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21편) : 평안한 기쁨과 만족

stevision 2012. 11. 26. 08:13

 

(2007년 5월 19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평안한 기쁨과 만족                                           English
말씀: 시21편

 

 >> 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2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4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5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6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7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11 대저 저희는 너를 해하려 형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 <<

어떤 목사님께서 자신이 넉넉하게 받은 복에 대해 많은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은혜롭고 보기 좋았습니다. 연세가 드신 그분께서 젊은 시절의 고생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아 이제는 평안한 가운데 살며 기쁨과 만족이 넘치는 얼굴을 보이고 계셨습니다. 사진을 보니 어떤 신학대학 교수님의 얼굴에도 평안과 기쁨과 만족이 넘쳐났습니다. 신약학 전공 교수님이신데 참으로 명석한 머리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가르치는 재능이 정말 천부적이신 분이셨습니다. 요즘 그분께서는 장학금을 한해에 수천만 원씩이나 주시고 계셨습니다. 물론 사모님께서도 대학 교수이시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그러셨겠지만, 하여튼 그분의 얼굴을 보니 넉넉한 평화와 만족이 있었습니다. 신학자로서의 업적도 그런 대로 이뤄 놓으셨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아봤고, 대학교수로서 봉급도 많이 받았고, 돈에 여유가 있어 장학금까지 내서 후학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으니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넉넉한 복을 받은 분이 또 계실까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40년 왕위에 있다가 70세에 평안히 운명한 자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에도 보니 다윗왕의 넉넉한 평화, 넉넉한 기쁨, 넉넉한 만족이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에 있는 소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아름다운 복을 주셨습니다(3절). 그분께서는 다윗에게 장수의 복도 허락하셨습니다. 그 옛날에 환갑 넘어 70세까지 산다는 게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존귀와 위엄을 허락하셨습니다(5절). 다윗은 걱정할 게 없었습니다. 왕이 걱정할 것은 외침인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원수를 다 무찔러 주시는 것을 많이 보았던 자입니다(9절). 다윗은 훗날 원수들의 자식들이 다윗에게 원수 갚을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자식까지 다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10절). 다윗은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는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을 해치려고 숨어 기회를 엿보는 원수들이 다윗의 눈에 용케도 발견되어 다윗이 먼저 조치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8절). 다윗이 ‘영영한 장수’를 말하는 것을 볼 때 그는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복락의 세계에 살고 있던 자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과 다윗은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통해 그분께 간구한 것을 거절치 아니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대상16:11).” 여러분, 여러분이 살 길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 하나님의 귀를 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지금 혼자 끙끙 앓으며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잡스런 고민을 혼자 다 떠안고 살고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모든 얽힌 문제가 즉시 다 해결됩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다 들으시고 반드시 그 소원을 이뤄주시겠다고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도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와 이웃집 사는 친구를 귀찮게 하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도 안되는 기도제목이라할지라도 마음에 소원이 있다면 다 들으시는 하나님께 아뢰라 말씀하십니다. 죄짓겠다는 것 말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 말고 원하는 바는 다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절대 낯짝 두껍다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거나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여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바로 지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이 죄를 용서해달라면 하나님께서 즉시 용서해주실 것이고, 여러분이 함정에서 빠져나와 살고싶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깊은 구렁에서 건져주실 것이고, 여러분이 꼭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육신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게 더 좋고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에게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이 구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십니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복을 주십니다. 아름다운 복은 선한 복 또 좋은 복을 말합니다. 복이라면 다 선한 것이고 다 좋은 것이지요. 그럼에도 다윗이 좋은 복을 말한 것은 다윗이 받은 복에서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복도 주십니다. 인생길을 뒤돌아볼 때 그 때 발견하는 큰 복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그렇게 야속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진짜 복이었습니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복이 바로 사람들 앞에 존귀케 되는 복입니다. 다윗이 이 복을 받았습니다.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여러분, 이 복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그야말로 썩 좋고도 아름다운 복이 아닐까요? 이왕이면 명문대에서 박사학위 받으면 좋지요. 이왕이면 대통령 되면 좋지요. 이왕이면 국무총리나 장관이 되면 좋지요. 이왕이면 세계적 석학이 되면 좋지요. 이왕이면 노벨상 받으면 좋지요. 그러나 그런 복을 받기 전까지 여러분이 온전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자신의 모든 이기심을 다 버리고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 생활에 있어서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항상 100%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모르지요. 아마 그런 진짜배기 믿음이 삼대 정도 지나야 저런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좋고도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좋고도 아름다운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시험을 잘 통과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본격적인 복이 임하기 전에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그의 이름이 창대케 되었습니다. 다윗의 영광보다 아브라함의 영광이 훨씬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름답고도 존귀하고도 썩 좋은 복을 허락하시기 전에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것, 여러분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을 달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다윗에게도 시험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속히 왕이 되려는 욕심에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를 죽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다윗은 용케 그 시험을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닌데도 ‘속히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바로 아름다운 복이 달아나게 하는 요인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인간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복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지식과 세상의 지식을 포기해야 하는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복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복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명하셨지만 그의 조카 롯에게는 자식을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신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단 한 사람이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입사 때 일차 서류심사에 합격했으니 면접 받으러 오라 통보 받으면 기쁜 일 아닙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시험은 일종의 면접시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4:12,13).” 대체로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잘 드리고, 힘이 닿는 한 이웃을 도와주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아름다운 복을 받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승리를 허락하십니다. “대저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11절).” 여러분, 절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울이 인생 실패한 것은 사람들(부하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뜻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측근 중에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자들도 있었고 그러한 측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다윗을 억지로 그릇된 길로 가게 하려 한 적도 있었으나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갔습니다. 여러분, 승리의 조건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진리 편에 서십시오. 하나님의 의를 좇아 사십시오. 불의에 굴복하여 타협하며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주인마님의 청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보십시오.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한 자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복이 임했습니다. 여러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백전백승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죽을 고비 때마다 구원을 베푸시고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덧입혀주십니다(5절). 세상에서 제일 강한 원수가 여러분에게 덤빌 때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여러분을 구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런 승리를 주실 때 세상사람들은 놀랍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점점 더 존귀와 위엄을 얻게 되고, 어느새 여러분은 왕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다음에도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분의 인자함을 바라보며 두려움 없이 살았습니다(1절, 7절). 여러분,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항상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는 마음의 소원은 있으나 이루지 못하고, 다른 자들이 아름다운 복을 다 차지하여 자기는 부스러기도 못 건지고, 맨날 패배하여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사울은 처음에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아 좋은 복, 선한 복, 아름다운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복받고 배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늘 시편 21편을 지으며 여유만만합니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4절).” 선한 복을 평생 누린 자는 인생의 종착역이 다가올수록 영생에 대한 확신이 더 커집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분께서 이 땅에서 그분과 동행한 자를 영원히 죽음에 묻어두실 것 같지 않거든요. 평생 눈물골짜기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여 산 자는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자신이 참여할 죽음 이후의 영생의 세계에 대해 털끝만큼의 의심도 갖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런 눈물골짜기와 많은 풍요로운 복을 다 누린 자입니다. 내일 해가 다시 뜨지 않는 것보다 다윗에게 영영한 장수가 없는 게 더 불가능한 일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눈물과 기쁨을 다 맛본 자에게 평화가 임합니다. 눈물만 맛본 자는 당연히 평화가 없겠지요. 기쁨만 맛본 자는 기쁨이 상실될까 염려되어 기쁨 가운데에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물과 기쁨을 다 맛본 자는 언제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직접 체험한 자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 깊은 평화를 맛보며 삽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름답고도 선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께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깊은 평화를 맛보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생의 말년이 넉넉한 복과 은혜로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