻겨집니다. 그렇지만 그 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이가 더럽혀진 제 어미의 젖을 빨게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이 점에 있어서는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복잡한 인간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청소년의 성(性)문제를 고려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남녀의 혼전순결’을 빼먹은 성교육은 정말로 영양가 없는 교육입니다. 성기 구조 알려주고, 피임법 알려주는 게 성교육입니까? 건전한 성교육에는 ‘혼전순결’ 뿐만 아니라 ‘변태성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쳐 줘야 합니다. 동성간의 말할 수 없는 더러운 교접행위를 한 몸뚱이로 남의 집에 시집이나 장가가는 것은 정말 인간이 해서는 안될 짓입니다. 이처럼 이성과의 음행과 동성간의 변태행위는 거룩함과 상극 관계에 있습니다.
성경은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 알고(4절)”라고 말합니다. 아내를 더러운 여자로 여기며 그녀를 성행위 도구 정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마음에 아내를 나쁜 여자로 생각하며 아내와 잠자리를 나누면 안됩니다. 아내를 고맙게 여기지 않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녀를 취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여기는 가운데 아내를 사랑하고 그 아내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잠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머리에 남편을 무시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데 당신 남편이 당신을 가슴에 품어주면 공평한 것입니까? 당신의 입술로 남편 욕을 하고 다니며 남편에게 입맞춤 받고 싶으시나요? 부부가 서로 사랑과 존경을 하지 않으며 잠자리를 갖는 것이 얼마나 보기 흉한 일입니까?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모습을 싫어하십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성을 통해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거룩이라 함은 음행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을 귀하고 거룩한 자라고 생각하며 대하는 삶도 포함되는군요. 그렇습니다. 거룩한 자는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타인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참 좋은 아이라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지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을 얕보고 더러운 자로 일방적으로 생각해버리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여러분이 일방적으로 나쁘게 생각하고 있는 그 자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좋은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사람으로 생각할 때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아울러 우리는 타인의 거룩을 훼손시키면 안됩니다. 타인을 생각하며 음란한 상상을 하면 죄입니다. 타인의 정조를 유린하면 안됩니다. 타인에게 음담패설이나 욕설을 퍼부어 그 자의 호수와 같은 잔잔한 마음을 광풍이 휘몰아치는 사나운 바다가 되게 하면 안됩니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더러운 기억이 마음속 깊이 새겨지게 만들면 안됩니다. 그것이 정신병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인격을 파괴시켜 일평생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항상 타인을 대할 때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서 그자들 안에 아름답고 거룩한 성품이 형성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고 타인의 거룩함을 증진시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5절).” 우리 기독교인이 색욕을 추구하는 삶을 살면 이방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색욕을 좇는 자들이 아니라 공공의 거룩함을 좇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제발 남에게 유익한 자가 되십시오. 절대 형제를 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6절).” 여러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삶을 살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해야 할 곳에서 떠드는 것은 공공질서를 모르는 자입니다. 타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점잖게 말을 하면 자신의 입장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아 즉시 시정해야 합니다. 대부분 자신의 입장을 계속 우기며 큰소리 치다가 주먹이 오갑니다. 문화인이 그렇게 몰지각한 행동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남이 싫어하는 일은 안 해야 합니다. 특히 남의 가정을 파괴하지 마십시오. 가정은 에덴동산입니다. 마귀가 에덴동산에 침입하여 행복을 파괴했습니다. 서로 원수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성범죄로 타인의 가정을 파괴하는 자들은 다 마귀의 종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그분께서는 악행을 보복하시는 분이시며, 피해 당사자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없는 아내를 버리는 것은 살인행위 못지 않은 큰 죄입니다. 얼굴 조금 예쁘게 생긴 것을 수단 삼아 유부남 직장 상사에게 접근하여 본부인 버리게 하고 자기가 그 자리 차지하는 사악한 여자들은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뜨거운 맛을 볼 것입니다. 남편이 성불구가 되었다고 다른 사내를 통해 욕정을 채우는 여자들도 불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정말 엉망입니다. 미국은 강간하면 20년 정도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도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지 지나가는 여자 끌고가 강간한 인간에게 초범이고 우발적 사건이라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합니다. 이게 뭡니까?
영세상인들의 고혈(膏血)을 착취하는 조폭들은 언제 없어질는지 정말로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10년이 지나도록 사형집행을 보류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흉악범들은 선량한 국민의 사무친 원한을 묵살하면서까지 살려둘 가치가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행을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성직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교회 내의 선량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하고, 정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량한 백성들의 원한을 속 시원히 풀어줘야 합니다. 감옥에서 종신토록 사는 것 것보다 자신의 죄에 대한 지엄한 책임을 지고 사형당하는 것이 더 값진 삶입니다. 그렇게 사형당함으로 다른 자들에게 경고가 되어 그들이 섣불리 인명경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됩니다. 좀 더 공평한 형벌은 사형집행을 피해자 가족이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설교가 뭐 이래’라고 말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저는 솔직히 말씀드려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밟아 죽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물론 해충이 집안에 돌아다니면 가차없이 처단을 하긴 합니다. 뭐랄까요, 저는 온 세상이 서로 돕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고의로 타인을 해하는 자를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더러운 욕심을 채우는 자들의 이기적인 자기 변명이나 정당화 혹은 합리화를 저는 정말 싫어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정말로 귀한 보배를 마음에 지녔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께서 안 계셨다면 우리는 텅 빈 인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놀리면 속 시원히 욕으로 대꾸해 줬을 것이고, 비밀이 지켜질 수 있다면 유부녀와도 정을 통했을 것이고, 돈주고 청소년들의 성을 샀을 것이고, 사기 쳐서 한 몫 잡은 다음에 잠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면 주먹으로 상대방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7절).” 우리는 절대로 막가는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막가는 삶으로 몸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성전 삼아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원망과 눈물로 우리의 옷을 삼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옷이 아니라 더러운 옷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혼식에 참가할 신부의 정결한 복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4,5).”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이게 하라(계3:18).”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3,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
‘거룩한 흰 옷’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분이시기에 우리가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하고, 예수께서 정결한 신부를 원하시기에 우리가 흰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옷이 죄로 얼룩져 있다면 예수님의 보혈로 단숨에 깨끗이 빨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룩하고 깨끗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 영생을 주신 그분의 한없는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야 합니다. 거룩은 능력입니다. 악한 마귀가 거룩한 자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거룩은 은혜의 통로입니다. 거룩한 자에게 하늘의 복이 임합니다. 거룩은 우리의 향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취는 예수의 신부들이 내품은 거룩한 향기입니다. 거룩한 언어, 거룩한 행동, 이것들보다 더 귀한 향기가 있나요? 옛날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소나 양을 잡아 불살라 바치는 번제물의 타는 냄새를 흠향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냄새가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감사, 거룩한 찬양, 거룩한 봉사, 거룩한 섬김, 거룩한 사랑, 거룩한 의로운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이는 살아있는 제물에서 나오는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
여러분께서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기원하며,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들이 되어 한없는 복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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