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암8:7) : 야곱의 영광

stevision 2012. 11. 26. 08:09

 

(2007년 5월 12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야곱의 영광                                            English
말씀: 암8:7

 

 

 >>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

아모스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분리 왕국 시대에 유다에서 목축업과 뽕나무 재배를 했던 자였습니다(7:14). 당시에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통치기간 이었고 이 이스라엘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했습니다. 왕을 비롯한 부자들과 귀족들은 호사스런 생활을 했지만 이들은 가난한 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착취꾼들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농부 아모스를 이스라엘로 보내셔서 예언케 하십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해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소들조차도 다 파괴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북이스라엘은 최고로 번성을 구가했던 시대여서 아모스의 경고는 그야말로 웃기는 헛소리 취급받았습니다. 당시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조롱하며 말합니다.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7:12, 13).”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당시 북이스라엘은 나라 전체적으로는 매우 부유했으나 그 부가 특권층에 집중되었고 가난한 자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던, 공의와 자비가 싹 무시된 나라였습니다. “궁핍한 자를 삼키며 가난한 자들을 망케 하는 자들(8:4)과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는 자들(8:6)”이 이스라엘의 특권 부유층이었습니다. 특권층에 빌붙어 평안한 종교서비스를 제공하며 떡부스러기를 챙기기 바빴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영의 눈이 감긴 대신에 육의 눈만 떠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여 좋은 말로 속된 예언을 하며 삯을 받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장차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북이스라엘은 부유한 국가이고, 잘 나가는 나라였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과거 전체 역사를 보더라도 그런 멸망당했던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이웃 나라들과 전쟁은 좀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텨왔거든요. 하나님의 백성이 설마 쫄딱 망해 먼 나라로 포로로 잡혀갈까? 설마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이 여기 이렇게 있는데 어떻게 적군이 이곳까지 몰려와 성전을 허무나? 그리하여 눈먼 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 아모스는 그야말로 이단의 괴수였습니다. 또 그들이 보기에 아모스는 빈부격차의 폐해를 외치며 백성을 선동하여 왕을 위태롭게 하는 자였습니다.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왕을 모반하니(7:10).”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전혀 회개할 기미를 안 보이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8:7).”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보응을 선언하십니다.

보통 맹세는 자기보다 더 나은 자를 두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일 그 약속을 꼭 지키마.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마!”, 이런 식으로 사람이 맹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실 때 당신보다 더 높은 자가 없어서 당신 자신을 두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창22:16)”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영광을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보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야곱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말합니다. 또한 제가 보기에 야곱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광을 말합니다. 그 영광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영광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이스라엘이 받게 되는 영광입니다. 당시에 세상 그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께서 주신 귀한 율법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참 복받은 백성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겉으로는 이스라엘이 번창하고 풍요로웠으나 야곱의 영광을 다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죄의 심판을 선언하시고 아울러 이스라엘의 회복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잃어버린 야곱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그게 바로 아모스서의 주제입니다.

잃어버린 야곱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죄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낱낱이 다 밝히십니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8:4,6), 상거래는 속임수가 난무하고(8:5), 사람들이 예언의 말씀을 거부하고(7:12,13),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8:14).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중한 짐으로 여겼습니다(8:5). 그들은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이 싫었습니다. 장사를 못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이 잘못을 지적하면 제발 하나님께서 직접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여기고 눈물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잃어버린 영광의 회복은 죄를 회개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책망하시는 것을 기다리며 사람들의 책망을 무시하는 것은 교만죄를 더 하나 추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짐으로 여기고, 남을 착취하고, 남을 속여먹고,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영적 권위자에게 반항하고, 우상숭배하는 것을 중한 죄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2. 교만을 꺾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가 사람들의 교만을 꺾는 좋은 수단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형벌을 내리십니다. 교만이라는 죄악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다시 싹을 내어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교만 중에 으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방해하는 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극악한 죄를 범한 제사장 아마샤에게 다음과 같은 형벌을 선언하십니다.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7:16,17).” 아내, 자식, 재산, 성직을 다 잃을 때까지 큰 고통을 당하겠군요. 교회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고 인터넷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자를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조그만 자존심 세우려다 집안의 네 기둥이 다 뽑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북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어둠이 임하게 하고, 노래가 그치고, 대신 애통과 애곡이 울려퍼지게 하십니다(8:8-10). 가진 것을 잃을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내 생명, 내 건강, 내 재능은 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징계의 기간 중에 우리는 철저히 겸손해져야 합니다. 겸손해지되 낙심하면 안됩니다. 미래를 포기하면 안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 (히12:5-13).” 징계 후에 즉시 맺혀지는 열매가 바로 겸손이고, 이 겸손 뒤에 온갖 풍성한 2차 열매가 맺혀집니다. 겸손보다 의롭고 평강을 주는 열매가 있습니까? 겸손에는 교만이라는 죄악의 뿌리가 없으니 그것이 의롭고, 사람이 겸손해지면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않고 이웃과도 싸우지 않아 평강이 임합니다. 무엇보다 징계를 받고 나면 하나님께 다 용서받았다는 확신이 생겨 마음에 평화가 생깁니다. 물론 용서를 받았으니 죄가 없어져서 의로운 상태가 되어 있지요.

3.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악을 제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에 물든 종교지도자들을 다 죽이시고, 정치지도자들도 죽이시고, 우상숭배자들도 다 죽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먼 나라에 잠시 흩어 놓으십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도움만 바라보고 삽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그들은 이방나라에서 종으로 살며 자기 땅에서 종교자유를 누리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기갈”이라는 징계를 첨가하여 내리십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사람들은 억지로 이방신의 제사에 동원되어 강제로 예배에 참석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우상숭배가 싫어 더럽혀진 자신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으려 해도 말씀을 전할 자가 없습니다. 아니, 이방나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장소였던 이스라엘 본토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옮기시고, 죄악의 장본인들을 제거하셨습니다. 죄악의 장소를 떠나고 죄악의 누룩을 버림이 우리의 회복에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기갈을 통해 영적 비만을 치료하십니다. 배가 부르면 입맛이 없어지는 법입니다. 배가 고파야 밥을 사랑하게 됩니다. 비만은 병이고 악입니다. 비만 때문에 생기는 성인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이 겸손해도 영적 비만에 걸리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영적 교만은 자범죄를 낳지만, 영적 비만은 신앙을 나태하게 하고, 의무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고,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감격이 없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독한 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영적 교만 못지 않게 영적 비만도 큰 해악입니다. 이 둘 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 태평성대를 누리는 가운데 생기는 독버섯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오랜 기간 침묵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게 만드십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영적 비만을 치료받게 되어 하나님께서 나의 전부이며 나의 기쁨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죄악의 장소를 떠나야 하고, 죄악의 누룩을 제거해야 하고, 영적 비만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이방 나라에 살며 그들의 우상숭배를 보았고, 그들의 우상이 얼마나 그 이방인들에게 쓸데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네들을 사로잡아갔던 이방 나라가 외침을 받아 멸망할 때 그들이 섬겼던 우상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함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우상숭배가 헛된 일임을 알게 됩니다. 전에 본토에서 살 때 이방나라의 우상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실제로 가까이서 직접 대해 보니 별것 아님을 알게 되었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살아 계신 참 신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방나라에 가서 현장학습을 했던 것이지요. 자신들의 모든 악도 제거되고 오직 믿을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그들은 배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신 후 회복시켜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 옛적과 같이 세우고, ...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저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 거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9:11-15).” 여러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상실한 것 때문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회복을 전제로 한 징계를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성경을 통해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징계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정금(正金)과 같은 자들이 됩니다. 누가 정금과 같은 자입니까? 그토록 고달팠던 징계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좋고, 죄는 모양이라도 다 싫어 멀리 하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며 매사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정금과 같은 자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야곱의 영광이 회복된 자입니다.

징계를 받기 전이라도 우리가 야곱의 영광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야곱의 영광을 지키는 길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예언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은 병의 진단과 투약과도 같습니다. 죄악의 싹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의를 환기시키시는 예언의 말씀을 주실 때 우리는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그 예언을 받아들여 순종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좋은 종교인 그리고 나쁜 사회인이라는 가증스런 이중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위선은 해로운 것입니다. 위선자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좋은 인간으로 평가되어 있어 눈물로 회개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체면 때문이라도 지옥에까지 죄악을 싸 가지고 가겠다는 자들이 바로 위선자들이고 예수께서는 이들을 그토록 싫어하셨습니다. 저도 기독교 딱지를 붙이고 사는 위선자들이 참 싫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신이 야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약하고 비천한 자가 하나님 잘 만나 복을 받아 창대케 된 자가 바로 야곱입니다. 절대 교만해질 수 없는 자가 바로 야곱입니다. 세상 살기 힘들어 죽을 힘을 다해 하나님을 붙들어 복을 받아 살아야 하는 자가 바로 야곱입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 이게 바로 우리의 참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와 같이 스스로 겸비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야곱의 영광”을 부여하십니다.

누가 참된 하나님의 종입니까? 제사장 아마샤입니까, 농부 아모스입니까? 전자는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라 외치고 뻐기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았지만 후자는 스스로 선지자도 아닌 농부라고 했습니다.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진짜 하나님의 종입니까? 말씀선포, 이것을 똑바로 하는 자가 진짜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야곱의 영광을 허락하시고 끝날까지 지켜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