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20편) :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

stevision 2012. 11. 26. 08:06

 

(2007년 5월 12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                                                 English
말씀: 시20편

 

 

 >>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 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 <<

보통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한 인간에게 장래의 약속을 주시며 죄악된 세상에서 불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하는 집안에서 성장한 아브라함을 75세의 나이에 불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시고서 그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은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치려 할 때 이삭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은 약한 자를 택하시어 강한 자로 만들어 승리와 성공을 쟁취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장자 에서를 택하지 않으시고 차남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에서는 칼과 활의 사나이였고 야곱은 죽 끓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더 강했겠습니까?

야곱은 형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하란에 있는 외삼촌댁으로 도망갑니다. 도중에 그는 들에서 잠을 잤는데 꿈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28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광경이 나옵니다. 야곱이 돌을 베개삼아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보십시오.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약자의 위치에 있던 야곱을 택하셔서 반드시 인생 성공할 때까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약한 자에게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바로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야곱인지라 자신의 범상치 않은 꿈을 그냥 무시해버리지 않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받은 축복을 되새기며 자기가 만난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표시로 그는 즉시 약식 예배를 드립니다. 베개였던 돌을 세워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오늘 시편 20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러고 보면 야곱과 다윗은 참으로 닮은 점이 많군요. 다윗도 약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쟁쟁한 형들이 여럿 있었는데 다윗도 형들의 그늘에 가려 집안에서 생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야곱처럼 집에서 나와 산전수전 다 겪은 후에 왕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하나님은 바로 야곱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1절).” 야곱이나 다윗처럼 도와주는 사람 없고 광야 같은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힘든 생을 사시는 분 계십니까? 야곱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여러분의 것으로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7절).” 야곱의 형 에서는 세상적 재능으로 자신을 과시하며 스스로 살려고 했으나 야곱은 자신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을 생각했고 그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기어코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물려받았던 것입니다. 장자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 생각에 자기 정도 능력있는 사람이면 대충 살아도 천하를 다 얻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에서의 태도는 다윗의 정적 사울이 그대로 본받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종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왕노릇하기를 힘썼던 자입니다. 이와 반대로 다윗은 본문 시편 20편 전체가 말해주듯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은 복을 주시려고 마음먹으셔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거절하면 그 복은 여러분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야곱은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종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믿고 따르는 자의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여러분 거룩한 큰 꿈을 품으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 꿈을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뼈있는 말씀을 저 말씀 뒤에 바로 이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께 적용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인생 성공하기 바라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대접받고자 원하면 우리도 그분을 융숭히 대접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융숭하다는 게 별 것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온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대접해 드리면 그게 바로 융숭한 대접이 됩니다. 야곱은 돌멩이에다가 기름 조금 붓고서 하나님을 대접해 드렸습니다. 사실 돈 가치로 치자면 별 것 아니었지요. 야곱은 후에 자기 재산이 생겼을 때 소득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분을 경배했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떠했나요? 다윗은 수많은 시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게 바로 융숭한 대접이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지을 때면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게 무슨 융숭한 대접이냐는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만 교만한 자가 천 마리 소를 잡아 바치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보다, 사정상 단 한 마리의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수 없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와 죄의 용서를 곁들인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더 기뻐 받으십니다. 눈물로 죄를 회개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또한 하나님께 용서받은 그 자가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답습니까? 아름다움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기뻐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진실한 기도가 하나님께 융숭한 대접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뉘우침이 없는 번제물은 하나님께 역겨운 것입니다.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 가운데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3절).”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가지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야곱이 되어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드리며 순종하십시오. 야곱이 아닌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까? 야곱과 다윗은 환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을 섬겼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평소에 그분을 융숭히 대접하십시오.

야곱도 결국 승리하고 성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서가 가나안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나중에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합니다. 다윗도 사울을 극복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처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원수를 정복하는 힘을 주시고 마침내 세상에 우뚝 서게 만드십니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8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종을 역경에서 구해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6절).” 여러분, 최후 승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기름부음 받아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됩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의 일을 하고, 주인의 전쟁에 나서는 자입니다. 종은 철저히 주인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안에 살 때 여러분은 종이지만 영광스런 종이고 세상의 왕보다 높고 힘센 종입니다. 애굽의 바로도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로 세상을 굴복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의 업적을 남겼는데, 다윗도 연전연승의 왕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을 해하려는 적대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강한 오른손이 여러분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여러분, 행여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적하지 마십시오. 백전백패입니다. 무모한 짓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융숭히 대접해드리고 우리가 그분의 종이 될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참 자유를 맛보며 인생의 목표도 어려움 없이 달성하게 됩니다.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4절).”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악한 자들은 마음에 큰 소원을 두고 사나 하는 일마다 꼬이고 장애물이 생겨 인생 한탄하며 한 많은 생을 마칩니다. 그러나 야곱과 같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무난히 성취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악한 소원을 품지 않고 선하고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삽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원을 품게 해주십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받은 귀한 복입니다. 선을 행하며 기쁨을 느끼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니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여러분을 도우시고 여러분에게 승리하는 삶과 인생의 큰 목표를 성취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